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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지을 땅이 없는 서울은 새로 짓는 아파트의 세대수가 많지 않지만 수도권은 사정이 좀 다르다. 지난 6년 사이 여러 신도시엔 몇 만 세대 단위로 무량판 아파트들이 공급돼 입주 또는 완공을 앞두고 있거나 공사 중이다.
그 아파트 단지들마다 설계와 감리는 정확하게 했는지 시공 과정에서 이번처럼 철근이 빼돌려진 건 아닌지 확인을 해 봐야 하는데 무량판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들을 일일이 뜯어 보기 전엔 알 수가 없다.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 따로 없다. 평생을 살아가야 할 집이라 어렵사리 장만했는데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감과 두려움 속에 숨죽여야 한다면 이건 전혀 새로운 차원의 공포다.
이번 무량판 사태는 비단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민간 건설기업의 수주 공사들까지 공사 방식이 같다면 모두 재점검하고 확인해야 할 필수불가결한 문제로 부상했다.
한국의 아파트 건설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런 평가가 무색하게 광주광역시 화정에 이어 인천시 서구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지하주차장이 붕괴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건설업계 내에선 알 사람은 다 아는 이권 카르텔이 얽혀 얼룩진 결과였다.
설계대로 감리하지 않았고 정량의 철근 시공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지하주차장의 무량판이 맥없이 무너지면서 이 추악한 카르텔은 속살을 드러냈다. 시멘트로 덮어 버리면 모를 줄 알았을까. 무량판 기둥의 부족했던 철근들은 마치 살해당해 시멘트 속에 유기됐던 시신이 드러나듯 죄악과 탐욕으로 얽히고설킨 이권 카르텔의 실체를 낱낱이 드러내 보였다.
건설감리업계에 따르면 지하주차장에 적용되는 무량판 구조의 단점은 기둥 위에 슬래브를 얹는 방식이어서 기둥 주변으로 철근 보강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문제의 지하주차장은 설계 구조상 32개의 기둥 각각에 보강철근이 들어가야 하는데 15개 기둥의 철근이 빠져 있었다. 그나마 설계 도면대로라면 17개 기둥에 보강철근이 적용됐어야 한다. 하지만 면밀히 확인하고 승인해 줘야 할 책임이 있는 감리는 알고도 모른 척 눈을 감았다. 시공 과정에서도 철근은 추가로 빼돌려졌다. 그런데다 지하주차장 기둥에 타설된 콘크리트마저 강도 시험에서 기준 미달로 조사됐다. 발주처는 LH이고, 시공사는 GS건설이었다.
이번 무량판 사태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겨 버려선 안 된다. 인명 사고가 없었지만 붕괴는 언젠가는 일어날 것이었다. 돈에 눈이 먼 감리·설계·시공 당사자들은 이참에 반드시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묻고 처벌해야 한다.
주거동 바닥 구조에 무량판 방식이 본격적으로 확대된 것은 2017년부터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부활한 분양가 상한제와 맞물려 주거복지 로드맵에 따라 공공임대 아파트 공급을 확대하면서 LH가 발주·시공하는 대부분의 아파트에 무량판 방식이 적용되다시피 했다. 문 정부의 국토교통부는 분양가 가점 항목에서 완전 무량판 구조에 대해서는 5%, 벽식과 무량판 복합구조에 대해서는 3%의 가산점을 주면서 무량판 방식의 채용을 적극 유도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반드시 국정조사를 추진해야 한다. 국민 주거안정을 위해 설립된 LH는 부실과 무능·도적적 해이가 도를 넘어 존치할 명분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으로 망가져 버렸다. LH는 2021년 임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논란 때에도 스스로 혁신과 반성·자정(自淨)을 약속하며 국민 앞에서 고개를 떨구었다.
그래 놓고선 뒷구멍으로 LH 출신 전관들이 창업하거나 취업한 감리업체로부터 향응과 금품을 받았다. 그리고 이들에게 수백억 원대의 수의계약을 몰아 주는 비리를 저질러 왔다. 2009년 한국토지공사(L)와 대한주택공사(H)를 통합해 만든 LH는 이제 다시 L과 H로 분리·해체해야 한다. 엄중하고 처절한 혁신이 이뤄져야 하고 조직의 슬림화로 본래의 설립 취지와 목적에 맞는 공기업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합병 이후 LH는 방만한 운영을 이어 오며 사리사욕과 탐욕에 눈이 멀었다. LH를 이대로 존치한다면 재앙만 불러올 뿐이고 윤석열정부의 짐이자 치명적인 흠결로 남을 수 있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이 걸린 일이기에 무량판 붕괴의 책임은 미래에 혹여나 일어날 잠재적 참사를 미연에 막고 사전에 진상조사를 한다는 각오로 끝까지 추적해 재감리를 해서라도 부실공사를 모두 밝혀 내야 한다. 여기에는 민간 건설사도 예외가 아니다.
집값 폭락을 염려해 조사를 꺼려서도 안 될 것이다. 과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정상적인 설계 도면대로 철근과 시멘트가 제대로 감리를 거쳐 시공된 것일까? 한밤중에 무너질지도 모르는 아파트에서 목숨을 걸고 살며 아파트의 상태를 모른 채 폭탄 돌리기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상 인천시 무량판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붕괴와 함께 국민 주거 안전판의 신뢰도 무너졌다.
건설업계의 이권 카르텔을 뿌리뽑겠다는 집권 여당의 약속은 더 이상 정치적인 수사 몇 마디의 공염불로 끝나선 안 된다. 권력도 건축물처럼 떠받드는 지지대가 약해지면 무너진다는 단순 이치를 알고 있다면 말이다. 윤 정부와 여당은 지금 국민이 지켜보는 무량판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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