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이고 비수기임에도 제주행 비행편은 만석이었다. 아침 일찍 출발하려던 계획이 틀어져 낮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서울과 달리 제주는 포근하기만 했다. 살갗을 간질이는 따스한 햇살과 훈풍은 제주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번 제주 여행의 콘셉트는 가성비 여행이다. ‘제주도는 비싼 여행지’라는 인식이 있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해 직접 찾아갔다.
착한가격업소에서 맛본 향토 음식 ‘몸국’
제주시 용담레포츠공원 인근의 ‘김희선 몸국’은 제주도가 선정한 ‘착한가격업소’로 9000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에 제주 로컬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몸은 해조류인 모자반의 제주도 방언이다. 제주에서는 잔칫날이면 고기 삶은 육수에 모자반과 수제비를 한 데 넣어 끓여 먹었다. 뭍에서도 생일날 미역국 먹는 것을 생각하면 해조류와 고깃국의 궁합이 영 낯선 것은 아니다.
김희선 몸국은 제주 몸국의 모범답안으로 불리는 식당이다. 20시간 이상 돼지사골을 우려낸 후 모자반과 수제비를 넣어 뚝배기 가득 담아내는 이 음식은 처음 먹어 본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맛이 참신하다.
이곳에서는 몸국 외 고사리육개장과 성게미역국도 취급한다. 무얼 주문하든 꼭 고등어구이와 함께 시키시라. 양파무침이 고명으로 얹혀 나오는 고등어구이는 붉은살생선 특유의 고소함은 유지하되 비린내가 제거돼 있다. 재밌는 것은 이름이 김희선인 손님에게는 테이블당 고등어구이 한 마리를 서비스로 제공한다는 것.
야생 돌고래 만나러 대정으로
점심식사를 마친 후 달려간 곳은 야생 돌고래를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서귀포시 대정읍의 M1971 요트 선착장이다. 제주 사람들은 돌고래가 이동하는 모습이 별다를 것 없어 보이겠지만 뭍사람에게 이보다 신기한 경험은 없다.
M1971은 만족도가 아주 높은 체험 프로그램으로 90% 이상의 확률로 돌고래를 만날 수 있다. 가장 추천할 만한 시각 대는 4시30분에 출발하는 ‘돌고래에코투어선셋’. 서쪽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낙조까지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1석2조의 여행으로 즐길 수 있다. 투어 비용은 성인 기준 4만8000원이다.
대정을 무대로 활동하는 남방큰돌고래는 2.7m까지 자란다. 오징어나 고등어·전갱이를 잡아먹는데 체형이 날렵하고 부리가 긴 것이 특징이다. 호기심이 많아 바다에서 배를 만나면 구경하러 다가오기도 한다.
이에 해양수산부는 야생 돌고래 보호를 위해 관찰 가이드를 제시해 두고 있다. 탐사선은 돌고래 반경 50m 이내로 접근할 수 없으며 탐방객은 돌고래에게 어떤 먹이도 주어서는 안 된다. 다만 돌고래가 다가오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으므로 운이 좋다면 이들의 모습을 영상(위)으로 남길 수 있다.
돌고래를 만나고 돌아오는 뱃길은 너울이 심하다. 요트가 아래위로 요동치기 때문에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물론 이 재미로 돌고래 투어를 단골로 다니는 이도 있다. 일반인은 출항 30분 전에 멀미약을 먹어두는 게 좋다.
돼지생갈비 먹어 봤나? ‘동호갈비’
제주도는 장엄한 일몰 후 급격히 어둠이 내린다. 저녁식사를 위해 찾은 곳도 착한가격업소였다. 서귀포 중문에 자리한 동호갈비는 매운문어갈비찜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돼지생갈비라는 귀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흔히 돼지갈비 하면 양념갈비를 떠올리지만 이곳에서는 독특하게도 생갈비를 취급한다. 가격도 매우 착해 돼지생갈비 300g이 2만2000원이다. 양념갈비로 주문할 경우 같은 중량에 1만8000원을 받는다.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가격으로 그것도 흑돼지의 고장 제주에서 생갈비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다.
쫀득한 살점과 담백한 육향은 돼지생갈비가 주는 색다른 미식 경험이다. 양념 고기를 별로 안 좋아해 삼겹살 위주로 먹어 온 식객이라면 느끼함은 줄이고 담백함은 살린 생갈비에 도전해 봄 직하다.
숨이 모여 쉼이 되는 ‘숨도, 귤림성’
제주는 11월 말부터 동백꽃 천지가 된다. 수많은 동백꽃 스팟 중 남제주군의 ‘숨도, 귤림성’은 제주의 자연을 그대로 활용한 천혜의 자연 농원이다. 1만여 평 대지에 여름에는 수국정원이, 겨울에는 동백정원이 펼쳐지며 지그재그로 길이 난 ‘마음의 정원’에는 풍선꽃·철쭉·매화·팜파스·국화가 만발해 산책의 즐거움을 더한다.
이곳이 숨도라는 이름을 얻기 전에는 석부작 테마공원으로 불렸다. 그만큼 많은 석부작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현재 1만8469㎡의 실내 공간에 약 5만 점에 이르는 석부작 작품이 소장돼 있으며 그 수가 꾸준히 늘어나는 중이다.
석부작은 돌에 야생초를 활착시켜 예술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그 자체로 산의 형상을 본뜨고 있다. 이곳 석부작은 제주를 대표하는 암석인 현무암(용암석)을 이용해 제주에 서식하는 풍란·고란초·죽백란·만년석송·한라구름재·돌단풍 등 자생식물로 만들어 더 의미가 깊다.
그 외에도 억새정원과 소갤러리·야외폭포를 볼 수 있으며 15평형부터 42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콘도형 숙소를 구비하고 있어 커플은 물론 온 가족이 묵어가기에 제격이다.
‘숨이 모여 쉼이 되는 정원 숨도, 귤림성’에서 꼭 들려야 할 곳은 ‘사운드오브아일랜드홀’이다. 15만 장의 LP와 골드문트 스피커가 구비된 음악감상실로 주인장이 직접 손님을 맞는다. 은은한 커피향에 취해 음악에 빠지노라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잊고 만다.
숲속의 쉼터 ‘숨도 카페’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편안한 인테리어와 향긋한 커피가 도시에서 마실 수 없는 숨을 제공한다.
8000원의 기쁨 ‘새서울두루치기’

