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6-09-26 08:02
뉴스 > 교육·취업
“세계 속, 경제 한국의 주춧돌 ‘이승만의 농지개혁’”
일본전문가 이정용 전 명지대 교수 인터뷰
“‘건국전쟁’이 주목한 ‘농지개혁’ 한국 최강대국으로 성장시켜”
장혜원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2-19 18:30:00
▲일본전문가 이정용 전 명지대 교수는 한국과 일본 모두 농지개혁을 통해 고도 경제성장을 이룬 산업화가 가능했다며 이 모든 것의 기반이 된 이승만 대통령의 농지개혁은 대한민국 역사의 가장 결정적 장면이라고 밝혔다. 장혜원 기자 ©스카이데일리
  
“농지개혁은 이승만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이며 오늘날 한국이 세계 속의 경제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주춧돌이 됐다.”
 
이정용 전 명지대 교수는 18일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보다 몇 년 앞서 농지개혁을 실시한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소작농 제도를 폐지하고 자작농 중심의 농촌 사회를 만들어 농촌의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높였고 이를 바탕으로 산업 강국의 토대를 세웠다”며 이같이 밝혔다.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개봉 17일 만에 누적 관객수 53만 명을 돌파하며 나날이 흥행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 ‘이승만 신드롬’이 전국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4월 총선을 앞두고 ‘보수 결집 신호탄’이 쏘아 올려졌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부당하게 폄하돼 온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한국 현대사 재조명 열풍과 함께 일파만파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특히 건국을 전후한 시기에 대한민국의 기본 틀을 확립한 이 대통령 활동·업적 등을 전문가 코멘트를 종합해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농지개혁을 이 대통령의 주요 업적으로 꼽는다.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일본 정치와 일본 외교 안보정책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 전 교수는 1월과 2월 뉴데일리TV 유튜브 채널에서 방송된 이승만포럼에서 ‛한국과 일본의 농지개혁 비교 연구’라는 주제로 두 차례에 걸쳐 강연한 일본전문가이다.
이 전 교수에 따르면 태평양전쟁 시기 제국주의 일본 기득권의 큰 축인 지주 계급을 해체한 일본의 농지개혁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더욱 강화된 소작농 제도를 해체한 이승만 대통령의 농지개혁이야말로 두 나라가 동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고 경이적인 산업화를 이끌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법무부 장관 재임 중이던 작년 7월15일 첫 대중 강연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농지개혁은 대한민국 발전의 결정적 장면”이라고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8·15해방 당시 소작농 비율 65%→ 자작 농지 96%로
‘교육과 기술개발 재투자’ 산업화·고도성장 ‘기틀’
6·25전쟁 발발에 반공 노선 지킨 ‘이승만의 한 수’
학계 사료를 보면 1945년 8월15일 해방 직후 우리나라 농지의 소작 비율은 전체 농지 222만6000ha의 65%인 144만7000ha였으며 전체 농가의 86%가 소작농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방을 맞이한 소작농들은 소작 제도하의 빈곤에서 벗어나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해 농지 분배를 끈질기게 요구했다.
 
무엇보다 1946년 초 북한이 ‘무상 몰수·분배’라는 급진적 혁명 방식으로 토지개혁을 실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농민의 요구는 한층 더 격화했다. 이러한 틈새를 파고들어 남로당을 비롯한 좌파 세력이 농민을 선동함에 따라 남한의 공산화가 우려되는 상황이 전개됐다.
“공산당을 막으려면 농지개혁을 해야 한다”고 수시로 언급한 이 대통령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농지개혁에 매진했다. 이를 위해 농지개혁에 반대하거나 소극적인 지주층을 견제하며 농지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 과거에 공산주의 활동을 한 경력이 있는 조봉암을 초대 농림부장관에 임명했다. 
 
이 전 교수는 “한국과 일본이 농지개혁에 성공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개혁의 실무 책임자인 농림부 장관(일본은 농림 대신)에 좌파 인물을 발탁하여 보수 세력인 지주들을 제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의 농지개혁은 개혁에 반대하는 보수 세력과 이를 추진하는 개혁 세력의 대립으로 진통을 겪었다. 이 개혁 정책은 결국 북한의 불법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1950년 3월에 실시됐다. 
 
광고
이 전 교수는 “만약에 농지개혁이 실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6·25전쟁이 터졌다면 남로당의 박헌영이 주장한 것처럼 농민들이 봉기하여 남한이 공산화되었을지도 모른다”며 “6·25전쟁 직전에 농지개혁이 실시된 것은 하늘이 한국의 공산화를 막은 것”이라고 그 의의를 되짚었다.
 
▲ 이승만 대통령의 생전 모습. 이승만 기념관
 
그는 “한국과 일본의 농지개혁은 유상 매입·유상분배 방식으로 이루어져 소작농들이 자신의 농지를 소유하는 자작농으로 변신하는 진정한 개혁이 완성되었다”며 “무상몰수·무상분배라는 북한의 토지개혁은 겉으로 보기에는 농민에게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농민의 토지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은 기만적인 개혁이었다”고 했다. 또한“그나마 몇 년 후에는 이를 모두 몰수하여 집단농장으로 바꿔 버렸다. 북한을 비롯한 공산국가의 경제적 파탄은 이러한 기형적인 농업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농지개혁의 결과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한국의 농지개혁은 소작농 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신분제를 타파하고 공산화를 막아 낸 것 외에도 교육열의 급속한 상승이라는 효과를 불러왔다. 자녀 교육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던 농민들에게 생활의 여유가 생기면서 이들이 자녀의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전 교수는 “국민 교육을 국가의 최고 정책으로 꼽은 이 대통령은 열악한 국가 재정에도 6년 의무교육제도를 도입해 각급 학교를 대거 증설하는 등 교육에 심혈을 쏟았다”고 밝혔다. 이어서 “그 결과 해방 당시 80%에 달하던 문맹률이 10%대로 급격히 하락했으며 교육을 통해 양성된 인력이 한국 사회의 주도 세력으로 등장해 산업화를 이끌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이 전 교수는 “이 대통령이 농지개혁이라는 레일을 깔았고 이를 이어받은 박정희 대통령이 그 레일 위로 산업화의 열차를 마음껏 달리게 해 해방 당시 최빈국이었던 한국을 경제 강국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며 “오늘날 한국의 번영은 이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이루어진 농지개혁이 그 출발점이었다”고 그 의의를 재차 강조했다. 
후원하기
  • 정기 후원
  • 일반 후원
  •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는 공공성에 기반해 독자가 만들어 가는 언론을 지향합니다. 정기 또는 일반 후원시 맞춤형 뉴스, 독자에게 할당하는 지면 서비스, 동행하는 홍보, 유상증자시 참여기회 제공(법인에 한함)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1
좋아요
2
감동이에요
5
화나요
0
슬퍼요
0
댓글 : 0
방문수(PC&모바일)
오늘(실시간) 45,147 ▶
어제 155,067 ▶
최근 7일 ▶
대한민국 명사들
대면 기회를 가져보세요.
팬클럽 가기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시 서초구 방배천로2안길 82(방배동 463-18) 청송빌딩 3,4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종합일간지 등록번호 : 서울시 가50131,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8일
발행·편집인: 민경두, 편집국장 : 주경준, 사업자 번호 : 214-88-81099 후원계좌 : 158-910019-39504(하나은행)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진강
본지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서약사로서 신문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