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택칼럼] ‘낮도둑’과 부패 관리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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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8-28 00:02:40

“큰 쥐야, 큰 쥐야. 내 기장을 먹지 말아 다오(碩鼠碩鼠無食我黍)!” 가난한 백성이 탐욕에 눈먼 세금 징수 관원에게 “제발 지나치게 세금 좀 걷어가지 말라”고 한 하소연이다. 백성의 고혈을 짜낸 세금으로 ‘쌀밥 먹고 비단옷 입는’ 등 호의호식하는 탐관오리를 향한 ‘무명옷에 기장밥도 제대로 못 먹는’ 백성의 분노이자 원성(怨聲)이다. ‘시경’에 나온다.

공무원의 청렴의무에 대한 윤리관 확립이 시급하다. 지방공직자의 경우는 여전히 청렴의무에 대한 무지와 무시가 심각하다. 우리 지방자치는 다수 단체장들의 위민 행정 실천과 함께 지방의원들이 입법 활동·예산 심의·행정사무 감사 등에 힘써 온 덕분에 풀뿌리민주주의 구현 ‘동네 일꾼’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했다.

그러나 아직도 지방자치가 분노와 자괴의 동의어가 돼선 안 된다는 절박감을 갖게 하고 있다. 특히 일부 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의 윤리 도덕성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일부 지방의회에선 일반 소시민은 생각도 못할 의장단 자리다툼은 물론 거짓말·도박·부패 비리·성매매 및 유사성행위 의혹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적잖다. ‘막장 드라마’ 못지않은 지방자치의 어둠을 일부 들춰 보자.

수뢰와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Y 전 서울 동대문구청장은 공적 기부금을 지지자 관리 등 사적 용도에 쓴 것으로 검찰이 파악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Y 전 구청장은 재직 시절 저소득층 지원용 선물을 빼돌려 지지자들에게 나눠 줬다. 업무추진비 수천만 원을 허위 명목으로 현금화하고 일부를 여행 경비나 지인 선물·화환 대금 등 사적으로 쓴 혐의도 있다.

언론인 출신으로 용인시장에 이어 국회의원까지 지내며 승승장구하던 J 전 국회의원은 개발업자에게서 받은 뇌물로 의원직도 박탈당했다. 그는 시장 취임 직후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개발사업 인·허가를 도울 테니 부동산을 싸게 넘기라”고 먼저 요구해 뒷돈을 챙겼다. 중개업자를 통해 시가 2억8100만 원 상당의 토지를 자신의 친형이 1억9100만 원에 매입할 수 있게 하고 취·등록세 880만 원도 대신 납부하게 했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현장이다. ‘땀’의 가치는 무겁고 크다. 아니 고귀하다. 반면 일하지 않고 거둬들이는 불로소득은 가볍고 작기 그지없다. 그래서인가. 옛 성현들은 “아무 까닭 없이 천금을 얻는 것은 큰 복이 아니라 반드시 큰 재앙이 따른다”고 경책했다. 하물며 공직자인 관리가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를 하는 것은 사회 기본질서를 무너뜨리는 큰 범죄다.

물론 관리의 비리 역사는 짧지 않다. 조선에선 아예 부패한 관리를 ‘낮도둑(晝賊·주적)’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공직자가 깨끗하지 않으면 백성은 그를 도적이라 손가락질하고, 그가 마을을 지날 때에 더럽다고 욕하는 소리가 높을 것이니 이는 부끄러운 일이다(牧之不淸民指爲盜閭里所過醜罵以騰亦足羞也)”고 외쳤던 것이다. 이 같은 경책이 넘쳐남에도 악습은 사라지지 않고 있음이 재확인되고 있으니 이를 어찌해야 할까.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력 순위 10위권에 걸맞은 청렴도의 위상을 지니기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나라는 국가청렴도(CPI·2022년도)에서 100점 만점에 63점으로 180개국 중 31위다. 국제투명성기구(TI) 한국본부가 “우리나라의 부패인식지수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공적자금과 관련한 청렴도가 크게 개선됐으나 공직사회와 관련된 지표들이 하락했고 개선돼 가던 경제활동과 관련된 지표들이 하락으로 돌아섰다는 점”이라고 지적한 내용을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

공직자들의 투명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비판이다. 범정부 차원의 반부패정책 추진과 청렴 리더십 강화, 이해충돌방지법과 청탁금지법의 엄격한 시행과 정착, 기업의 준법 활동과 윤리경영 활성화, 공익신고자 보호 확대, 청렴 교육 확대, 청렴 사회 협약 확산, 자율적 반부패 운동과 민·관 협력을 통한 반부패 문화 확산이 절실함을 말해 준다.

중앙·지방 공히 공직자들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비리 행각이 절대 발각되지 않을 것이라거나 힘으로 누를 수 있을 거라는 환상, 그것이 별것 아니라는 착각에 빠질 경우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수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악덕은 미덕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화한다. 그러나 정의감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무장한 시민 감시망은 더욱 큰 눈을 뜨고 이를 주시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청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선 먼저 공직기관부터 깨끗해야 한다. 공무원이 국민에 봉사하는 공복(公僕)이 아니라 국민 위에 군림하는 갑이라는 공직사회의 그릇된 인식부터 바뀌길 바란다.

스카이데일리 skyedaily@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