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삼국지 [226] 금의환향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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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네가 가문의 명예를 되찾아야 한다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2-11 06:00:02

혼례를 치른 후 평강은 자신이 간직하고 있던 패물들을 온달 모자 앞에 내놓았다. 온달은 평생 처음 보는 휘황찬란한 재물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재물은 상당히 가치가 나갈 겁니다. 집과 전답·노비와 각종 농기구를 사도록 하세요.”

온달은 어머니를 편히 모실 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다.

이들은 산 아랫마을에 소박하지만 깔끔한 집을 마련하고, 기름진 땅을 샀다. 그리고 노비와 각종 농기구를 사들여 농사를 지었다. 이리하여 온달 가족은 먹고사는 일은 걱정하지 않게 됐다. 그런데도 온달은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못 배기는 체질이었기에 매일같이 논밭에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평강은 온달과 단둘이 있게 되자 옷깃을 여미고 말했다.

“낭군께서는 앞으로 나라에 크게 쓰일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학문과 무예를 연마하십시오. 앞으로 농사일은 삼가세요.”

온달은 아내가 시키는 건 무엇이든 군말 없이 따랐지만 이 말만은 들을 수 없었다.

“나는 본시 일꾼으로 태어난 사람이오.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많으니 나랏일은 그들에게 맡겨 두면 되지 않겠소.”

공주가 여러 차례 알아듣게 얘기했지만 온달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평강은 온달을 설득하는 일이 어려워지자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낭군께서는 분명 뛰어난 장군의 기질을 타고나셨습니다. 잘만 갈고 닦는다면 나라를 위해서 크게 쓰일 분입니다. 그런데 저렇게 농사일을 고집하시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온달 모친은 아무 말 없이 하소연을 듣더니 무언가 결심한 듯 말한다.

“네 남편을 이리 들라고 해라.”

평강은 하인을 시켜 밭에서 거름을 주고 있는 온달을 찾아오게 했다. 효성이 지극한 온달은 어머니가 부른다는 말에 쏜살같이 달려왔다.

아들이 방에 들어오자 모친은 자리에 앉게 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모친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내가 너에게 해 줄 얘기가 있다. 이건 그동안 숨겨 왔던 우리 집안 얘기다.”

온달 모친은 실로 놀라운 옛날이야기를 쏟아 놓았다.

온달의 아버지는 지난날 환도성에서 반군 장수의 목숨을 살려 준 죄로 처형당한 온영(溫永)이었다. 그때 그의 집안도 역적으로 낙인찍혀 많은 이가 옥에 갇히고 전답까지 몰수당했다. 온달의 어머니는 남편의 죽마고우인 대형(大兄) 우창(牛昌)의 도움으로 아들만 데리고 도성을 빠져나왔다. 그녀가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한 까닭은 언젠가 아들이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울 거라 믿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그들은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대성산에 들어와 은신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신분을 숨기고 살았다. 비록 가난했지만 그녀는 아들만은 올바르게 키우려 노력했다. 그래서 온달은 누구보다 순수하고 사려 깊은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었다.

가슴에 품고 있던 얘기를 털어놓은 온달 모친은 아들을 지그시 바라봤다.

“이제 네가 가문의 명예를 되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워야 한다.”

온달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해맑던 얼굴에는 고뇌의 표정이 깃들었다.

평강은 남편의 심상치 않은 변화를 보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온달이 결연히 말했다.

“사랑하는 두 여인이 이처럼 원하는데 어찌 제 생각만 고집할 수 있겠습니까. 좋습니다. 이제부터 학문과 무예를 닦는 일에 전념토록 하겠습니다.”

온달 모친은 아들의 비장한 결심을 들으며 가슴 한구석이 아렸다. 앞으로 아들이 나아갈 길이 험하고 고단하리라는 걸 알았기에 더욱 아팠다.

평강 역시 남편의 기상과 재능이 아까워서 열심히 권하기는 했지만 마냥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

방으로 돌아온 온돌은 뒤따라온 평강에게 물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겠소?”

“일단 말 한 필을 준비하십시오.”

“그렇다면 먼저 저자에 가 봐야겠구려.”

공주는 남편에게 말을 살 때의 유의 사항을 일러주었다.

“저자 상인의 말을 사지 말고 대궐에서 나온 국마(國馬)를 택해야 합니다. 병들고 파리해 보여도 어린 말이라면 괜찮으니 사 오십시오.”

평강은 말 고르는 법을 일일이 가르쳐 줬다.

온달은 집을 나와 도성으로 향했다.

저자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댔다. 물건을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이 서로 뒤엉켜 묘한 활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포목점에서는 고구려의 특산품인 금수(錦繡)가 제각각 때깔을 자랑했다. 그 주위로 모인 대갓집 하녀들이 주인의 취향에 맞는 비단을 고르기 위해 열중하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손수 기른 곡식과 채소를 팔고 있던 성 밖 마을의 아낙들은 언감생심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눈짓으로만 힐끔힐끔 보면서 그 빛깔의 황홀함에 취했다.

상점 앞에 곡식을 잔뜩 실은 수레가 멈춰 섰다. 성 밖 가마에서 갓 구운 질그릇을 실은 수레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양보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질그릇 수레의 바퀴가 일으킨 흙먼지가 채와 소쿠리를 파는 방물장수의 눈으로 들어갔다. 그는 수레를 끌고 가는 사내에게 욕지거리를 했다. 사내 또한 불뚝 성질이 있는 자라 참지 못하고 방물장수와 멱살잡이를 했다. 싸우는 소리에 잠시 눈길을 주었던 사람들은 무감하게 다시 하던 일에 몰두했다.

온달은 싸우는 사내들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대장간에서는 불가마 속에서 새빨갛게 달궈진 쇠를 꺼내 두드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쇠 치는 소리가 점점 빨라지면서 가락이 생겨 났다. 쇠는 조금씩 제 모양을 잡아 갔다. 웃통을 벗어 던지고 온 힘을 다해 쇠망치를 내리치는 대장장이의 몸은 땀으로 번질거렸다. 기합 소리가 더해지자 쇳덩어리는 쟁기와 괭이로 바뀌었다.

온달은 대장간에서 쇠 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속에서 솟아오르는 열정을 느끼곤 했다. 그는 쇠 울림에 자기 몸이 반응하는 게 신기하면서도 두려웠다.

[임동주 글 이영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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