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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5일 새벽 1시. 강릉시 옥계면에서 ‘주민들이 무시했다’라는 터무니없는 망상에 빠진 60대 노인이 고의로 산불을 냈다. 산불은 봄철 양간지풍(태백산맥 넘어 영동으로 부는 바람)과 해륙풍(남과 낮의 교차 바람)의 영향으로 순식간에 그야말로 사방으로 번졌다.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동해시에 따르면 산림피해 면적은 2660ha에 달한다. 축구장 3650개 규모에 엄청난 산림지역을 화마가 삼켜버린 것이다.
현재 산불 진화 및 피해조사가 완료됐고 복구체제로 전환된 상태다. 우리나라 최대의 방화 사건으로 불리는 동해 산불. 큰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하나는 바로 동해시 묵호동이다. 동해시에 따르면 산불로 인한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묵호동에서만 100곳 이상의 시설이 전소되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157가구 215명이 대피해 지금 이순간에도 12가구의 이재민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직접 동해시 묵호동을 찾아가 현지 분위기를 살펴보고 동해시의 식당과 관광지 등을 직접 둘러봤다.
아직도 남은 산불 피해 흔적… 한산하기만한 관광 명소
동해시 묵호동 묵호항 인근에 가보면 언덕 위에 검게 그을린 건물이 보인다. 언덕 아래로 집과 식당들이 종기종기 모여 있는 가운데 꼭대기에 자리잡은 한 건물은 참혹했던 당시 산불의 피해를 그대로 보여주듯 검게 그을려 있었다. 지역주민에 따르면 이 건물은 묵호동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물로 펜션과 카페를 동시에 운영했던 곳이라고 한다.
이 건물 바로 아래쪽에 거주하고 있는 A씨(78)는 “산불이 번지다 언덕 위에서 멈춰 아래쪽까지 피해가 크게 미치지는 않았다”면서도 “하지만 산불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가 없다고 해도 당시 산불이 무서운 속도로 번질때 도망갔던 사람들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혀를 찼다.
실제로 인근 주택가를 둘러보니 대부분의 민가가 문이 열린 채 비어있었다. 사람 사는 기척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A씨는 “산불 이후에 수많은 자원봉사자 분들이 피해 복구하는 것을 도와주고 지원도 많이 해줬다”라며 “그 덕분에 동네가 빠르게 외형은 복구할 수 있었지만 겉으로만 멀쩡해 보이는 상황”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묵호동 주거지가 몰려있는 언덕에서 내려오면 묵호항이 나온다. 묵호항 해변가를 따라가다 보면 묵호항수변공원과 전망대, 스카이밸리 등 다양한 관광 명소가 나온다. 하지만 해변가의 주차장은 빈자리가 많았으며 점심시간이었음에도 사람의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한산하기만 했다. ‘바다가 보이는 뷰’를 자랑하며 인파가 북적일것만 같던 거리는 문을 걸어잠근 상가로 인해 그야말로 적막감이 돌았디그나마 바다 위로 조성된 전망대에만 가끔 한 두명의 관광객이 사진을 찍으러 올라가는 모습이 눈에 띌 뿐이었다.
원래 묵호항 인근은 바닷가 근처로 어업이 활발한 곳이기 때문에 횟집이 많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방문객이 너무 적어 영업을 하는 식당을 찾기가 어려웠다. SNS를 통해 몇차례 검색을 시도한 끝에 가까스로 문을 연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해당 식당은 묵호항 인근에서 평점이 가장 높았다. 하지만 가장 인기가 많다던 유명식당도 3개 층 가운데 1층만 문을 열어놓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B씨(38)는 “요즘처럼 힘들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산불이 난 곳과 거리가 좀 있어서 직접적인 피해는 피했다고 생각했다”며 “오히려 자원봉사자분들이 많이 오셔서 피해 복구가 빨리 됐기 때문에 예전처럼 많은 관광객의 방문을 기대하고 있었다”라고 운을 뗐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기대가 큰 착각이었음을 시인했다. 그는 “한번 산불이 나고 상권이 죽으니까 다시 살아나기가 너무 어렵다”며 거의 울먹이듯 호소했다. 마찬가지로 산불로 인해 도주했던 주민들 대다수가 식당을 운영해서 생계를 유지해왔는데 그들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으니 식당 문을 열수도 없고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쩌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마저 더이상 이곳에 머물지 않고 곧바로 떠나가 버린다는 하소연이었다.
