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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첩, 기는 수사’
[단독] 최첨단 사이버 수법 날뛰는데 70년 된 구닥다리 법제가 ‘발목’
제주·창원 간첩단 음어화 교신 ID·비번 공유… 전송 흔적 없앤 수법 교묘, 유튜브 댓글 교신도
넘긴 정보 국가기밀 아니라고… 동남아서 北 공작원 접선해도 보안법 4조 간첩죄 적용 못 해
허겸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6-07 22:25:00
▲권영해 전 안기부장이 7일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린 ‘최근 북한의 간첩공작과 대책’ 세미나에서 기조발언하고 있다. 사진=남충수 기자
 
<김○○는 경찰조사 받았고 전화기 압수된 상태. 아직 구속자 없고 대우조선(사측)에서 500억 원 손해배상소송. 김은 구속되지 않을 가능성 큼. 부지회장 맡고 있어 투쟁 일선에서 물러설 수 없는 상황. 공백을 피하기 위해 구속되지 않도록 활동 조율. (정부) 사찰 주의하고 보안규율 각별히 지킬 것 요구. 별도 휴대폰으로 비상선(비공개 소통라인) 갖기로 함. 월 1회 회의 유지하기로 함.>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의 장기 파업 당시 북한에 포섭된 것으로 방첩 당국이 추정하는 한 인사의 동향을 담은 대북 보고문의 일부다. 간첩 혐의로 대공 수사망에 걸려든 A씨가 북한에 전달한 기록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A씨는 포섭 대상으로 삼은 또 다른 인사에 관해서도 일일이 동향을 보고했다. 그는 작년 8월30일 대북 보고문에선 "안○○는 총회장(김정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북한에 알린 혐의를 받는다. "올해 중 ‘후원회’에 가입시키는 게 목표"라며 포섭 의지도 내비친다. 
 
앞서 작년 6월 북한으로부터 지령을 받은 뒤에는 전국회비대위라는 조직과 관련해 "총회장(김정은)에 대한 충실성이 높은 사람을 고르기 어렵다"며 올해까지 현 체계로 가겠다고 보고한 정황이 방첩 수사망에 포착됐다. 
 
▲ 최초로 공개된 간첩포치(전국 간첩분포) 지도.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이 분석한 것이다. @스카이데일리
 
국내에 잠입한 직파 간첩이나 그간 암약해 온 포섭 간첩의 통신 수법이 국내 정보기술(IT) 인프라 발전에 힘입어 진화하고 있다. 이메일과 유튜브·SNS 등을 활용해 마치 대공 수사망을 비웃듯 자유롭게 넘나드는 실정이라는 게 정보당국의 우려다. 
 
하지만 간첩 행위를 감시·적발할 법적·제도적 시스템은 길게는 70년 전에 마련된 것도 있어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 '기는 대공 수사 위에 나는 간첩'이라는 힐난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제주·창원간첩단 사건을 수사 중인 방첩 당국은 북한과 첨단 암호화방식으로 교신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첨단암호화 방식인 스태가노그래피(steganography)와 클라우드·이메일 등을 이용한 사이버 드보크(Syber Dvoke) 수법이 그것이다. 
 
스테가노그래피는 비밀메시지를 이미지·오디오·비디오·텍스트 등에 ‘커버’라 불리는 숨겨진 메시지를 넣어놓고 전송하는 첨단기법이다. 메시지를 숨기고 전송여부도 기록이 남지 않는다. 
 
포렌식 수사로도 로그 데이터 확보가 쉽지 않은 이 방식은 2001년 알카에다가 9·11테러 공격의 준비·실행에 사용됐다. 국내에선 2011년 왕재산간첩단과 2021년 청주간첩단 사건에서 존재가 드러났다. 
 
버젓이 유튜브 댓글로 교신하는 등 수법도 날로 대담해지고 있다. 민주노총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실개천’ 명의의 암호해독 코드가 게시물로 올라왔다. 방첩 당국은 2019년 북한 통일전선부 문화교류국이 ‘실개천’을 교신 수단으로 활용하도록 내린 지령을 입수했다. 
 
‘4·15 선거’ 北 드보크 개입 의혹… 선관위 해킹 작년만 4만 건 육박, 대공 수사력 못따라가 
 
온라인 공간에 드보크(무인 매설함)를 설치한 사이버 드보크 기법은 북한 상부와 국내 간첩이 외국계 이메일 계정을 개설, 서로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공유하며 음어화된 교신내용을 주고받는 방식이다. 지령받고 송출할 필요조차 없게 된 것이다. 문재인정부 시절 국내 방위산업체가 일제히 뚫렸을 때 내부자가 접속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북한이나 중국 등 적성국과 공유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있었다. 
     
▲ 중앙선관위의 메인 서버 ID와 PW. 한 시민단체가 소각장에서 수집했다. 미디어A·바실리아
 
문재인정부 당시 조작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 '4·15 부정선거' 사건에서도 같은 패턴이 발견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의 메인 관리자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고스란히 담긴 문서를 한 시민단체가 소각장에서 수집했다. 과연 누가, 몇 명이 정보에 접근하고 열람했는지 단체가 고발을 통해 수사를 의뢰했지만 진실은 규명되지 않은 채 묻혔다. 
 
