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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삼국지 [309] 해골에 고인 물 ④
당신을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임동주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4-15 06:30:20
 
 
자장이 부드럽게 물었다.
무슨 책인가?”
그제야 원효는 뒤에 사람이 있음을 깨달았다. 뒤를 돌아보니 듬직한 체격의 승려가 웃으며 서 있었다. 직접 대면한 적은 없었지만 먼발치에서 얼굴을 본 적은 있었기에 그가 국사인 자장임을 단번에 알아챘다.
 
이곳에는 어인 일이십니까?”
원효가 예를 갖추기 위해 일어서자 자장은 책상 위를 살피며 물었다.
화엄경을 읽고 있었군. 그래, 자네는 이 경전의 요체가 뭐라 생각하는가?”
지행일치(知行一致)입니다.”
원효는 위세가 하늘을 찌르는 국사 앞에서도 전혀 긴장하거나 두려워하는 빛이 없었다.
자장은 자못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찌해서 그리 생각하는가?”
화엄경에서는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과 그로부터 피어나는 인과응보를 설하고, 석가가 얻은 깨달음에 관해 얘기합니다. 이 경을 구성하는 7()·8()·34()에서는 이러한 깨달음의 과정을 십 보살의 입을 통해 설파하고 있습니다. 보살의 말에 따르면 불자는 자신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중생 사이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할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화엄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국사는 원효의 대답을 듣고 놀랐다. 그가 당으로 건너가 두순(杜順) 대사 밑에서 수행하며 화엄 사상의 묘리를 익히는 데만 7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런데 이 젊은 학승은 단지 경서를 접하는 것만으로 이미 자신을 능가하는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자장은 원효의 눈을 지그시 들여다봤다. 그 깊은 눈에서는 열정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세속적인 욕심이 아닌 구도자의 순수한 열망이었다.
 
국사는 당에서 귀국한 이후로 화엄 사상을 나라 안에 널리 전파하기 위해 노력했다. 진덕여왕의 후원을 받아 절을 세우고 꾸준히 법회를 열기도 했지만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원효처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인재가 필요했다.
내 자네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네. 화엄경에 관한 소()를 써 주게.”
국사의 신분이기에 일개 학승에게 명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자장은 원효를 동등한 관계로 대했다.
기회를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경지에 이른 승려들 간에는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바가 있었다.
 
국사가 돌아간 후 원효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자장이 불교의 대중화를 이루겠다는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 애써 왔지만 이 나라의 불법은 여전히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이런 답답한 상황 속에서 화엄경을 해석하는 일이 백성에게 불심을 심어주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 일도 안 하는 것보다 나았다. 결심을 굳힌 원효는 밤을 새워 가며 화엄경소에 매달렸다.
 
어느덧 화엄경의 제5회인 십회향(十廻向)에 이르렀을 때였다. 이 대목은 수행의 공덕을 중생에게 돌리는 보살의 10가지 행위에 관해 설법하는 내용이었다. 이를 읽던 원효는 그토록 경멸했던 세속적인 승려들과 자신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단한 사명을 띤 양 경전에 묻혀 지내면서 식량이나 축내고 있는 모습은 십회향에서 말하는 보살이 쌓아야 할 공덕과는 거리가 있었다.
화엄경을 더욱 쉽게 풀어쓰는 것이 원효에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한자를 모르는 백성에게는 그림의 떡이요, 빛 좋은 개살구였다. 결국 화엄경소 역시 보통 백성이 아닌 한문을 익힌 극소수 귀족을 위한 것이었다. 숱한 고민 끝에 원효는 백성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우리만의 글자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원효는 명망 있는 여러 승려와 귀족들에게 익히기 쉬운 글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들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았다. 무지렁이와 같은 백성에게는 글자가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백성이란 그저 위에서 시키면 그대로 움직이는 도구였다. 아는 게 많아지면 오히려 다루는 데 방해가 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원효는 승려와 귀족들에게 품었던 기대를 접었다. 도움을 주기는커녕 방해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그것은 제 뜻을 관철할 수 있는 도끼날이 돼 줄 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었다. 어떤 장애물도 부술 수 있는 막강한 조력자를 만난다면 백성을 위한 글자를 만들고 이를 통해 불법을 널리 전파할 수 있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친 원효는 저자로 나갔다. 이때부터 승려로서의 자신을 끊어 버리고 세상과의 인연을 이어 나갔다. 그의 도끼날을 찾는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몸을 씻고 알몸으로 침대에 앉아 참선하고 있을 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원효는 나쁜 일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당황했다.
뉘시오? 잠시만 기다리시오.”
원효는 급한 대로 이불을 걷어 몸을 가렸다.
스님께서 갈아입을 옷을 가져왔습니다.”
원효의 허락이 떨어지자 앳된 궁녀 하나가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푸른빛이 도는 얇은 비단옷 한 벌이 들려 있었다.
옷을 받아 든 원효가 물었다.
다른 말씀은 없으셨소?”
소녀는 들은 바 없습니다.”
궁녀가 아무 말도 없이 물러가자 원효는 더욱 궁금증이 일었다. 국왕이 자신을 물에 빠뜨리고 별궁으로 이끈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머리속이 복잡해지면서 원효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조급한 마음으로 실을 잡아당기면 실타래는 엉키기 마련이었다. 그는 느긋하게 궁녀가 가져온 비단옷을 입었다. 실로 오랜만에 입어 보는 속세의 옷이었다.
원효는 한구석에 널려 있는 승복을 쳐다봤다. 그 옷을 처음 입었을 때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승복이 자신을 구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승복이 더는 해탈을 위한 정진의 상징이 아니라 세속적 권력과 부의 표상이 된 것이었다.
원효는 속인의 옷을 입는 순간 바른길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당성 인근 무덤에서의 깨달음이 되살아났다. 승복이든 사복이든 그에게 편안하다면 그것이 바로 지금 입어야 할 옷이었다.
 