둘째 날 점심은 서귀포의 착한가격업소인 ‘새서울두루치기’에서 했다. 야채의 아삭거림과 제주 흑돼지의 쫄깃한 식감이 한데 어우러지는 이곳 두루치기 가격은 단돈 8000원(공기밥 별도).
이 집 흑돼지두루치기는 먹는 법이 따로 있다. 먼저 양념된 고기를 익힌 후 콩나물·무채·파채 세 가지 야채를 잘 섞어 볶는다. 볶음밥을 주문할 때는 고기와 야채를 충분히 남기는 게 팁.
푸른 초원과 흰 억새의 대비 ‘산굼부리’


굼부리란 화산체의 분화구를 가리키는 제주말이다. 말하자면 아득한 옛날 땅속에 갇혀 있던 뜨거운 숨이 지각을 뚫고 나와 제주 섬에 좌정하게 된 숨구멍이다.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의 산굼부리는 다른 산체에 비해 화구의 크기가 매우 커 매우 다양한 식생을 품고 있다. 이에 ‘분화구 식물원’이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특히 가을이면 너른 사면을 따라 억새밭이 은빛 물결을 이룬다. 푸른 초원과 흰 억새밭의 대비도 장관이지만 검은 나뭇가지마다 까마귀가 날아 앉아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산책로에는 회청색의 지의류가 뿌리를 내린 용암석이 관광객을 호위하듯 늘어서 있으며 가파르지 않은 길을 따라 정상에 오르면 성산일출봉부터 크고 작은 오름을 한눈에 관찰할 수 있다.
서귀포 앞바다를 품은 ‘더 그랜드 섬오름’





이틀도 아니고 단 하루 묵을 숙소인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해 서치했다. 위치와 규모·서비스를 고려하되 합리적인 가격대의 호텔을 찾다 보니 서귀포 ‘더 그랜드 섬오름호텔’이 눈에 들어왔다.
범섬 바로 앞에 자리한 이곳은 서귀포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올 뿐 아니라 2개의 야외 풀장을 마련해 두고 있어 일단 시야가 시원하다. 제주도의 따뜻한 날씨는 11월까지 야외수영장 이용을 허락하지만 별도로 온수 자쿠지와 실내 풀장 시설을 갖추고 있어 추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꼭 수영복을 지참할 것.
이 호텔은 룸컨디션도 좋고 위치도 좋은 데다 가격이 착해 재방문율이 높다. 조식도 훌륭하지만 중식 때 판매하는 짬뽕은 많은 사람이 인생 짬뽕으로 손꼽는 메뉴다.
그밖에 서귀포 표선면에 자리한 ‘목장카페 드르쿰다’는 승마·카트·사격·파크골프·짚라인·동물 피딩 등 이색적인 체험거리가 가득해 가족 단위로 방문하면 좋은 곳이며 파리바게트 제주공항점에서는 제주에서만 파는 ‘마음샌드’를 맛볼 수 있어 마무리 여행 코스로 집어넣으면 좋다.



짧은 1박2일 여행이었지만 큰 아쉬움 없이 두루 즐길 수 있었다. 비용도 항공·호텔·렌트카·3끼 식사·입장권 전부 해서 두 사람이 1인 30만 정도로 저렴하게 진행했다. 이 정도면 제주도 자주 갈 만하지 않은가.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