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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고위 당국자가 ‘즉각적인 제재 해제’를 조건으로 ‘고농축 우라늄 전량 폐기’에 합의할 의사를 밝혔다. 민간용도 저농도 농축만 하며 국제사회 감시도 허용하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핵보유 꿈의 포기’를 의미한다. 14일(현지시간)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최고 정치·군사·핵 고문인 알리 샴하니가 미 NBC뉴스 인터뷰에서 이런 조건이 맞춰진다면 당장 합의문에 서명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순방 이틀째에 나온 깜짝 소식이었다.
‘이란 핵보유 절대 불가’ ‘모든 압박 수단 구사’를 천명해 온 트럼프가 마침 중동에 있는 동안이어서 극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지난달 12일부터 4차례 오만 중재로 이뤄진 미·이란 고위급 핵협상 결과, 양측의 긍정적 평가 속에서도 갈 길이 순탄치 않아 보였는데 돌파구가 열린 셈이다. 민주당 버락 오바마 정부 때 도달한 이란핵합의를 2018년 트럼프1기 미국이 ‘독소조항’ 위험성을 들어 파기한 후 이란에선 우라늄 농축도 올리기 등으로 대응해 왔다. 이번 샴하니 발언은 이란핵협상 이래 최고지도자 측근으로부터 나온 가장 명확한 입장 표명이다. 전날 ‘협상 불발 시 제재 수위를 높이겠다’는 트럼프의 엄포가 있었다.
‘핵보유 노력’ ‘테러 지원 중단’을 강력 촉구하며 회유와 위협을 오간 트럼프 언행에 샴하니는 “올리브 가지(화해)를 말하지만 우린 그걸 본 적이 없다. 가시철조망뿐”이라며 실망감을 표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또한 “괴롭힘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국 명분에 충실한 입장을 냈다. “우리에겐 순교가 침대에 누워 죽어가는 것보다 훨씬 달콤한 일” 등 국내정치적 표현이 다수 등장하지만, 아랍국가·미국 등과의 핵농축 합작 벤처 설립 방안을 제안했다는 현지 보도를 보면 다급한 게 어느 쪽인지 알 수 있다. 민간용도로만 운용되나 감시할 안전장치 구상을 이란 측에서 내놓은 것이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앞서 트럼프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 때 “피투성이 대리전을 멈추고 핵무기 추구를 영구적 검증 가능하게 중단해야만 한다”는 대(對)이란 메시지를 거듭 강조했다. “(전임 조 바이든이) 이란과 대리세력에 힘을 실어줬다”며 “그런 시절은 끝났다”고 단언하면서 이란 지도부가 ‘올리브 가지’를 거부할 경우 ‘중동 최대 파괴적 세력이 되는 것’으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시종일관 ‘회유와 압박의 병행’이다.
이날 또 하나 획기적인 일은 트럼프와 아메드 알샤라 시리아 임시대통령과의 첫 만남이다. GCC 행사 직전에 이뤄진 이 자리에서 트럼프는 “시리아 새 정부와 관계 정상화를 모색하고 있다”며 “제재 해제는 시리아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것” “‘아브라함 협정’(이스라엘과 중동 이슬람권 국교정상화)에 더 많은 국가를 계속 추가”하겠다고 다짐했다. 알샤라가 자국 석유·가스 분야에 미 관련 기업들이 투자해줄 것을 요청한 소식도 백악관발(發)로 전해졌다.
시리아는 이란·러시아 후원 아래 중동의 반미군사연대 ‘저항의 축’의 일원이었지만, 작년 12월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 퇴출 후 수립된 새 정부가 친서방·(수니파)친아랍 정책을 추진 중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온라인 참석한 가운데 트럼프는 레버논도 언급했다. “새 대통령과 총리의 취임으로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것” “(무장정파) 헤즈볼라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레바논 미래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연초 선출된 레바논의 친미 성향 조제프 아운 대통령이 국제사법재판소(ICJ) 소장 출신인 나와프 살람 총리를 지명해 친이란 헤즈볼라 진영이 실각하게 됐다. 시리아 정권 교체와 더불어 이란 주도 ‘저항의 축’ 세력을 크게 위축시킨 상황이다. 이런 중동 정세 변화를 최대한 활용해 이란의 ‘비핵화’ ‘역내 영향력 약화’를 추구하려는 게 트럼프의 구상이다. 지난 80여년 태생부터 친미국가인 사우디와 자유시장경제 및 대의제 민주국가인 이스라엘 중심으로 재편하는 게 중동의 최선이라고 본 것이다.
GCC 연설에서 트럼프는 “(가자) 주민 안전과 존엄성이 보장된 미래를 바란다”며 “GCC 지도자들이 갈등 종식 노력에 건설적인 역할을 더하고 있는 것”에 감사를 표했고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날 회담에서 “어제 트럼프 대통령이 형제국 시리아에 대한 제재 해제를 결정한 것을 높이 평가”하며 “시리아인들 고통을 덜어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트럼프의 두번째 방문국 카타르는 자국을 공식 방문한 첫 미국 대통령에 극진한 예우를 다한 모습이며 트럼프 역시 “감사와 영광”의 인사를 연발했다. 사우디를 떠나 카타르로 이동할 때 대통령 전용기 옆 카타르 공군의 F-15 전투기 호위, 하마드 알 타니 카타르 군주(Emir)의 공항 영접, 특별 차량과 수십마리 낙타·아라비아 말의 호위 행렬이 이어졌다. CNN 표현을 빌면 “리얼리티 TV쇼 스타 출신 대통령임을 의식한 연출”이었다.
백악관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카타르에서 최소 1조2000억 달러(약 1678조원) 가치의 경제교류를 창출할 합의에 서명했다고 발표했다. 보잉과 GE에어로스페이스가 카타르항공과 960억 달러 규모 계약 체결, 미국산 보잉787 드림라이너, GE에어로스페이스 엔진에 의해 구동되는 보잉777X 등 항공기 210대 구매 계약이다. 백악관에선 카타르와의 계약에 따라 “미국에 10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지원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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