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훈 후보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되던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가 소위 ‘문자메시지 읽씹’ 의혹 폭로로 혼전 양상을 빚고 있다. 지난 총선 기간 중에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자신의 명품백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싶은데 그 방법을 묻는 문자메세지를 당시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다섯 차례나 보냈지만 한 위원장이 회신도 않고 무시했다는 것이다.
한동훈 후보가 명품백 수수를 비판하면서도 사과 의지를 외면한 이중적인 태도로 총선 패배를 자초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반면에 한 후보는 ‘집권당 비대위원장과 영부인이 사적 방식으로 공적인 사안을 논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면서 항변했다.
똑같은 사실 관계를 두고도 사람에 따라 생각하는 바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집권당 비대위원장과 대통령 부인의 직접 소통이 과연 사적인 것인지 의문이 든다. 대통령 부인이 공적 인물이라면 당연히 공인들 간의 소통이 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 직후 영부인 호칭 사용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럼에도 한동훈 후보는 김건희 여사를 영부인으로 칭한 것을 보면 실제로는 대통령 부인을 공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런 혼동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데 그건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 부인 문제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윤 대통령은 선거 때부터 부인 문제가 제일 큰 쟁점이 됐었다. 그런데 당선되고 나서도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으로 정치적 공세를 겪고 있다. 전임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 문제도 여전히 뜨거운 이슈다. 문 대통령의 해외 순방길에 김 여사가 꼭 유명여행지에 들러 버킷리스트를 실행한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있었다. 결국 인도 타지마할 단독 방문 건이 형사 입건되고 말았다. 명품 옷값의 출처에 대한 수사가 거의 끝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만간 검찰에 출두하는 김정숙 여사의 모습을 보게 될 것 같다. 누구는 환호할 수도 있겠지만 재발돼서는 안 될 비극이다.
대통령 부인은 아니지만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의 부인 김혜경 여사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부터 김 여사의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이 이재명 후보에게 큰 악재였는데 검찰이 마침내 이재명·김혜경 부부의 소환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경기도 관용차 사적 이용과 경기도 공무원 개인 비서 활용도 동시에 수사 대상이 되고 있다. 광역단체장의 배우자도 영향력을 행사하며 언제든지 비리가 생길 수 있음을 보여 준 사례다.
필자는 대통령 배우자이건 지방자치단체장의 배우자이건 결코 사적인 존재일 수 없다는 생각이다. 역대 영부인들의 공적 활동이 많았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동행하고 상대 국가 수반의 부인과 별도의 행사를 갖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법적으로는 대통령의 배우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폐지했지만 대통령실 내에는 대통령 부인을 전담하는 제2부속실이 관행적으로 있었다. 그러나 법률에서 정한 기구가 아니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배우자’에 대한 규정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건 대통령 사후에 홀로 남은 배우자 예우에 관한 것이지 현직 대통령의 배우자에 대한 규정이 아니다. 대통령령인 ‘대통령비서실 직제’ 제7조 감찰반 조항에 감찰 대상으로 ‘대통령의 친족’이 규정되어 있다. 친족에 대통령의 배우자가 포함되지만 감찰 대상으로 언급될 뿐이다. 그 밖에 경찰청 규칙에 경호의 대상으로 영부인이 나올 뿐이다.
미국의 경우 연방법(USC) 제3편 제105조에 ‘대통령의 의무와 책임을 수행하는데 대통령의 배우자가 대통령을 지원하는 경우 대통령에게 부여되는 지원 및 서비스가 대통령의 배우자에게도 부여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 부인의 공적 임무에 대한 법적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인데 이에 근거해 이스트윙(East Wing)이라는 영부인 집무실과 전담 대변인·보좌진을 별도로 두고 ‘펫프로젝트(Pet Project)’라고 해서 영부인의 대외 활동도 지원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는 미국 내 35개 주 60여 개 도시를 순회하며 코로나19 백신 접종 독려 활동을 벌여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힐러리 클린턴의 경우 남편 빌 클린턴 재임 중 의료보험 개혁과 관련된 공식 직책을 맡았다. 이런 공직 활동으로 지지를 얻어 남편 퇴임 후 뉴욕주 상원의원을 거쳐 대통령 후보와 국무장관까지 역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 부인 미셸 여사도 고령의 조 바이든 대통령을 대체할 후보로 강력히 거론되고 있을 정도다. 영부인 지위 법제화를 통해 좋은 정치적 재목을 얻은 것이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2월9일 페이스북을 통해 “퍼스트레이디도 광역단체장 부인도 활동은 왕성하지만 법적 지위가 모호해 아무런 지원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법적으로 준공무원 지위도 주고 합당한 지원도 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묻는 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주장했었다. 분명 있는 문제를 자꾸 외면하기보다는 공식화해서 지원도 하고 잘못에 대해선 책임을 묻자는 제안에 공감이 간다.
대통령 탄핵도 그렇지만 정쟁을 목적으로 대통령 배우자를 물어뜯기보다는 차라리 ‘대통령 배우자법’을 제정하는 것이 어떨까. 법제화한 후에 공식적으로 지원해서 긍정적인 기여를 유도하고 잘못이 있으면 엄중히 책임을 묻는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