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요희의 작가노트] 빵과 복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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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희의 작가노트] 빵과 복권

임요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2-31 06:30:40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 시즌2의 첫 회 제목은 ‘빵과 복권’이다. 시즌1에서 456억 원을 획득한 기훈은 시즌2에서 더 이상의 희생자를 막고자 딱지맨을 찾아 헤맨다. 딱지맨은 게임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관문이기 때문이다.

한편 딱지맨은 그 시간 탑골공원을 배회하고 있다. 그는 노숙자들에게 빵과 복권을 내밀며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

빵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한다. 복권은 ‘크지만 불확실한 행복’이다. 노숙자들은 배가 고프다. 당첨 안 될 게 뻔한 복권보다 확실하게 배를 채워 줄 빵을 집는 게 이득이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복권을 선택한다.

딱지맨은 잔뜩 남아 버린 빵을 구둣발로 짓밟아 버린다. 그의 광기 어린 분노는 가능성 없는 행복을 선택하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나약함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노숙자들은 어떻게 그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그들은 아무리 일을 해도 배고픔을 벗어날 수 없는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모순 때문에 그곳에 있는 게 아니다.

산업혁명 초창기에는 하루 종일 일을 해도 빵 하나를 살 수 없었지만 지금은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해 사람 손을 대체할 별 요상한 발명품이 다 등장했다. 더불어 최저시급·공공근로 등 저소득층을 위한 생활보장제도가 자리를 잡았다. 아무리 가진 게 없어도 길거리에 나앉지 않을 정도로 먹고살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것이다.

길거리의 노숙자 대부분은 사업 실패·도박 중독·투자 실패 등으로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벼랑에 몰린 사람들이다. 그곳 아니면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다. 삶이 나락으로 굴러떨어진 그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원위치로 되돌아가고픈 소망까지 저버린 것은 아니다.

▲ ‘빵과 복권’이라는 선택지는 ‘빵과 자유’라는 고전적인 선택을 떠올리게 한다. 일러스트 임유이 기자

빵 한 개가 시급한 형편일지언정 일확천금을 안겨다 줄 복권 쪽으로 손이 가는 것은 그들로선 당연한 선택행동이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은 814만5060분의 1. 어쨌든 814만5060분의 1의 기회는 있는 것이니까.

‘빵과 복권’이라는 선택지는 ‘빵과 자유’라는 고전적인 선택을 떠올리게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곧 자유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이 땅에 들불처럼 번졌던 3·1운동을 떠올려 보자. 그들은 주권이라는 이름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일제의 총탄에 온몸으로 맞섰다. 자유야말로 진짜 삶이다. 진짜 삶을 위해 목숨도 내던질 판에 그깟 빵 한 개의 쾌락쯤이야.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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