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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뛸 만큼 역동적이었다! 그러나…” 세계 최초의 XR 연극 ‘노인과 바다’ 관람기

헤밍웨이 원작, 트리플 캐스팅의 두 배우가
AI로 생성된 화면 앞에서 펼치는 연기 대결

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1-29 00:03:20

▲ AI로 생성된 화면 앞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는 남경읍 배우. 임유이 기자

막이 오르기 전 무대는 단촐하다. 푸른 빛이 가득한 무대에는 나룻배 한 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전면부에는 ‘노인과 바다’라는 글자가 고요히 빛을 발하고 있다. 대학로 소극장 ‘스튜디오 블루’에서 선보이는 연극 제목이다.

이 연극은 특별하다. 연극 사상 최초로 확장현실(XR)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확장현실(Extended Reality, XR)이란 4차산업혁명의 한 부류로 다양한 몰입형 및 인터랙티브 기술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용어다. 증강현실(AR)·혼합현실(MR)·가상현실(VR)이 다 이 분야 소속이다.

‘노인과 바다’는 1952년 라이프지에 발표된 후 1953년에는 퓰리쳐상을, 1954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헤밍웨이를 20세기 최고의 미국 작가 반열에 오르게 한 단편소설이다.

기자 출신인 헤밍웨이는 2번의 세계대전 참전, 3번의 이혼과 4번의 결혼 끝에 엽총 자살로 세상을 버렸다. 그 자신 소설적인 삶을 산 것이다.

‘노인과 바다’는 한때 잘나가는 어부였으나 84일간 작은 물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해 세상의 조롱감이 된 노인이 초대형 물고기를 만나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인공지능이 생성한 무대에서 역동적인 연기를 필치고 있는 남경읍 배우. 임유이 기자

연극은 이 책의 가장 유명한 문장 “인간은 파괴될 순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는 그대로 살리되 약간의 각색을 추가했다. 트리플 캐스팅의 두 배우가 인공지능으로 생성된 OLED 화면 앞에서 공연을 펼친다.

제작진은 “헤밍웨이의 작품은 수십 년 동안 영화·연극으로 제작됐는데 연극의 경우 어쩔 수 없이 시간과 공간의 표현에 한계가 있었다. 특히 소극장 연극은 현실감이라는 매력적인 요소도 있는 반면 지나치게 생략된 무대로 인해 아쉬움이 많았다”며 XR을 연극 무대에 도입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 공연의 막이 내려 간 뒤 무대 인사를 하고 있는 배우 남경읍(왼쪽)과 이석우. 임유이 기자

실제로 접한 XR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바닷물이 객석으로 흘러넘칠 것 같은 사실적인 배경 묘사가 공연 내내 관중을 압도했다. 360도 회전에 위아래로도 출렁이는 조각배 역시 배경에 잘 녹아들어 사실감을 극대화시켰다.

XR 연극 ‘노인과 바다’는 20년 가까이 영화 ‘왕의 남자’ ‘한반도’ ‘포비든 킹덤’ ‘베를린’ 등 국내외 80여 최정상 작품의 VFX 프로듀서로 참여한 ㈜모피어스의 이수영 대표가 비주얼 디렉터를 맡았으며 모션플랫폼을 제작하는 ‘썬에어로시스’에서 구동장치 제작을 전담했다. 역시나 명불허전이었다.

노인 배역에는 뮤지컬계의 대부인 남경읍과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서 선 굵은 연기를 보여준 이황의, 영화 ‘자산어보’에서 색깔 있는 연기를 보여준 노시홍이 캐스팅 됐다.

소년 역할에는 연극 ‘대한국인 안중근’으로 큰 사랑을 받은 배우 이석우, 드라마 ‘리멤버’의 배우이자 그룹 태사자 출신 박준석 그리고 신인 황경태가 캐스팅됐다.

노시홍 배우는 무대 인사에서 “50대가 되었을 때 꼭 해보고 싶은 작품이 ‘노인과 바다’였다. 꿈을 이루게 되어 기쁘고, XR이라는 새로운 시도에 캐스팅되어 영광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두산 베어스 프로야구 선수로 활동하다가 처음 연극 무대에 뛰어든 황경태 배우는 “작품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느낌이다. 좋은 선배·선생님과 작품을 하게 되어 영광이다. 연기를 하게 된 것은 내 인생의 행운이다. 특히 이 작품은 나에게 천운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안수현 PD와 배우 황경태·박준석·이석우·남경읍·이황의·노시홍(왼쪽부터). 임유이 기자

프로듀싱은 인사아트홀 관장을 역임한 안수현 PD가 맡았고, 장경민(극단 시민극장 대표)과 하형주(창작공간 스튜디오블루 대표)가 공동 연출을 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OTT가 막대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영화와 연극이 공통적으로 위기를 맞이한 상황에서 소극장 연극이 XR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꾀했다는 것은 퍽 고무적인 일이다. 기술적으로 큰 흠 없이 잘 진행되었다는 생각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재미 요소의 부족이다. 형식적으로 새로운 시도에 도전한 만큼 내용적인 면에 있어 진보를 이룰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내용을 조금 더 환상적으로 각색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디로 좀 더 활발한 상상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사자 영상은 정말이지 뜬금없었다. 단독으로는 그럭저럭 현실감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내용에 전혀 녹아들지 못했다.

임유이 기자 lye@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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