묵호항 해변에서 벗어나 항구를 지나면 묵호동 번화가를 찾을 수 있다. 번화가를 통하면 해맞이길과 논골길, 별빛마을 등으로 통할 수 있어 관광 명소를 가기 위해선 반드시 지나쳐야만 하는 곳이다. 관광의 중심지인 만큼 비교적 사람은 많이 눈에 띄었다. 인근 카페에 들어서니 현지 주민들을 여럿 접할 수 있었다.
카페를 운영하는 C씨(34)는 “식당보다 카페의 타격이 더 크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산불 직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겼지만, 맛집이라고 소문이 난 식당의 경우는 관광객들이 근처 강릉 등을 방문하면서 중간에 들러 밥을 먹고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카페는 묵호항의 특성상 강릉이나 속초처럼 해수욕장이 있는 곳이 아니라 항구가 있어 젊은 층은 밥만 먹고 다른 지역으로 카페를 가는 경우가 더 많다”고 설명했다. C씨는 “지역 발전을 위해 예쁘게 카페를 꾸미고 메뉴를 개발하는 등 노력을 많이 했지만 한번 관광객이 빠진 지금 더 이상 사업을 유지하기 어려워 동네를 떠나는 분들도 늘어나고 있다”라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재건 의지 다짐하는 묵호동 주민들
묵호동 주민들을 통해 간접적이나마 산불의 피해가 얼마나 큰지 체감할 수 있었다. 거대한 피해 규모에 비해 이 지역은 빠르게 제 모습을 찾아갔다. 주변의 수많은 도움 덕분으로 보인다. 묵호동 주민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약 2600만원 상당의 성금과 다수의 후원 물품 그리고 동해시의 상하수도와 지방세 등 감면 조치로 인해 수월하게 복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묵호동 주변 상인들은 관광객이 산불 이전에 꾸준히 많았으며 관광지 등이 피해를 입지 않았고 여전히 잘 유지·보수되고 있어 지역에 대한 홍보와 인식이 개선된다면 충분히 예전처럼 활발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C씨는 “묵호동이 다른 지역에 비해 시설이 미흡하거나 부족한 점은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산불 피해를 복구해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힘 써주셨고 기존의 모습을 되찾았을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시스템을 갖췄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적극적으로 SNS 운영과 다양한 행사 등을 통해 지역을 알릴 수 있게 시도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지금도 묵호항을 검색하면 산불로 인한 피해 자료들이 가장 먼저 올라온다. 묵호동 인근 ‘묵꼬양’을 운영 중인 D씨(46)는 “산불 자료를 통해 동해 인근이 입은 피해를 알리기 위한 것도 좋지만 산불이 진화된 지 약 3개월이 지난 지금은 원래의 밝은 모습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힘줘 말했다.
산불 피해의 흔적이 남아 있는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묵꼬양’은 새로 지은 것처럼 깔끔해 보였다. D씨는 “‘묵꼬양’은 별빛마을 홍보를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동해시 주관으로 추진하는 카페”라며 “산불 이전부터 추진해왔고 최근에 완공됐다”고 설명했다. 동해시와 주민들은 이 카페를 통해 산불 피해 지역을 홍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동해시 관계자는 “산불 피해 지역을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해 많은 지원과 도움 덕에 지역이 제 모습을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라며 “지금은 특별재난구역이 해제됐지만 아직 남아있는 이재민분들을 위해 복지과에서 지속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지역 홍보를 위해 ‘묵꼬양’ 같은 사업 지원을 추진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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