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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정권교체기에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강행하며 결국 레드라인을 넘어섰다. 북한은 지난달 24일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괴물 ICBM’이라 불리는 화성-17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공표했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12번째 무력도발이다. 코로나19 정국에 식량난까지 더해졌으나, 암호화폐로 돈을 벌어 중국, 러시아에서 재료를 사들였을 것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북한 무력도발에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며 ‘대화’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겠다는 윤 당선인에 대한 기선제압이라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우리 군도 단호한 태도로 바뀌어 북한 무력도발에 되도록 침묵하려던 이전 입장보다 전향적인 것으로 관측된다. 남북관계에 상당 기간 ‘강대강(强對强)’ 대결 구도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종지부 찍은 북한 ICBM 17형 발사
북한은 3월24일 오후 2시43분 ICBM ‘화성-17형’ 한 발을 고각 발사했다. 화성-17형은 2020년 10월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당시 처음 모습을 드러냈는데, 미국과 중국이 보유한 ICBM에 비해 발사체 길이와 직경이 더 커 이른바 ‘괴물 ICBM’으로 불린다. 북한은 앞서 ‘정찰위성 발사’를 ICBM 시험 발사의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이번에는 6000km 이상 고도까지 고각(高角) 발사함으로써 순수 무기용 ICBM을 시험했음이 드러났다.
발사체 길이는 22~24m, 바퀴 축이 11개인 이동식 발사 차량에 실려 있었다. 화성-15형보다 바퀴 축이 2개 더 늘어났다. 이는 핵무기 2~3개를 실어 미국 수도 워싱턴과 뉴욕을 포함한 미국 동부 전역 타격이 가능한 사거리다. 발사된 미사일은 약 70분 동안 최대 고도 6200km까지 올라간 뒤 수평으로 약 1100km가량 날아갔다. 정상 각도인 30~45도로 발사할 경우로 환산하면 1만5000km 이상 날아갈 수 있는 거리다. 화성 17형은 전작보다 성능이 상당수준 향상됐다고 볼 수 있다. 엔진, 연료 무게로 추력 자체는 크게 증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ICBM 발사로 적극 체제홍보에 나섰다. 조선중앙TV는 김 위원장이 미사일 발사를 현장에서 직접 지시하는 모습을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제작한 후 알렸다. 또한 시험 발사를 승인하는 친필 서명을 알린 후 발사현장을 참관했음을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하며 김 위원장이 미국과 장기적 대결을 준비하고 핵전쟁 억지력을 강화하겠단 입장을 내비쳤음을 알렸다.
앞서 2017년 7월, 북한은 ICBM을 두 차례 발사했다. 같은해 11월 ICBM ‘화성-15형’을 세 번째 쏘아 올리며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바 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은 남북 화해의 분수령이 됐다. 김 위원장은 같은 해에 노동당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핵 실험과 ICBM 발사유예’를 발표했다. 북한의 ICBM 발사는 2017년 이후 4년 4개월 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김 위원장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유예(모라토리엄)를 스스로 파기한 것이고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강력히 규탄을 했다. 이로써 문재인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실패’였음을 문 정부 스스로 자임한 꼴이 되고 말았다.
북한의 뒷심에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암호화폐가 있었다.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산 부품과 재료를 이용해 다양한 탄도미사일 기술을 개발한 사실이 공개됐다. 1일 유엔안보리 산하 대북제재 위원회는 전문가 패널 연례보고서에서 대량살상 감시 무기 개발을 위해 중국과 러시아의 부품을 조달했다고 알렸는데, 북한은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탄도미사일 제조에 사용되는 특수 스테인리스 합금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의 본체용 합금을 러시아에서 구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17년 11월 북한의 ICBM 시험 발사 당시엔 즉각 추가 대북제재 결의안(2371호)으로 응수했으나, 이번엔 중국과 러시아에 가로막혔다.
북한의 무력도발 뒤엔 중국과 러시아 등이 있었던 것이다. 이상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한반도전략연구실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ICBM 발사와 같은 북한의 고강도 도발이 이에 반발해 강력한 대응을 도모하는 한미일 등의 결속을 강화하게 되는데 이는 역으로 북중러의 결속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다.
연례보고서는 북한이 외환을 벌어들이기 위해 가상화폐 거래소 해킹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알렸다. 보고서를 보면 북한과 연계된 해커들은 첨단 기술을 활용해 인터넷에 연결된 암호화폐 지갑에서 북한이 통제하는 주소로 자금을 빼돌렸고 확보한 암호화폐는 자금세탁 과정을 통해 현금화했다. 사이버 보안업체 체이널리시스의 분석에 의하면 북한이 지난해 가상화폐 플랫폼에 최소 7건의 공격을 감행해 4억달러(약 4879억원)를 확보했다.
북한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은 언론 기고 칼럼에서 “김정은의 머릿속에는 ICBM을 개발하여 괌·하와이는 물론 미국 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다고 미국을 협박하면, 미국이 주한 미군 철수라는 요구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라며 “ICBM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더는 북한 도발 좌시하지 않는다’… 韓·美 공조 강화하는 새정부
정부는 올해 들어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해 한층 더 강화된 태도를 보여왔다. 실제 한미 군 당국자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향상에 대해 안보상황이 지속적으로 악화하고 있다고 본 후 북한의 미사일 시험 재개 등을 경계해왔다.
