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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제국의 꽃’ [242] 울릉도와 독도
일본인의 쇄환
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2-26 06:30:20
 
 
 
 
광무 황제는 제국의 근대적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 강토를 동서남북으로 확장했다. 조선은 전통적으로 조세 수취와 역역 동원의 이유로 울릉도의 주민을 본토로 이주시키는 쇄환 정책을 실시해 왔다. 세종대왕은 김인우를 우산·무릉등처안무사로 삼아 관리하였다. 태종조 말년부터 울릉도를 무릉도라 하고 독도는 우산도라 불러 왔다. 1693(숙종19) 봄에 울산 어부 40여 명이 울릉도에 배를 대었는데, 이때 그곳에 온 왜인의 배가 안용복과 박어둔 두 사람에게 술을 먹여 놓고 잠든 새 잡아간 사건이 발생했다. 1693년 겨울 대마도주는 안용복·박어둔을 송환하면서 조선 사람이 죽도(竹島)’ 즉 울릉도에서 고기 잡는 것을 금할 것을 청하는 서계(書契)를 보냈다. 예조의 실무자들은 울릉도가 우리나라 땅임을 알면서도 왜인들이 울릉도를 지칭하는 죽도귀경의 죽도로 기술하여 울릉도를 왜국 땅으로 인정하는 외교적 대실수를 저질렀다. 게다가 안용복과 박어둔을 귀양 보내 대마도주의 항의에 부응했다.
 
왜인들이 말한 죽도는 우리나라의 울릉도이다. 섬에서 대나무가 많이 생산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울릉이란 칭호는 신라·고려시대의 사서와 중국인의 문집에 나타나 있다. 한 개의 섬에 두 개의 명칭이 있는 셈이다. 왜인들은 울릉도에 대나무가 자란다고 해서 울릉도를 죽도(竹島·다케시마)’ 또는 의죽도(礒竹島)’라고 부르고 독도를 송도(松島·마쓰시마)’라고 불러 왔다. 그러다가 19051월 독도를 자신의 영토에 불법 편입시킬 때는 거꾸로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라고 부르고 울릉도마쓰시마(松島)’라고 불렀다.
 
고종은 1881년부터 왜인들의 침탈에 방치되어 온 울릉도와 독도에 주민을 이주시켜 농지를 개간하는 영토 확립 정책을 시행했다. 1880년대부터 울릉도와 독도에 무단 침입해 각종 토산물을 약탈하던 왜인들을 퇴출하기 위해 일본에 외교적 항의를 강화했다. 189710월 대한제국 창건 이후에는 울릉도를 침범한 왜인들의 쇄환을 강력히 요구해 관철시킴으로써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완성했다.
 
18824월에 무반 이규원을 울릉도 검찰사로 임명하여 울릉도의 영유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표명했고, 이듬해인 18833월에는 강원도에서 7·8, 영남에서 10호를 이주시켰고 4월에는 16가구 54명을 추가로 이주시켰다. 이때 식량과 곡식의 종자·가축을 보내고, 설읍(設邑)을 위해 작업할 목수와 대장장이들을 파견하고, 방어용 총건 등 무기도 실어 보냈다. 또한 울릉도에서 왜인들을 모두 철수시켰다. 일본 내무성은 18839월 관원과 순사 31명을 에치고마루(越後丸) 호에 태워 보내 침입한 일본인 254명을 모두 쇄환했다.
 
19001025일 대한제국 정부는 칙령을 발해 울릉도와 독도를 제국의 군부(郡府행정편제에 공식 편입시켰다. 또한 광무 황제는 북쪽으로 700여 리에 달하는 간도를 행정구역에 편입시킴으로써 실효적 지배를 완성해 강토를 4000리로 확장했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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