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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에 의하면 여자가 남자보다 길눈이 어둡다고 한다. 인간 행동 연구가 마이클 본드의 ‘길 잃은 사피엔스를 위한 뇌과학’(2020)에는 야영에 나섰다가 숲에서 길을 잃어 19일간 헤매다 숨진 ‘제리’라는 여성의 사례가 등장한다. 제리가 발견된 후 경찰은 다음과 같은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녀의 텐트가 있던 곳에서 일직선으로 불과 800m 떨어진 곳에 오솔길이 있었고, 그녀가 언덕을 따라 내려갔다면 오래된 철길이 있어 그 철길을 따라가면 양방향 모두 곧바로 숲을 벗어날 수 있었다.”
살 수 있는 길을 옆에 두고도 제리가 같은 자리를 뱅뱅 돈 이유는 무엇일까. 편견이 아니라 실제로 여자가 남자에 비해 길치라고 한다. 이는 뇌의 활성화되는 부위가 다르기 때문인데 길을 잃으면 남녀 모두 뇌 전역에서 활성화가 일어나되 남성은 ‘해마’ 부위가, 여성은 ‘전두엽’이 활발해진다.
먼 옛날, 채집과 수렵이 일반적이던 원시시대에 남성은 주로 사냥을 담당했고, 여성은 채집 위주로 일을 했다. 사냥할 동물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남자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봐야 했다. 자연스럽게 뇌도 그런 방향으로 진화했다.
반면 여성은 열매가 있는 곳을 따라가다가 너무 멀리 왔다 싶으면 지나온 곳을 되밟아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 과정에서 나무라든가 바위 같은 사물의 생김새를 눈여겨보는 능력이 강화됐다. 쉽게 말해 남성은 집을 잘 찾고, 여성은 집안에 있는 물건을 잘 찾는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를 직역하면 ‘길 잃은 여인’이다. ‘거리의 여인’이라는 뜻도 된다. 라 트라비아타는 1853년 초연됐는데 베르디가 ‘리골레토’로 쌓은 명성에도 처참하게 실패했다. 거리의 여인이 부잣집 도련님과 사랑을 나눈다는 사실을 시대가 받아들이지 못한 탓이다.
베르디는 이듬해 라 트라비아타를 다시 무대에 올리면서 배경을 1700년대 파리로 수정했다. 그랬더니 웬걸, 초연과 달리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동시대 일이라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특별한 사랑’도 먼 옛날,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면 받아들일 만하게 느껴지는가보다. 베르디가 늦게나마 제 길을 찾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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