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기사에서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바로 관치금융이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민간 기업에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것을 뜻하는 관치는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바로잡는 순기능이 있으나 유권자 표를 의식하는 등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히며 경제에 부작용을 초래한다.
‘적격비용 산정 논란’도 관치금융의 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정부는 2012년 적격비용 제도를 처음 시행한 뒤 3년마다 가맹점 수수료율을 조정하고 있다. 자금 조달·위험관리 등을 반영해 적격비용을 산출하고 여기에 마진율을 더해 가맹점 수수료율을 산정한다. 취지는 좋다. 임대료·인건비 등 높은 비용에 허덕이는 중소가맹점에 수수료 부담을 낮춰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적격비용을 조정할 때마다 수수료율을 낮추고 적용 대상을 확대한다는 점이다. 2012년 우대가맹점에 1.5%·1.0%를 적용하던 신용·체크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최저 기준)은 2015년 0.8%·0.5%로 인하한 뒤 2021년 0.5%·0.25%까지 내렸다. 우대 적용 대상도 2012년 연 매출액 2억 원 이하, 2015년 3억 원 이하로 한정했지만 2018년부터는 30억 원 이하로 확대했다.
현재 우대 수수료율을 적용받는 가맹점은 전체 가맹점의 96%에 달한다. 연 매출액 30억 원 가맹점은 단순 계산해도 한 달에 2억5000만 원을 번다. 과연 이 가맹점을 영세업체라고 볼 수 있을까. 대통령·여당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서 카드 수수료율을 낮추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자영업자 수는 최근 12년 동안 550만 명 이상을 유지할 정도로 상당하다.
소비자에 끼치는 피해도 적지 않다. 카드사들은 가맹점 수수료율 하향에 따른 이익 감소에 대비해 ‘알짜카드’를 단종시키고 있다. 우리카드는 최근 쇼핑·여행 관련 혜택을 제공하는 신용카드 2종의 신규 발급을 중단했다. 하나카드도 디지털 구독 관련 신용카드를 포함해 5종의 신용카드 발급을 끝냈다. 롯데카드도 보험료 할인 등의 혜택을 주는 신용카드 5종 발급을 멈췄다.
상반기까지 카드사 8곳이 단종시킨 신용·체크카드는 373개로 작년 상반기(159개)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반면 새로 나온 신용·체크카드는 125개로 절반 미만이었다. 여전히 온·오프라인에서 카드사의 카드·모바일 앱으로 결제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흐름이다.
이는 실물경기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알짜카드는 대부분 결제 시 할인·적립 등의 혜택을 부여해 소비를 유도한다. 알짜카드가 사라지면 소비자들이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는 일도 줄어들어 민간 소비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미 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상반기 일평균 카드 결제액 증가율(전년동기 대비)은 3.9%로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0.5%) 이후 4년 만에 가장 낮았다.
현 가맹점 수수료율을 산출한 지 3년이 흘렀다. 정부는 조만간 적격비용을 새로 산정해 가맹점 수수료율 개편안을 발표한다. 카드사 대부분이 3분기까지 호실적을 거둔 만큼 또 수수료율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다만 호실적은 카드론 등 대출 영업을 통해 벌어들인 성과다. 수수료율을 더 낮출 경우 카드사들은 본업을 잊은 채 ‘대출 장사’에 더 열중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 후생 및 민간 소비 촉진을 위해서라도 정부는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 조정에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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