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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기술이 국가 생존과 번영을 좌우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다. 기술패권 경쟁 시대에 직면한 세계 각국은 최고 수준의 기술을 확보하고, 기술 유출을 막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우리나라도 경쟁의 한복판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등 선진국들과 맞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R&D 투자가 시작된 1963년의 정부 R&D 예산은 12억 원에 불과했다. 60여 년이 지난 올해 정부 R&D 예산은 30조 원(국가 전체 예산 대비 5.1%)으로 미국·중국·일본·독일에 이은 세계 5위 규모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투자 비중으로는 세계 1위다. 돌이켜 보면 보릿고개를 겪던 시절 베트남 파병 대가로 연구기관 설립을 요구했을 정도로 우리 정부는 뚝심 있게 R&D 투자를 지속해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 국가로 성장한 배경엔 획기적 기술 개발이 산업 발전을 견인한 결과다. 과학기술력이 국력임을 여실히 보여준 교훈이다.
사리가 이러함에도 정부가 2024년도 새해 예산안에서 R&D 예산을 25조9000억 원으로, 올해보다 5조2000억 원(16%)이나 대폭 삭감했다. 정부는 총지출 656조9000억 원 규모의 새해 예산안을 의결했다. 올해 예산보다 2.8% 증가한 것으로 2005년 이후 역대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지난 정부 시절 방만한 재정 운영으로 국가채무가 400조 원 증가했고, 지난해 최초로 1000조 원을 돌파해 건전재정이 크게 위협받고 있어 미래세대에게 과도한 짐을 지우지 않겠다는 윤석열정부의 의지는 긍정 평가된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줄지 않았던 R&D 예산이 대폭 삭감된 건 납득할 수 없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과 항공우주연구원은 23%, 화학연구원과 과학기술정보연구원 28%, 카이스트 등 4대 과학기술원도 약 10%대의 삭감안을 통보받고 반발하고 있다.
전 세계가 R&D 주도권 확보를 위해 경쟁하는 상황에서 연구비 삭감은 연구 환경을 악화시키기에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칫 첨단 과학기술 인력의 해외 유출이 우려된다. 정부는 과학자들이 안정적 환경 속에서 창의적 연구 성과를 꽃피울 수 있도록 예산 삭감을 재고해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발전의 핵심 동력이었던 R&D가 과거 추격형 연구에 머물러 있고 비효율 누적·예산낭비·기득권 형성 등의 문제점이 노출돼 있어 개선은 필요하다. 연구의 질보다 양적 성과를 강조하고 통제 위주로 과제를 관리하면서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혁신적 연구는 위축되고 있었다. 비효율과 낭비를 유발하는 나눠먹기 및 뿌려주기 과제를 방지하기 위해 과제 선정의 신뢰성·연구비 집행의 투명성·평가의 전문성을 높이는 게 요청되고 있다. 나아가 연구개발통합관리시스템(IRIS)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고도화하고, 엄정하고 주기적인 재정집행 점검·사업평가 등을 통해 R&D의 성과 부진·재정낭비 등도 근절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예산의 효율성 제고가 시급하다고 해도 R&D 예산을 1년 새 5조여 원이나 대폭 삭감하는 건 설득력이 없다. 선진국 수준의 과학기술 발전을 기하고, 세계를 앞장서 이끄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국가가 되기 위해선 과학기술인 양성과 예산 뒷받침이 필수적임은 상식이다.
일본은 과학 분야에서만 2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본은 세계가 인정하는 과학기술 강국이다. 당장의 성과보다는 멀리 보고 기초과학 분야 인재 양성에 나선 결과다. 우리도 차분하게 인재를 키워나가야 과학기술 선진국 반열에 설 수 있다. 그 바탕은 아낌없는 R&D 투자임을 직시해야 한다. 새해 R&D 증대는 필수적 사안으로서 정부와 국회가 뒷받침해 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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