북한은 1월5일 극초음속 미사일로 포장한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렸지만 우리 군 당국은 이튿날 “극초음속 비행체 기술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깎아내렸다. 북한의 화성-17형을 15형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한·미연합정보당국은 태양 고도와 그림자 길이, 구름 분포 등을 통해 북한이 공개한 사진과 영상이 조작이라고 봤다.
ICBM을 쏘아 올린 당일 우리 군 당국은 미사일 맞대응에 나섰다. 북한의 ICBM 발사에 대응해 오후 4시25분부터 동해상에서 합동 지해공 미사일을 발사했다. 현무-II 지대지미사일 1발, ATACMS(에이태킴스) 1발, 해성-II 함대지미사일 1발, 공대지 JDAM(합동정밀직격탄) 2발을 발사했다.
발사 6일만인 30일 국방부 산하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충남 안흥종합시험장에서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고체 추진 발사체 성능시험을 위한 첫 번째 발사를 했다. 이번 시험이 지난해 5월 미사일지침 종료와 함께 7월 고체추진기관 연소시험 성공 이후 8개월 만에 이뤄졌다.
국방부는 “북한이 모라토리엄(핵실험·ICBM발사 유예)을 스스로 파기하는 ICBM을 발사하면서 엄중한 시기에 이번 고체 추진 우주발사체 시험발사 성공했다”라며 “앞으로도 군은 고체추진 우주발사체를 비롯해 합동성에 기반을 둔 우주전력을 조기에 확충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군은 추가도발에 ‘선제타격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1일 열린 육군 미사일전략사령부와 공군 미사일방어사령부 개편식을 주관하며 훈시를 통해 “특히 미사일 발사 징후가 명확할 경우에는 발사 원점과 지휘·지원시설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능력과 태세도 갖추고 있다”고 알렸다.
서 장관이 언급한 ‘발사 원점과 지휘·지원시설 정밀 타격’은 박근혜정부 때 구축한 ‘3축 체계’ 가운데 ‘킬체인(Kill Chain)’과 ‘대량 응징보복(KMPR)’을 가리킨다. 문 정부는 ‘3축 체계’의 명칭을 ‘전략적 타격체계’로 바꿨으며 언급을 꺼려했다. 이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체제 초에 되살림과 동시에 ‘선제타격 가능성’을 언급하며 수위를 올린 것이다.
미국도 북한 무력 도발 억제에 나섰다. 미국은 북한이 ICBM을 발사한 직후인 지난 3월24일 제재를 발표한 데 이어 8일 만에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미국 재무부도 1일(현지시간) 북한 관련 5개 기관에 대한 추가 제재를 했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제재 리스트에 추가된 북한 관련 기관은 △로케트공업부 △합장강무역회사 △조선승리산무역회사 △운천무역회사 등이다. 이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 이후 4번째 제재 사례이다.
미국의 이 같은 강경 제재에 대해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언론 기고글에서 ”북한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다“라며 ”백악관과 외교라인의 안보 핵심은 대부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신“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2016년 사실상 북한을 치려고 했던 인물들로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계속하자 ‘참수작전’을 준비한 후 체제붕괴 후 대량난민발생 사태에 대비해 중국과 비상계획 수립 및 연합훈련까지 실시했던 이들“이라고 부연했다.
공화당보다 북한에 적대적이고 보수적인 민주당 인사들이 현재 바이든 정부에 들어가 있으므로 트럼프 전임 정부와 같은 극적인 협상타결은 어렵다는 분석이다.
한편으로 북한은 한·미연합훈련과 15일로 예고된 태양절(김일성 생일)에 맞춰 고강도 도발을 이어나갈 것으로 예측된다. 북한 전문가들은 ICBM 추가 발사와 7차 핵실험 등 다양한 선택지를 거론하는 중이다. 최근 폐쇄했던 풍계리 핵실험장을 복구하는 정황이 포착된 것도 핵실험 재개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당장 이달 중순 상반기 한·미 연합훈련인 키 리졸브 연습, 독수리 훈련 실시가 예정됐다. 한·미당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재개하면 한·미 합동 또는 한국 단독으로 미사일 실사격 훈련을 진행하거나, B-52H 장거리 폭격기 또는 B-1B 전략폭격기 등 미국의 전략자산을 한반도로 출동시켜 무력을 과시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규탄성명과 제재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은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윤 당선인은 3월28일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와 대면한 자리에서 “북한이 핵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한·미·일 간 더욱 긴밀한 공조가 필요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박진 국민의힘 의원을 단장으로 ‘한·미정책협의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은 윤 당선인이 줄곧 강조해온 ‘한·미 확장억제’를 구체화 할 것으로 예상된다.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의 실질적 가동 등이 검토될 예정으로 전해졌다.
인수위는 ‘대북강경기조’로 대표되는 이명박(MB) 정부에서 외교와 남북관계, 한·미동맹 업무에 몸담았던 이들을 재소환했다. 3월15일 외교안보분과 위원에 김성한 전 외교통상부 2차관과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 이종섭 전 합동참모본부 차장을 임명한 것이다. 특히 김태효 전 기획관은 MB 정부의 안보정책 총책으로 알려졌으며 한국 판 ‘선(先)핵폐기 후(後) 체제보장으로 알려진 ‘비핵·개방·3000’을 실행에 옮긴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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