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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린다. 눈이 내린다. 발자국 소리처럼 눈 소리가 들려온다’
언제? 어디서? 누구한테? 들은 시구(詩句)인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린(?) 나이이니 인기 급상승인 TV 드라마의 모 주인공처럼 ‘치매’는 아닐 터고, 그렇다고 ‘알츠하이머’는 더더욱 아닐 게고.
차치(且置)하고 그냥 중얼댄다. 그러면서 바라본다. 밖을.
어? 물끄러미 응시하니 하얀 눈이 솔솔 내려앉고 있다. 아름답다. 순간, 평소에 틈틈이 뇌까리던 시가 바로 떠오른다.
‘폴폴 나는 달빛마냥 눈은 다시 올 것이나, 발목 잡힌 오만 정이 흰 접시에 가득하고, 숟가락 거푸 채우는 마음 또한 호젓하다’라고.
시인 서정택의 ‘달빛 한 병이 7½잔인 이유’라는 시다.
다시 되뇌어도 제목이 연신 호기심을 자극한다. ‘달빛 한 병이 7½잔인 이유’라니? 아직도 그 답을 필자는 찾질 못했다.
그건 그렇고. 평론가들은 이렇게 평한다.
“시인은 달빛을 소주로 치환하면서 온갖 정을 나누는 사람살이의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한 잔의 술엔 열심히 일한 만큼 아늑한 안식이 있고, 한 술잔에 담긴 맑은 물에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있다’고.
그렇다. 아니 그렇기도 하다는 생각에 공감한다.
더불어 시인이 걸어 온 삶의 여정이 비쳐지기도 하면서, 흰 접시에 가득 채워지는 오만 정과 숟가락을 거푸 채우는 호젓한 마음을 혀끝에 쩍쩍 붙는 달빛 한 병으로 이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솟구친다.
여하튼 시인의 시구가 정녕 예사롭지만은 않다.
이제 2011년을 영원한 추억 속으로 영원히 보내야 할 때다. 행복감에 흠뻑 빠져들 그런 2012년을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릴 때다.
그런데? 필자의 맘이 편치를 못하다. 왜일까?
단언컨대 주변 상황은 일단 접더라도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등 그 어느 것 하나 개운한 게 없다. 심지어 신물이 날 정도다.
게다가 필자를 에워싸고 있는 상항 역시 괴롭기까지 하다. 후배들 그리고 친척들의 세상사가. 이들은 직장인 그리고 구직자들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2011년을 갈무리하면서 직장인이 뽑은 것과 구직자가 뽑은 그것이 말이다. 이렇다.
직장인의 경우 ‘수중에 가진 돈이 하나도 없다’는 수무푼전(手無分錢)을 시작으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 ‘강자들 사이에 끼어 괴롭다’는 간어제초(間於齊楚), ‘큰 뜻을 가지고 시작했으나 중도에 그쳐 오히려 훨씬 못한 결과로 끝났다’는 묘호류견(描虎類犬), ‘모든 일이 가망이 없어 체념한다’는 만사휴의(萬事休矣)다.
구직자는 어떠한가?
‘가시를 등에 지고 있는 듯, 마음이 아주 조마조마하고 편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망자재배(芒刺在背), ‘큰일을 위해 때를 기다린다’는 불비불명(不飛不鳴), ‘얻은 것 없이 헛수고만 했다’는 노이무공(勞而無功), ‘외롭고 의지할 데가 없다’는 고립무의(孤立無依), ‘큰 꿈을 가지고 노력했다’는 각곡유목(刻鵠類鶩)이다.
한마디로 온통 어려움, 힘듦, 괴로움뿐이다.
퍼뜩 만신창이(滿身瘡痍)이라는 말이 뇌리를 스쳐 간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됨, 아주 엉망이 됨’을 비유하는 사자성어다.
에이. 만신창이의 몸으로 어딜 가겠는가마는 주말에 배낭을 꾸려야겠다. 그리고는 호젓한 바닷가로 가서 소주를 한 잔 들이켜야겠다.
바닷속에 무진장 깔린 안주를 벗 삼아서.
아니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술을 마실 때에도 바다 옆에서 마신다. 나는 내 말을 하고 바다는 제 말을 하고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바다가 취한다.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라는 시인 이생진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맘껏, 마냥 흥얼대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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