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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공원에 놀러 나가면 항상 ‘깍두기’가 있었다. 먹는 깍두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놀고 있는 무리별로 꼭 한두 명씩은 유달리 키가 작은 아이들이 있었다.
누구든 상관없었다. 보통 ‘깍두기’는 누군가의 동생이거나 공원에서 혼자 놀고 있는 친구이거나 함께 놀고 싶다며 손을 내미는 누구였다. 숨바꼭질이나 경찰과 도둑 같은 활동적인 놀이는 물론이고 야구나 축구 같은 스포츠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팀 균형이 맞지 않을 때도 많았다. 오히려 양쪽 동수로 놀았던 경험보다는 한쪽이 더 많은 채로 논 적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막내였던지라 동생을 데려갈 일은 없었지만, 막내라서 다른 아이들이 형들이랑 놀고 싶어 하는 마음을 잘 알아 더 챙기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나이가 들어서 따져 보면 그렇게 깍두기를 끼워 넣은 건 놀이의 목적이 단순하고 명확했기 때문이다. 즐거움이다. 아이들은 함께 재밌는 게 더 중요했다. 물론 그렇다고 승부가 완전히 배제됐던 건 아니다. 귀가하고 나면 온몸이 흙투성이였다. 거친 플레이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아마 그때 공원에서 함께 놀던 아이들은 패배의 씁쓸함보다 누군가 혼자 공원 모퉁이에서 혼자 놀고 있는 걸 보는 불편함이 더 싫어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당시에는 별생각 없었다. 그냥 그래야 했다. 아침이라 해가 뜨고 밤이라 해가 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 어린이들도 ‘깍두기’라는 걸 알까. 요즘은 공원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는 것부터가 어렵다.
많은 세대에 걸쳐 인기를 끌고 있는 온라인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LOL)를 해 보면 게임은 철저히 승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누군가의 실력이 조금 떨어질 경우 5대 6 플레이로 끼워 주는 법은 없다.
누군가를 포용하는 것보다는 짓밟아야 하고, 내 기분이 상하면 상대방을 까 내리는 표현 방법을 배우는 게 먼저인 것 같다. 어느 순간 사라진 공원 아이들 웃음소리처럼 ‘깍두기’도 그렇게 사라졌다.
덩달아 보기 힘들어진 것들이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모습과 소외된 친구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도 드물어진 듯하다.
21일 통계청이 ‘2022년 사망원인 통계 결과’를 발표했다. 극단적 선택으로 인한 사망자는 지난해 1만2906명으로 나타났다. 2021년보다 446명(3.3%) 줄었지만 10대부터 30대까지의 사망 원인 1위를 찍었다. 40·50세대에서도 사망 원인 2위였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연령표준화 자살률이 평균 10.6명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22.6명으로 나왔다. 선진국의 기준이라 꼽히는 OECD 안에 포함된 것은 자랑스럽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비교되는 지표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우리는 사실 알고 있다. 극단적 선택으로 인한 사망이 우리 사회의 문제로 떠오른 것도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표의 지수는 꾸준히 올라왔고 제법 심각한 수치도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변하는 것은 없다. 인구가 감소한다며 걱정하지만 정작 살아 있는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해 우리 사회는 무슨 노력을 하고 있나. 보여주기식 행정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여전히 서로를 경쟁으로 몰고 있고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사람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낙인이 찍혀 제외되는 것 같다. 그렇게 제외된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통제 밖의 일이 됐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깜빡이고 있다. 온갖 지표가 우리가 서둘러야 할 때라고 말해 주고 있다.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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