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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에 대해 말들이 많다. 언제부터인가 정치인의 단식 자체가 흔한 일이 되면서 임팩트도 줄어든 느낌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단식과 고행의 전통이 있는 서구·중동·인도 문명권과 달리 동북아 특히 우리나라에선 ‘스스로 곡기를 끊는’ 행위가 남다른 비장함·절박함을 가진다. 가난과 기아의 기억이 생생해서인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오죽하면…’ 식의 정서가 있었다.
이 대표 단식을 보며 어릴 적 읽은 구전 민담이 떠올랐다. 옛날 어느 마을에 저마다 자신의 홀아버지를 봉양하는 두 아들이 살았다. 각각 효자와 불효자로 평판이 나 있는 가운데 마을 원님이 효자의 집에 불효자를 보내 ‘보고 배우라’ 지시한다.
불효자는 효자와 함께 생활하며 그의 행동을 지켜봤다. 밥상이 나오자 아버지가 숟가락을 들기 전 음식을 하나씩 맛보는가 하면 밤이 깊어지니 이부자리를 펴고 먼저 침구 속에 들어가 있다가 아버지께 자리를 내줬다. 아버지는 아들의 행동에 만족감을 표하며 칭찬한다. 귀가한 불효자가 효자의 행동을 그대로 자기 아버지에게 했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먼저 음식에 손댄 것, 침구 속에 먼저 들어간 것 모두 버릇없는 행동 취급을 받았다.
효자가 아버지 밥상의 음식을 먼저 먹어 본 것은 건강이 좋지 못한 아버지를 위해 음식 상태를 미리 점검한 행동이었다. 아버지 이부자리에 먼저 들어간 것 역시 겨울날 잠자리를 덥혀 놓기 위해서였다. 반면 불효자는 전후사정을 고려치 않고 맥락도 없이 무작정 효자를 따라하다가 꾸지람을 들었다. ‘효심’이 결여된 상태에서 한 일련의 행동은 무례함 철없음으로 비쳐졌을 뿐이다. 불효자로 불리던 인물이었으니 평소 부자 간 신뢰가 있었을 리 없다.
정치인의 단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적 호응과 국가적 대의 등의 명분이다. 그런데 이번 이 대표의 단식에 대해선 강성 지지자나 정치적 셈법을 정한 사람들 외엔 공감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역대 사례를 통틀어 이렇게 썰렁한 정치인 단식은 처음 본다며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와 비교하기도 한다.
제5공화국 정부 당시 김 전 대통령의 목숨을 건 ‘진짜 단식’에 대해선 민주인사 석방 및 직선제 개헌 등 합의 도출에 일정 부분 공헌했다는 역사적 평가가 주어졌다. 현재 국회의 과반 의석을 차지한 원내 제1당의 대표는 김 전 대통령과는 개인적·시대적 처지가 전혀 다르다. 비리에 연루돼 형사소추를 당하게 된 정치인이 ‘민주투사 호소인’ 퍼포먼스를 벌이는 상황으로 보여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 대표가 주장하는 단식의 명분‧시기 및 중단 조건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있다. 민주당 내에서조차 이 대표 자신의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게 윤석열정부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냐? 자기 방탄용 아니냐는 얘기들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KBS라디오에 출연한 비명계(비이재명계) 이원욱 의원은 이 대표의 단식을 이렇게 꼬집기도 했다.
그나저나 단식의 방법 역시 ‘진화’한 것일까. 과거 단식자들에 비해 이 대표가 상대적으로 멀쩡해 보이는 것 또한 화제다. 더구나 당뇨 증상이 있다면서 어떻게 열흘째 이 상황을 버티는지 의아해 하곤 한다. 심지어 훗날 ‘단식한다니까 정말로 하는 줄 알더라’며 파안대소할 이 대표 특유의 제스처를 상상하기도 한다.
이처럼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도 이 대표가 단식을 밀어붙이는 이유를 새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법 리스크를 피할 방법이 사실상 이것밖에 없겠구나…. 국민이 뭐라든 헌정질서가 어떻게 되든 권리당원들 잘 관리해 당권 장악과 공천권 행사만 가능하면 겁날 게 없을 터이다. 의미나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 채 효자 겉모습만 무작정 따라하다 혼이 난 민담 속 불효자는 어리석었을 뿐이지만 이 대표는 아니다. 그 이면엔 현실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 훤히 내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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