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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전쟁은 기병과 수레가 승패를 좌우했다. 말이 끄는 수레 뒷부분에는 병사가 탄다. 요즘 같으면 탱크라고 할 수 있다. 군마의 수가 곧 국력의 척도였다. 수레가 만 대에 이른다는 만승지국(萬乘之國)은 오직 천자의 나라밖에 없었다. 천군만마의 만마가 가리키는 뜻이 곧 만승이다. 만승지국보다 작은 제후국에 대해선 천승지국이라고 한다.
한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무제도 최고 군마인 중앙아시아 한혈마(汗血馬)로 군대를 꾸려 흉노와의 전투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여포가 탔던 적토마도 한혈마였다. 피와 같은 땀을 흘리며 달리는 말의 털 색깔 때문에 한혈마라고 불린다. 한혈마는 기병을 태우고 360㎞ 거리의 중앙아시아 카라쿰 사막을 물 한 방울 마시지 않고 이틀 만에 주파한다고 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도 명마 부케팔로스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몽골의 칭기즈칸이 유럽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도 강력한 기마부대 덕분이었다. 군마는 지구력과 주력을 갖춰야 함을 물론이다.
말은 인류 역사상 수많은 전쟁터에서 인간과 생사를 함께하는 전우였다. 제1·2차 세계대전 때까지 군마는 전쟁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1차 대전때 영국과 프랑스가 잃은 군마는 무려 900만 필에 달했다. 지금도 도로가 없거나 산악 지형인 곳에선 말에 의지한다. 눈이 오면 거대한 진흙 밭이 되는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도 말 달구지가 무기와 식량을 나른다.
6·25전쟁 중 미 해병대 1사단 소속으로 적군의 포격을 뚫고 탄약과 부상자를 숱하게 날랐던 제주산 군마 레클리스의 동상 제막식이 얼마전 렛츠런파크제주에서 열렸다. 레클리스가 엄마의 고향이자 자신의 뿌리인 제주에 돌아온 것은 70년 만이다.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임무를 끝까지 완수해 미 해병대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레클리스였다. 무모할 정도로 용맹하다는 의미에서 레클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미군은 레클리스를 전쟁 영웅으로 깍듯이 예우했다. 군마로선 미 해병대 역사상 처음으로 하사 계급을 달아 줬고, 훈장도 수여했다. 죽은 뒤엔 해병대 기지에 안장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자국민은 지구 끝까지 찾아가 수습한다는 게 초강대국 미국의 국정 철학이다. 전쟁에서 희생한 이들을 기억하고 예우하지 않는 나라는 오래 존속할 수 없다. 그 대상이 사람 아닌 미물인 말일지라도 마찬가지다.
박병헌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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