사정이 이런데도 사법의 최후 보루인 대법원은 "부정선거 입증이 부족하다"며 원고의 소송을 기각한 일도 있다. 대법원은 21대 총선의 조작 의혹을 법적으로 다툰 민경욱 전 국회의원의 소송사건에서 "원고(민 전 의원)가 부정선거를 실행한 주체가 누구인지 증명하지 못했다"며 패소판결했다. 
 
수사권이 없고 법률상 자연인으로 돌아간 전직 국회의원에게 입증책임을 돌린 것이다. 검찰·경찰·공수처·감사원 등 문재인정부의 사정기관은 부정선거 관련 고소·고발 사건을 일체 수사하지 않아 무성한 뒷말을 낳았다. 
 
북한 등 적성국 해커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국가기관 해킹사례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지만 대공 수사력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라는 말들이 나온다. 
 
선관위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선관위에 대한 해킹 시도는 작년에만 3만9896건으로 해마다 증가 추세다. 이중 상당수는 중국과 제3국을 경유한 북한의 해킹 시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관위는 해킹 사건에 대한 감사원의 보안감사를 거부했고,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처럼 IT기술 발전에 편승하는 안보 위해행위가 점증하는 가운데 자유민주연구원·한국국가정보학회 주관으로 7일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린 '최근 북한의 간첩공작과 대책' 세미나에서는 이 같은 안보 공백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잇따랐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이 발제하고 있다. 사진=남충수 기자
 
세미나를 주최한 자유통일국가대개조네트워크의 김학성 대표는 "세계 10대 강국으로 발돋움한 대한민국이 국가의 존립을 위협받고 있다"며 "황장엽 선생은 남한 내 5만 명의 간첩이 있다고 했지만 26년이 지난 현재는 훨씬 더 상회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임 대통령을 일컫어 "'간첩 대통령'이 자신과 동지 관계에 있는 간첩들을 체포하지 않은 탓"이라며 "오늘 세미나가 대한민국의 암적 존재인 간첩을 소탕하고 국가의 안보를 튼튼히 하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고 언급했다. 
 
세미나에선 오래전 재·개정된 법·제도가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는 문제점이 비중 있게 논의됐다. 
 
전북망·창원간첩단 사건에서는 간첩죄로 익히 알려진 국가보안법 제4조(목적수행)가 적용되지 못했다. 북한에 전달·누설한 내용이 실정법상 국가기밀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2015년 북한 연계 의혹 목사 B씨가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 접선 3차례, 회합·통신·북노선 고무·찬양과 공작금 1만8900달러를 수수한 사실이 확인됐지만 4조가 적용되지 못했다. 올해 적발된 간첩단은 여러 차례 동남아에 나가 북한 공작원을 접선·회합하고 북한 지령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 반대와 반정부·반미·반일·반보수 활동을 전개했지만 역시 간첩죄는 적용되지 않았다. 
 
사법부 판결도 엇박자 행보를 보인다. 1982년 대법원 판결은 “‘국가기밀’을 군사기밀에만 국한할 수 없다"며 폭넓게 해석했다. 그러나 1997년에는 "국가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기밀로 보호할 실질 가치를 갖춘 것"만 국가기밀로 엄격히 해석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국보법 4조나 형법 89조(간첩)는 최소 32년에서 70년 전에 제정된 것"이라며 "그때와 달리 정치·사회·경제·문화·군사 환경이 급속히 변화했고 간첩 활동 수단·방법이 진화되고 있어 법·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이 7일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린 ‘최근 북한의 간첩공작과 대책’ 세미나에서 발제하는 가운데 참석자들이 경청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이날 행사에는 김영삼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낸 권영해 전 안기부장이 기조연설했다. 권 전 부장은 "오래전 이탈리아 공산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전'을 가장 잘 구현한 집단이 북한"이라며 "남한 내 암약한 간첩이 앞으로 줄줄이 나올텐데 그때마다 제주 간첩단이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반체제세력과의 전면전을 선포할 것인가에 관한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국가정보원 수사처장을 역임한 윤봉한 국가안보통일연구원장과 전 북한공작원 김동식 씨가 토론에 참여했다. 또 이재원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한변) 회장과 이길규 한국국가정보학회장·이동호 캠페인전략연구소장·이용수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집중토론을 진행했다. 사회는 남주홍 전 국정원 차장(캐나다 대사)이 맡았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 의장은 화상축사를 통해 "최근 간첩단의 구체적 존재가 확인돼 나라가 충격에 빠졌다"며 "간첩과 대남공작은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나날이 힘을 키우는 현실적인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윤상현 의원은 "창원·청주·제주 등 간첩단의 활동은 최첨단 기법으로 위기감을 더한다"며 "안보경찰 역량을 강화 해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할 때"라고 했다. 국민의힘 신원식 국회의원은 "문재인 정권이 무력화시킨 국가보안법의 실효성을 복원하고 국정원 대공수사권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허겸·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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