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크게, 더 가까이…’ 거장의 환상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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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초대형 몰입형 미디어아트 선봬
내년 5월까지 강동구 라이트룸서울에서

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2-05 19:57:33

▲ 호크니의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 ‘더 크게 더 가까이’를 관람 중인 관객들. 박미나Ⓒ스카이데일리

최근 미술가에는 두 가지 인간이 존재한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전시 ‘더 크게 더 가까이(더 작거나 더 멀리 있지 않음)’를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미디어아트가 미술계의 대세라면 호크니는 미술계의 레전드다. 호크니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게 작품 가격이다. 그의 대표작 ‘예술가의 초상’은 2018년 경매에서 1000억 원에 낙찰됐다. 생존 화가 중 제프 쿤스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액수다.

강동구 ‘라이트룸서울’에서 열리는 몰입형 미디어아트 ‘BIGGER & CLOSER(not smaller ＆ further away)’는 거장 호크니의 진면목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올 2월 영국 런던에서 큰 성공을 거둔 전시인 만큼 이번 서울 전시에 대한 기대도 높았다. 그리고 전시는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림·기획·해설을 혼자서

일반적인 전시의 경우, 작가가 그림을 그리면 큐레이터는 전시 기획을, 도슨트는 해설을 담당한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호크니 혼자 1인 3역을 다 해냈다.

“세상은 제대로 바라보기만 하면 매우 아름답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을 잘 보려고 하지 않는다. 내 말은, 색이란 곧 즐거운 것이라는 이야기다.”

호크니는 1937년 영국 브래드퍼드에서 태어났다. 런던 왕립예술학교를 졸업한 후 1960년대부터 초상화·정물화·수영장 그림으로 인지도를 쌓기 시작했다. 대상에 제한이 없듯 그는 회화뿐 아니라 사진·판화·삽화·무대 디자인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발하게 작업을 이어 나갔다.

재료에 있어서도 유화·아크릴화·펜화는 물론 아이패드를 활용한 디지털 페인팅에도 손을 댔다. 이번 몰입형 전시는 장르와 매체를 한정 짓지 않는 호크니 월드의 2023년 판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라이트룸서울 전시는 기획뿐 아니라 관람환경까지 런던 전시장의 스펙을 그대로 옮겨 왔다. 바닥 면적만 18.5x26m·높이는 12m에 이른다. 최대 38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전부 도화지요 무대인 것이다.

첨단 음향 시설과 맵핑 기술이 그를 보조하는 가운데 호크니는 이 넓은 공간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자신의 예술 세계를 유감 없이 펼쳐 보인다.

원근이 곧 시간이다

▲ 호크니는 같은 장소를 다양한 시점과 각도에서 조망한 뒤 그 기억과 감상을 하나의 공간 안에 뒤섞어버리는 독특한 원근법을 사용한다. 박미나Ⓒ스카이데일리

이번 전시는 크게 △원근법 수업 △호크니, 무대를 그리다 △도로와 보도 △카메라로 그린 드로잉 △수영장 △가까이서 바라보기의 6개 카테고리로 구성되어 있다.

호크니는 같은 장소를 다양한 시점과 각도에서 조망한 뒤 그 기억과 감상을 하나의 공간 안에 뒤섞어 버리는 독특한 원근법을 사용한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미디어아트야말로 호크니적인 원근법을 가장 생생하게 구사할 수 있는 미술도구인 셈이다.

원근법 수업 카테고리에서 호크니는 산 로렌초 디 피렌체 성당과 산토 스피리토 디 피렌체 성당을 설계한 브루넬레스키(1377~1446)를 언급하며 원근법 이론을 설명해 나간다.

“원근법을 활용하면 훨씬 흥미로운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내가 하는 일이 바로 그런 흥미로운 작업이다.”

그는 하나의 작품에 되도록 많은 내용을 담는다. 많이 담을수록 현실감이 증대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 하나의 원근은 하나의 시간을 나타낸다.

협업은 본질적으로 타협이다

▲ 호크니는 유화·아크릴화·펜화는 물론 아이패드를 활용한 디지털 페인팅에도 손을 댔다. 박미나Ⓒ스카이데일리

‘호크니 무대를 그리다’에서는 협업을 강조한다. 협업이란 본질적으로 타협이며 그림 작업 역시 자신과의 타협(협업)의 소산이다. 그는 음악을 좋아한다. 음악을 통해 영감을 얻는 일도 음악과의 타협인 셈이다.

‘카메라로 그린 드로잉’에서는 포토콜라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사진을 자르고 이어 붙여 공간을 해체하는가 하면 2차원과 3차원을 한 장에 담아낸다. 이 모든 게 사진에 결핍된 시간성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도로와 보도’ ‘수영장’ ‘가까이서 바라보기’까지 해설을 듣다 보면 하나의 깨달음이 온다. 대가가 되기 위한 특별한 비결은 없다는 것.

왕성한 호기심과 체력, 약간의 밝은 눈만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호크니가 될 수 있다. 궁금한 것은 연구하고, 좋아하는 것은 실행하면 된다.

문제는 이 간단해 보이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호기심과 지속성은 함께 가기 어려우며, 밝은 눈엔 아주 쉽게 세속의 때가 묻는다. 그러니 호크니는 세상에 한 명일 밖에.

전시는 내년 5월까지 계속된다.

임유이 기자 lye@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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