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에서는 연말과 새해에 크리스마스를 시작으로 12일째 되는 날인 ‘이피파니(Epiphany)’로 정점을 찍으며 축제 분위기가 이어진다. 이피파니는 동방박사들이 특별한 왕의 탄생을 예고하는 별을 관측하고 이 별을 따라가 갓 태어난 아기 예수를 경배했다는 날이다.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이 날을 크리스마스로 지키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이피파니에 손님들을 초대해 함께 나눌 거대한 케이크를 만들어 이날을 기념하는 파티를 벌이기도 한다. 케이크 속에는 특별히 콩 하나가 숨겨져 있는데, 참석한 이들 중 자신의 케이크 조각에서 콩을 발견하는 사람이 파티의 주인공이 된다.
최근 공식자료에 의하면 2022년 영국 인구의 47%만이 기독교인이라 밝혔다고 한다. 이는 영국이 기독교를 국가 종교로 삼은 이래 처음으로 기독교인의 수가 인구의 절반 이하로 내려간 놀랄 만한 현상이다. 그래서 2022년을 영국의 종교 역사상 분기점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따라서 근래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원래의 종교적 의미를 되새기기보다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취향에 맞게 재개발한 의미의 절기 파티로 대체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신이 인간으로 탄생한 것을 믿는 신자든 ‘이피파니’의 정신을 인간 철학으로 설명하는 비신자든 크리스마스 축제가 막을 내리면 모두 다 직면해야 하는 현실이 있다. 이제 꿈에서 깨어나 일상생활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이다.

12일간의 크리스마스 축제가 끝나기 전, 영국인들을 흠뻑 빠져 있던 환상적 휴가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도록 준비하게 하는 특별한 의식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동안 주변을 온통 동화 속 나라로 둔갑하게 했던 크리스마스 장식을 마치 꿈에서 깨어나려고 애쓰듯 과감히 떼어 내 쓰레기통에 집어넣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행복한 꿈의 세계를 일부러 파괴해야 할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다. 필자도 왜 이피파니 전날 크리스마스트리를 걷어 내야 하는지 이유를 물었었다. 돌아온 대답에는 미신 같지만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영악한 단서가 붙어 있었다. 이를 실행하지 않으면 ‘악운’이 닥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이웃집에서는 문 밖 벽에 밤이면 불이 들어오는 흰 루돌프 사슴 두 마리와 크리스마스 화환을 장식해 놓았었다. 그런데 이피파니 전날 밤, 이웃집에서 들락날락 부산스럽게 뭔가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이웃 집에서는 문 밖에 장식해 두었던 루돌프와 화환이 보이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축제가 끝나고 일상생활이 다시 시작되는 1월은 어린이건 어른이건 영국인들에게 월요병같이 힘든 한 달이 된다고 한다. 우선 어린이들은 이제 학교로 돌아가야 할 시간인데, 이것보다 더 혹독한 현실이 어디 있겠는가! 어른들은 이보다 더 실질적인 문제에 봉착해 어린 자녀들을 달래 줄 여유가 없다. 크리스마스 축제 때 준비했던 선물, 친지와 친구를 초대하느라 장만했던 소파와 텔레비전을 신용카드로 구매했다면 이제 이를 갚기 시작할 때가 온 것이다. 이로 인하여 마음이 무거운데 축제 동안 늘어난 체중으로 몸도 무겁다. 때를 같이해 잡지와 인터넷에서는 온갖 ‘다이어트’ 비법들이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은 체중 조절을 위해 헬스클럽(Gyms and Fitness Clubs)을 찾기 시작한다.
“It’s time to take down all the Christmas decorations!”
이제 크리스마스 장식을 모두 떼어 내야 할 시간이야!
“Can we eat the chocolates now?” 크리스마스트리에 12일 동안 장식해 놓았던 초콜릿들은 어린이들에게 적지 않은 인내를 요구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치우는 과정에서 초콜릿들을 떼어 내면 마침내 어린이들은 “우리 이제 초콜릿 먹어도 되나요?”라고 묻는다.
A lady who finds the pea in her slice of cake becomes Queen for the night.
자신의 케이크 조각에서 완두콩을 찾아낸 여자는 그날 밤 파티의 여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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