[양용기의 건축이야기] 건축물로 도시 살리는 ‘빌바오 이펙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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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용기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9-25 06:31:00

스페인은 아프리카와 유럽을 잇는 접경 국가다.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지배했던 천 년의 기간 동안 유럽 국가 중 이슬람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다. 스페인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 나는 도시가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다. 그 외에 아름다운 성을 갖고 있는 그라나다가 잘 알려져 있다.

바르셀로나에는 대성당이 있다. 이 성당은 르네상스 태동기에 세워진 고딕 성당으로 로마의 성당들과 달리 뾰족 아치가 분명하게 표현된 건축물이다. 또한 이 도시에는 너무도 유명한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도 있다. 이 대성당은 모더니즘이 싹트는 19세기 말에 등장했지만 그 모습은 고딕 형식에 좀 더 가깝다. 그러나 형태적인 컨셉은 가우디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자연의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가우디를 자연의 생동감을 담은 아르누보의 대표적 건축가로 꼽는 것이다. 가우디는 모더니즘이 등장하던 시기에 바르셀로나 건축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연속선상에 놓는 작업을 해낸 것이다.

이렇게 스페인의 건축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 역사의 맥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 오면서 유럽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다. 인간의 역사에서 암흑기였던 기독교 시대 중세가 마무리되고 근세가 시작되면서 스페인은 해양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 건축은 달랐다. 건축은 여전히 피렌체나 프랑스의 영향이 컸다. 르네상스에 이어 근세의 시작은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탈바꿈하고 중세 이전의 문화 트렌드인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가 재생되는(Re·again+naissance·make) 현상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때 스페인은 문화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가우디 같은 세계적인 건축가를 배출했음에도 스페인은 건축에 있어서 선두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20세기 말인 1997년에 스페인은 가우디 이후 건축의 한 면을 장식하며 등장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스페인의 작은 도시 빌바오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은 구겐하임 재단 소속이다. 구겐하임 재단은 세계 곳곳에 자신들의 미술관을 짓고 있는데, 미술관 디자인에 관해 나름의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이 바로 건축가 프랭크 게리이다. 이 건축가는 해체주의 건축가로 이미 명성이 자자했다. 스페인에는 이 건축가의 작품 외에도 프리츠커 상을 받은 건축가들의 작품이 많이 있다. 그런데 빌바오의 이 미술관이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된 것은 단지 프랭크 게리라는 건축가의 작품이라서가 아니다.

프랭크 게리는 캐나다계 미국 건축가이다. 그는 다른 건축가에 비해 늦게 건축을 시작했다. 건축가가 되기 전에 다양한 직업을 경험한 것이다. 그는 유태인으로 어린 시절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래서 주로 집안에서 욕조에 담긴 물고기들과 대화를 했으며 할아버지의 철공소에서 놀곤 했다. 늦게 들어간 대학에서는 그의 자유로운 사고를 이해하지 못하는 교수와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건축과를 졸업한 그는 자신만의 건축물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의 아이디어의 대부분은 같이 놀던 물고기의 움직임과 비늘에서 온 것이었다. 이 소재들이 건축물의 형태와 마감 처리에 적용되었으며 재료는 철공소의 금속이 주를 이루게 된다. 그는 수직과 수평의 틀에 박힌 형태에 자유를 주고 싶어 했고 이에 동의한 구겐하임 재단이 그의 작품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빌바오는 울산처럼 철강 도시였다. 대부분의 철강·조선 사업이 중국과 한국으로 넘어가면서 빌바오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었음에도 쇠퇴하는 도시가 되었다. 이는 빌바오뿐 아니라 전 세계가 겪고 있는 현상이었다. 세계의 여러 도시가 이러한 현상을 겪으면서 도시재생에 힘을 쏟고 있던 시기였다. 우리나라의 정선이 석탄 산업이 쇠락하자 도시의 코드를 카지노로 잡은 경우와 같은 것이다. 빌바오는 도시 코드를 문화로 바꾸고 여기에 투자하기로 결정한다. 그 일환으로 지어진 것이 바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이 과정 속에서 건축비 증가 등 도시가 목표를 바꿀 만한 이유가 많이 발생했다. 그러나 빌바오는 끝까지 목표를 밀고 나갔고 드디어 일 년 만에 투자한 것 이상의 이익을 만들어 냈으며 철강 위주였던 도시 형태가 문화와 관광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이 세계의 관심을 끌게 된 이유는 바로 도시재생이었다. 빌바오는 건축물이 도시재생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건축물 하나가 도시를 살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이에 영향을 받은 많은 도시들이 도시를 살리는 건축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서울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도 그중의 하나다. 이 현상을 ‘빌바오 이펙트(effect)’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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