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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이 연일 터지는 대형 금융사고들로 휘청이고 있다. 이달 초 BNK경남은행의 한 직원이 560억 대 규모의 자금에 손을 댔다가 적발됐다. 경남은행 부동산투자금융부장으로 일하던 50대 직원이 562억 원 규모의 고객 돈을 횡령·유용한 혐의가 드러나 법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해당 직원은 2007년 12월부터 2023년 4월까지 15년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업무를 담당하면서 총 562억 원을 횡령·유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경남은행 횡령 사고가 특히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이미 수년 전부터 진행돼 온 장기 사건인데도 경남은행에서도 해당 비위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은행권 내부 통제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증명된 셈이다.
금융당국은 이번 경남은행 횡령 사고를 더욱 중대하고 심각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무엇보다 횡령 액수가 역대 두 번째로 크다. 지난해 4월 우리은행에서 기업개선부 차장으로 근무하던 한 직원이 707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거액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 사회적 물의를 빚은 지 1년 만에 횡령액수가 거의 이에 근접하는 대형 사고가 또 터진 것이다.
작년 우리은행 700억 원대 횡령사고로 은행의 근본 존재 가치인 ‘내 돈을 맡길 수 있는 기관’이라는 기본적인 신뢰마저 흔들리는 위험한 상황이 도래하자 금융당국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같은 해 11월 국내은행 내부통제 혁신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달 터진 경남은행 560억 원대 횡령 사고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작년 말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마련한 자체 혁신 방안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대부분의 대응책이 전혀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횡령이 저질러졌다.
당국은 은행권 대형 횡령 사건의 주요 배경에 한 부서에 오래 근무한 직원이 다수 존재하고 이들이 ‘내부 사각지대의 허점’을 너무나 잘 알고 이를 노려 횡령을 저지른다고 판단했다. 이에 혁신 방안의 주요 골자로 장기 근무자에 대한 인사 관리 기준 강화와 명령 휴가 대상자에 동일 부서 장기 근무자 및 동일 직무 2년 이상 근무자도 포함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경남은행 560억 원대 횡령사고 주범은 작년 말 당국의 혁신방안 발표 이후에도 여전히 올 4월까지 PF 업무를 맡아 무려 15년간이나 경남은행의 PF 대출을 총괄해 왔고 그 과정에서 고객의 돈에 손을 대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특히 이달 들어 은행원들이 일으키는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터지고 있다. KB국민은행에선 직원들이 업무상 알게 된 고객사들의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127억 원 규모의 주식 매매 차익을 챙긴 사실이 드러났고 DGB대구은행 직원들은 고객에게 고지하지 않고 문서를 조작해 증권계좌 1000여 개를 개설했다.
일선 행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중은행은 아니지만 새마을금고에선 부동산 PF대출 부실 관리로 지난달 뱅크런(대규모 인출 사태)이 발생하더니 검찰이 새마을금고 최고경영자(CEO)인 박차훈 중앙회장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박 회장의 측근들이 3000억 원대의 새마을금고 펀드 출자금을 유치해 주는 대가로 거액의 뒷돈을 받았다는 혐의를 포착했고 박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물론 법원으로부터 영장이 기각돼 새마을금고 현직 회장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대규모 뱅크런으로 이미 고객을 불안하게 한 것에 더해 최고 수장이 금품수수 의혹까지 받으면서 새마을금고에 대한 고객 신뢰도는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다.
계속되는 은행 직원들의 비위에 금융당국도 규제의 틀을 더욱 옥죄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아예 금융사고 발생 시 CEO에게도 책임을 묻는 법률 개정안 추진에 착수했다.
이미 건설업계에선 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광주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 붕괴 사고 등으로 인명사고 발생 시 건설사 CEO도 처벌할 수 있게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고 결국 중대재해법은 작년 초부터 시행됐다.
공사 현장에서 사고는 아무리 안전 수칙을 지켜도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다. 이에 대해 CEO에게도 책임을 묻는 것은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일이기에 문제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건설 사업장에서 인명 사고가 잇따르자 결국 중대재해법은 그대로 시행됐다.
은행권 역시 건설업계의 전철을 밟고 있다. 당국이 지난해부터 강력한 내부 통제와 혁신을 주문했지만 은행권은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결국 올해 들어 계속 되는 대형 금융 사고로 금융당국에서 금융사 CEO에게까지 손을 대는 ‘극약 처방’을 써야 하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일선 직원의 횡령 사고를 넘어 금융기관 회장까지 뒷돈 거래를 하는 혐의가 드러나자 당국도 더 이상 금융사의 자체적인 자정 작용을 기대하기엔 힘들다고 판단한 것이다.
은행권에선 한국 금융사들이 자동차 업계나 정보기술(IT) 업계 등 여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처럼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려면 당국이 규제로 꽁꽁 묶고 있는 은행업을 ‘규제 산업’에서 풀어 주고 당국이 금융사 경영에 간섭하는 ‘관치금융’ 행태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최근 연달아 터지고 있는 은행권 사건사고를 지켜보면 과연 은행들 스스로 ‘규제 산업’과 ‘관치금융’의 사슬에서 벗어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오히려 일선 행원부터 윗선의 CEO까지 문제를 일으켜 더욱 강한 ‘규제’와 ‘관치’로 몸을 옥죄도록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모양새다.
국내 은행들이 정부 당국의 감시와 규제를 벗어나고 싶다면 스스로 그에 걸맞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지금까지의 행보는 이와 맞지 않다. 국민은 자신의 돈에 손을 대는 행원과 금융사 CEO들을 보며 진심으로 불안해 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 비판 여론이야말로 은행권이 먼저 뼈져리게 깨우쳐야 하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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