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View] 미국에서 컨트리음악이 득세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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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형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9-22 00:02:40

“난 온종일 일하며 내 영혼을 팔아/ 초과 근무해 봐야 쥐꼬리 같은 수당/ …눈을 뜨면 현실이 아니길 바라/ 하지만 현실이지, 현실이야/ …리치먼드 북쪽 부자들은/ 본인이 모든 걸 통제하고 싶어 해/ 네 돈은 쥐꼬리만 못하고 세금은 끝이 없어/ 리치먼드 북쪽 부자들 때문에….” (올리버 앤서니의 노래 ‘리치먼드 북쪽 부자들’ 가사 중에서)

초기 신대륙(미국)은 동부 해안에서 가까운 지대부터 발전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배를 타고 건너온 이주민들이 처음 상륙하는 곳이 동부 해안이었다. 역대 수도 역시 178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을 때부터 뉴욕(1790년까지)·필라델피아(1800년까지)·워싱턴 DC(현재)까지 모두 동부 대도시다.

노래에 등장하는 리치먼드에서 95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175㎞가량 달리면 워싱턴 DC가 나온다. 워싱턴 DC에는 여느 민주주의 국가의 수도처럼 입법·사법·행정부의 중심 관청(백악관·국회의사당·연방대법원 등)이 모여 있다. 그러니까 ‘리치먼드 북쪽 부자들’은 미국 정치인과 관료를 가리킨다.

올리버 앤서니는 이전까지 별다른 음악 활동 경력이 없는 무명 가수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 노래의 매우 솔직한 가사에 공감했고 입소문을 타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빠르게 번졌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인 애플 뮤직과 스포티파이 1위에 이어 지난달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까지 석권했다.

특기할 점은 최근 컨트리음악의 득세다. 수년간 빌보드 차트를 지배해 온 힙합 음악이 올 상반기에 1위 곡이 없는 대신 지난달 빌보드의 메인 싱글 차트인 ‘핫100’에서 1·2·3위를 모두 컨트리음악이 차지하는 보기 드문 현상이 나타났다. 당시 미국 스포티파이에서 톱 50 가운데 30%가량이 컨트리음악이었다.

컨트리 가수 모건 월런의 경우도 특이하다. 떠오르는 별이던 그는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 중 몰래 파티를 벌이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또 흑인을 멸시하는 표현(nigger)을 쓴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속사에서 버림받았고 그의 음악은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삭제됐다. 그런데 그가 사과한 뒤 그의 노래 ‘라스트 나이트’가 빌보드에서 14주간 1위를 차지했다.

월런을 응원한 건 컨트리음악을 듣는 ‘보수적인’ ‘가난한(중산층)’ ‘백인’, 이른바 레드넥(redneck·햇볕에 목이 빨갛게 탔다는 뜻)들이었다. 월런이 미국 전반에 미움을 샀어도 레드넥은 스스로 레드넥임을 내세운 월런을 응원했다.

‘정치적 올바름(PC)’ 주의에 경도된 미국 사회에 대한 레드넥의 반감도 한몫을 했다. 그동안 미국 사회는 인종·민족·종교·성별 등에 관한 편견이나 용어 사용을 지양하는 PC주의가 널리 퍼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강요로 바뀌기 시작했다.

예컨대 2020년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남성이 숨지면서 벌어진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도 그 방향성에 공감하면서도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발언·행동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이에 염증을 내던 레드넥들이 월런 같은 악동도 필요하다고 힘을 실어 준 셈이다. 한 곡만이 아니라 이 곡이 실린 앨범 전체가 빌보드 싱글차트에 올랐다.

혹자는 컨트리음악이 미국 대중음악에서 힘이 커진 이유가 보수주의와 무관하다고 분석한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컨트리음악이 미국인에게 편안함을 주며 현실도피주의(escapism)가 인기의 원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컨트리음악으로 시작해 이에 기반한 팝음악으로 활동하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외람되지만 안일한 분석이다. 가수 앤소니는 자신이 보수가 아닌 중도이며 “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외친다. 하지만 세상에 널리 알려진 대중음악은 가수만의 것일 수 없다. 아무리 컨트리음악의 저변이 넓어져 젊고 진보적인 유색인종이 즐겨 듣는다 해도 여전히 주된 청취자는 분명 보수주의자나 공화당 지지층 또는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다. 아마도 내년 대선까지 컨트리음악은 미국의 정치적·사회적 보수주의의 상징으로 소비될 것 같다.

김학형 hh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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