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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꽉 찬 ‘마음 창고’ 한번 싹 비워 보자
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7-12 06:31:10
 
▲ 최문형 동양철학자‧작가‧성균관대 교수
정말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났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건강이 나빠졌고 뒤숭숭해진 마음으로 지내면서 편안한 잠을 잔 지가 오래되었다. 찾아보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만사가 다 걱정스럽고 불안했다. 약에도 의지해 보았지만 한계가 있었다. 결국 몸의 불안정이 초래한 마음의 불편함으로 여기고 지냈다. 
 
갑작스럽게 지인의 추천으로 논산에 위치한 전인교육센터에 다녀왔다. 교수와 전문가를 위한 하루 명상 프로그램이었다. 마침 성적 처리를 포함하여 학기도 완전히 종료되었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었다. 세상과 담 쌓고 산 탓에 명상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내게 센터에서는 전화로 자세한 사전 상담도 해 주었다.
 
커다란 방을 가득 채운 참가자들은 명상 전문가의 인도로 각자 마음속 동굴로 들어갔다. 세 명 단위의 작은 조로 짜여 멘토의 도움으로 몇 차례 조별 담화 시간도 가졌다. 사는 동안 특별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둥근 원 안에 과거의 잔상을 버리는 훈련을 했다. 이 일을 센터에서는 ‘마음 빼기’라고 부른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가리지 않고 내 안에 자리한 잔상, 즉 ‘가짜 사진’을 탈탈 털어서 내버린다. 어떤 것은 잘 떠나가는데 어떤 사진은 미련이 많은지 튕겨 나와 내 곁에 머물고 싶어 한다. 좋든 나쁘든 긴 세월 함께했던 기억들을 어떻게 한순간에 버릴 수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걱정으로 채운다. 미래의 염려와 기대는 허상이지만 과거의 기억과 느낌은 홀로그램처럼 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 한 편의 영화처럼 나는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꺼내 종종 곱씹고 음미한다. 문제는 마음의 스크린을 채운 영화의 잔상들이 현재의 행복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힘들었던 것이면 현재를 염려로, 즐거웠던 것이면 현재를 불만족으로 만들어 놓는다. 현재로 가득 채워야 할 마음을 과거로 채워 놓으니 ‘지금’의 정보를 느낄 마음의 공간은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버려야 한다. 쓰지 않는 물건을 내다 버리면 집안에 널찍한 공간이 생기듯 쌓이고 엉킨 잔상들을 지우고 빼면 마음이 숨 쉴 수 있다. 맛보기 명상을 통해 나의 마음은 아주 오랜만에 시원해졌다. 아니, 숨 쉴 여지가 조금 생겼다. 생각은 수시로 정리해 왔다. 일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친지에 대해서 수첩에 적고 지우면서 온 길과 갈 길을 점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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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감으로 행해 온 마음의 느낌은 인지하지도 못했고 정리하거나 청소할 줄 몰랐다. 꽉 찬 마음 때문에 몸도 안 좋은 줄은 어렴풋이 알았지만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는 더더욱 모르고 살았다. 그런 나를 도와준 것은 잠과 꿈이었다. 깊이 눌려진 실망감과 적대감과 슬픔이 꿈속에서 나타나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곤 했다.
 
몇 시간 동안 전문가의 도움으로 수행한 명상 훈련은 인생을 돌아보게 해 주었다. 놀라운 것은 긴 인생 속을 살펴보니, 힘들다고 생각한 현재의 나는 오히려 편안하고 행복한 때를 지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명상센터에도 올 수 있지 않았을까!
 
또 하나 깨달은 것은 시시각각 마음의 색깔에 따라서 우리는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은 오해나 오인을 잘한다.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빠지는데 최고의 기회를 만났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 장면을 보는 사람은 무엇이 문제인지 확실하게 보이는데 극중 인물은 그것을 모른다.
 
인생 또한 한 편의 영화라면 주인공인 나 자신은 진실을 모른 채로 사는 게 분명하다. 수시로 마음이 외물(外物)에 흔들릴 뿐이다. 그게 인생의 묘미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자주적이고 주체적으로 인생을 살고 싶다면 오감과 마음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명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문득 이 구절이 생각났다.
 
“마음이 (지금 여기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맛을 알지 못한다”는 동양고전 사서삼경 중 ‘대학(大學)’의 한 구절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노여워하면 진실을 얻지 못하고, 두려워하면 진실을 얻지 못하고, 좋아하면 진실을 얻지 못하고, 근심하면 진실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인 우리가 노여움과 두려움과 근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는 감정 속에서 느낌을 가지고 그 때문에 진실(참)을 챙기지 못한다.
 
시간과 공간의 세상 속에 놓인 우리는 감정 속에서 보고 듣고 먹고 느낀다. 그리고 그것들이 엉켜서 삶을 만든다. 명상 전문가들은 기억과 추억 속의 이미지들이 독이든 약이든 버리라고 한다. 아직 의문이 많은 초보자는 나름대로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나’라는 시스템이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하드디스크가 꽉 차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겠지…. 수십 년을 채우기만 하고 정리는 안 한 마음 창고를 청소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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