원효가 다시 자리를 잡고 참선에 들려고 할 때 방문이 소리 없이 열리더니 한 여인이 들어섰다. 단아한 붉은 비단옷 사이로 말갛게 피어난 얼굴에서는 가련한 슬픔이 묻어났다.
여인은 원효 앞으로 와서 큰절을 올렸다.
원효는 엉거주춤 맞절하며 상대의 얼굴을 유심히 봤다.
소녀를 기억하십니까?”
그녀의 눈가에 맺힌 처연함을 보니 문득 지난 팔관회의 밤이 떠올랐다. 원효는 탑돌이를 하던 그녀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눈가에 맺힌 처연함이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았다.
원효는 반갑게 아는 체를 했다.
이렇게 얼굴을 뵈오니 그동안 편해지신 듯합니다.”
이 모두가 스님 덕분입니다. 아니, 이제 속세의 옷을 입으셨으니 그리 불러서는 안 되겠지요.”
그녀의 말에는 다분히 의도가 담겨 있었다.
원효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슬쩍 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인 일이십니까?”
스님을 이곳으로 모시게 한 사람이 접니다. 제 이름은 요석(瑤石)이라 합니다.”
무열왕의 둘째 공주 이름이 요석이란 건 도성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았다.
요석은 당시 초혼에 실패하고 궁에 와 있었다.
이렇게 공주님을 만나 뵈니 반갑습니다.”
요석은 얼굴을 붉히면서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당신을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공주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오자 원효는 무어라 할 말을 잊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미세한 떨림이 시작되어 온몸으로 전이되는 것을 느꼈다.
요석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원효를 똑바로 바라봤다.
원효는 쑥스러워 시선을 피했다.
요석이 원효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소녀가 혼례를 치렀던 몸이라 마음에 걸리십니까?”
요석은 원효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놀라는 척 물러나려다가 공주가 무안할까봐 가만히 있었다. 농익은 사과 향기가 풍겨 왔다. 공주에게서 나는 건지, 창밖에서 풍겨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원효는 자신도 모르게 욕망이 솟구쳐 올랐다. 발뒤꿈치를 들고 손을 뻗어 사과를 따려고 애쓰는 아이처럼 조바심이 났다.
 
그 순간 원효가 요석을 황금빛 물결치는 침상 위로 쓰러뜨렸다. 그들은 걸치고 있던 옷을 조심스럽게 하나씩 벗었다. 먼저 슬픔을 한 꺼풀 벗고 분노·증오·자기연민·원망… 그 밖에 보풀처럼 묻어 있던 감정의 찌꺼기를 털어 내자 얼음처럼 투명한 살결이 드러났다.
원효는 바람을 가득 싣고 수평선을 향해 떠나는 돛단배처럼 출렁이는 물살을 헤치며 힘껏 달렸다. 바람을 타고 환희에 들뜬 소리가 들렸다.
수평선 너머 저편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불심의 세계가 펼쳐져 있을 듯했다. 희망의 찬가가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환속한 원효는 요석공주와 함께 별궁에 기거했다. 자장과 몇몇 승려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그를 비난하기에 바빴다. 원효는 승려들의 비난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교단을 떠난 것은 그들과 가는 길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어떤 말을 하든 중요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글을 몰라 불경을 읽지 못하는 백성에게 불법을 쉽게 이해시키고 불심을 심어 줄 수 있느냐가 그에게는 더 중요했다.
 
그 후 원효는 요석궁에서 나와 탁발을 하며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그는 백성이 알아듣기 쉽게 노래와 이야기를 통해 불법을 전파함으로써 불교 대중화에 이바지했다.
원효는 요석과의 사이에서 설총(薛聰)이란 아들을 하나 두었다. 설총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어려운 한자를 보완해 백성이 쉽게 익히고 쓸 수 있는 글자인 이두(吏讀)를 만들게 된다.
 
[임동주 글 이영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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