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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의 개집에 살면서 주인이 먹고 남은 음식을 양철 그릇에 담아 주면 받아먹고 살던 그 시절 ‘바둑이’는 집 지키는 개였다. 낮엔 졸고 있다가 밤이 되면 쌩쌩해져서는 도둑이 들면 우렁차게 짖는 게 임무였고 그게 밥값이었다.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살 곳이 없어진 바둑이들은 실내로 들어왔다. 베란다를 터전으로 살면서 주인과 더 가까워졌다. 눈치 보면서 식탁 아래로 와서는 상 밑의 부스러기를 얻어먹는 행운도 누렸다. 집 지키는 개가 애완견이 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핵가족이 늘고 1인 가구까지 많아지면서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을 애완견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당당한 ‘반려견’이 되었다. 거처도 달라졌다. 베란다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침실까지 진입했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집사’라고 호칭한다.
‘바둑이’는 진짜 가족이 되었다. 24시간 응급진료는 물론이고 건강검진 패키지도 있다. 동물병원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보험도 마련되어 있다. 낮에 혼자 있는 반려견을 위한 방문 돌봄이나 데이케어 서비스가 있고, 폐쇄회로(CC)TV를 앱에 연동시켜 낮 동안 어떻게 지내는지 실시간 모니터링도 가능하다. 나이에 따른 맞춤형 사료 제공도 가능하고 다른 반려견들과 어울리도록 훈련하는 사회화 캠프도 갖춰져 있다.
사람들이 받는 의료와 교육, 돌봄서비스를 반려동물도 촘촘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집사’들의 말을 들어 보면 반려견이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절대 주인을 배신하지 않으며 기분 안 좋다고 으르렁대지도 않는다. 공감 능력도 뛰어나다. 지치고 힘들 때 늘 곁에서 토닥여 준다. 주인이 없는 동안 노심초사 기다려 주고 집에 오면 어떤 ‘가족’보다도 최고로 반겨 준다.
안고 자면 불면증도 해소된다. 인간의 언어를 쓰지는 못하지만 눈빛과 꼬리로, 또는 작은 소리로 의사 표현을 충분히 한다. 오히려 말을 못 하니까 상처를 줄 일이 없다. 실제로 시골 마을의 강아지들은 외지에 나간 주인을 정류장으로 마중하기도 하고 장터에 가서 심부름을 하기도 한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주인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반려견이 주인을 만나려고 같은 장소에 몇 년씩 머물기도 한다. 그런 그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인간의 마음은 계속 진화 중이다.
‘사랑의 기술’의 저자 에리히 프롬의 작품 ‘소유냐 삶이냐’에는 인간의 사랑법(살아가는 법)이 두 가지로 제시되어 있다. 소비와 소유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소유 지향의 방식과 삶의 순간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는 존재 지향의 방식이다.
애완동물이 반려동물이 된 것은 소유 지향에서 존재 지향으로 변한 것이다. 동물의 생명권과 존엄성을 지켜 주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동물권’의 옹호로 이어지고 국제기구가 결성되었다. 인류가 성숙해지고 있는 증거로 보여 흐뭇한 마음이다.
문득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가 생각난다. 특히 연인이나 남녀 관계, 부부 관계의 수많은 양상과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면 기가 막히다. ‘당신 없이 살 수 없다’는 그럴듯한 이유로 상대의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은 채, 소유하고 통제하려는 태도와 그 부작용으로 발생하는 각종 사고와 사건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우리는 삶에서 다양한 반려 관계를 맺는다. 부부와 부자지간, 친구, 동료 등이다. 거기에는 동반자, 반려, 또는 소울메이트라는 말까지 붙는다.
그런데 이름만 그럴듯할 뿐 실상은 그저 ‘애완 인간’인 경우가 제법 많다.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방식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누군가의 ‘애완인’인가, 혹은 내가 누군가를 애완인으로 취급하고 있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보면 사랑은 자기 중심적인 결핍을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타인의 존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책임지는 능동적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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