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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을 언제로 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양력설·음력설이 우리나라만큼 엎치락뒤치락한 곳도 드물 것이다. 19세기 말 갑오개혁 때 양력을 공식 도입했으나 음력 중심의 생활 양식을 움직이지 못했다. 이 땅에선 1960·70년대 산업화 물결을 만나기 전까지 12개의 지지(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에 따른 시간대로 나눠진 하루, 상·중·하 열흘(旬)씩 구분된 한 달, 1년 24절기가 더 친숙했다.
반면 일본·중국에선 새해 첫날이 양력 1월1일로 굳어진 지 오래다. 일어·중국어 발음만 다를 뿐 ‘원일(元日)’ ‘원단(元旦)’이라 부른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을 기해 모든 것을 빠르게 양력화했고 중국 역시 1912년 1월1일 출발한 중화민국 이래 공적 영역을 서기, 즉 양력에 맞췄다. 근대국가를 향한 기본 행보란 우선 서구적 시간 틀 속으로의 편입을 의미했다. 중화권의 음력설인 춘절(春節)은 설날이라기보다 봄맞이 축제에 가깝다.
양력설에 가장 늦게까지 저항한 게 한국인들인 셈이다. 해방 후 여전히 양력이 공식이었지만 음력설은 대부분 임시 휴무였다고 한다. 박정희정부 들어 양력설 즉 ‘신정(新正)’을 아무리 강조해도 민간에선 ‘구정(舊正)’ 우선이었다. 당국이 계몽과 공무원들을 통한 압력을 동시에 구사했으나 집집마다 제사가 혈연공동체의 구심점이던 시절 ‘음력 사랑’을 어쩌지 못했다. 결국 전두환정부 때 음력설은 공휴일인 ‘민속의 날’이 됐고 1989년(노태우정부)에 ‘설날’로 부활한다.
두 개의 설날이 각각 3일 연휴로 운영되더니 김대중정부의 공휴일 축소 방침에 따라 양력설 연휴도 줄어 현재 상태가 됐다. 음력설에 대해 ‘민족의 명절’ ‘일제와 독재 시대를 넘어 살아남은 민족문화’ 식의 설명이 있었지만 완전히 넌센스 아닐까. 과거 정부의 양력설 권고 내지 강요란 단시간 내 산업국가다운 시간관을 심으려 권위적 리더십을 발휘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이는 전근대와 근대의 충돌이 20세기 후반까지 치열했음을 말해 준다.
천체 운동과 인간 삶을 긴밀하게 연관시킨 천문 역법은 아득한 옛날부터 당대 최첨단 과학이자 문명사의 축이었다. 사막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배를 띄워 바다로 나가려면, 자연재해를 피하려면 ‘하늘의 글(무늬)=천문(天文)’을 알아야 했다. 농경에 없어선 안 될 역법(曆法) 또한 여기서 도출된다. 심지어 정치권력은 천문 지식을 통해 지배의 정당성을 증명했다. 경주 첨성대처럼 그리니치 천문대가 궁전 가까이 있는 게 다 그런 이유에서다. 철도·전신 등 근대적 ‘시간 틀’ 주도권에서 영국이 앞섰기에 그리니지 표준시가 성립됐으며 현대인은 이 틀을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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