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코코 샤넬의 혁명적 뉴 스타일 시원은 ‘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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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2-14 00:02:50

깡마른 몸매에 골무와 핀과 가위로 무장하고 평생을 지낸 여자, 단발머리 사이로 언뜻 보이는 눈빛에 타 버릴 것 같은 여자, 20세기 초반 정계와 예술계의 인사들과 활발히 교류한 여자, 사랑하는 남자의 비명횡사를 슬퍼하며 전 세계 사람들에게 검은 상복을 입힌 여자, 성별·직업·지위와 무관하게 치열하게 우정을 나눈 여자, 세상을 자신의 아바타 왕국으로 만든 여자! 가브리엘 코코 샤넬이다.

지금은 매우 당연하지만 당시엔 상상불가했던 여성의 바지를 비롯해 수영복·콤비 체인 핸드백·슬링백 펌프스 신발·미니 블랙 드레스·비치가운·스포츠웨어는 모두 그녀의 반항과 도발적 생각에서 나왔다. 새를 통째로 올린 무겁고 챙이 넓은 모자와 숨쉬기도 힘든 코르셋, 치렁거리는 넓고 긴 치마 속에서 활동의 제약을 받던 여성에게 코코 샤넬은 남성의 의복을 입혔다.

옷과 여성의 활동에 대한 샤넬의 철학은 단순했다.

‘여성도 편안한 옷을 입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무거운 모자는 여성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하려는 남성의 계략이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샤넬은 여성의 옷을 남성이 디자인하고 만드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것은 여성을 대상화하고 억압하는 일이었다. 샤넬의 시대는 여자가 바지를 입으면 경찰에 잡혀가는 때였다. 샤넬의 창의성과 변혁에는 문제의식과 비판이 선행한다. 그 계기는 귀족과의 만남이었다.

가수가 꿈이었던 이 젊은 여성은 돈 많은 젊은 귀족의 성에 들어가 살게 된다. 에티엔 발장은 한량 귀족이었다. 그의 성에는 예술인과 귀족들이 모여들었다. 발장의 친구인 상류층 여성들은 무거운 모자에 꽉 끼고 불편한 드레스를 입고 옆으로 걸터앉아 승마를 했다. 12살 때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에 의해 수녀원에 보내져 그곳에서 자란 아가씨의 눈에 이런 귀족 여성의 복장은 선망의 대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의 옷차림이 부럽지 않았다.

‘어떻게 저렇게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한없이 불편하게 살까?’ 하는 것이 그녀의 의문이었다. 보다 못 한 샤넬은 그들에게 단순하고 가벼운 모자를 만들어 선물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샤넬의 모자는 상류층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들은 앞다투어 모자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시작은 모자였지만 샤넬의 혁신적 생각은 의복에까지 미쳤다. 정선된 옷감으로 만든 단순한 디자인의 옷은 길고 답답한 옷에 싸여 자유를 억압당하던 여성들의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시대도 그녀의 편이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여성들을 집 밖으로, 일터로 끌어냈고 샤넬의 간편한 복장은 필수품이 되었다.

몇 년 전 이 독특한 천재 여성에 관한 글을 쓰면서 의아했던 것이 있다. 그녀는 어떻게 혁신가가 되었는가. 그녀는 어쩌다가 남성에게서 불을 훔쳐 여성에게 준 ‘프로메테우스’가 되었는가.

놀랍게도 샤넬 스타일의 비밀은 수녀원이었다. 수녀원은 전문직 여성들의 일터이다. 수녀들은 남성에게 종속되지 않고 신에게 봉사하며 자신들의 커리어를 쌓아 가는 전문직 여성이었다. 그들은 독립적이고 이성적으로 사고하며 매일을 극기로 채운다. 엄격한 생활 속에서 냉정하게 자신들의 임무를 완수한다. 수녀원에서 자란 탓인지 샤넬은 제복을 좋아했다. 샤넬 패션의 특징인 절제된 라인의 소박한 하얀 깃 셔츠와 블라우스, 검은 옷은 수도원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그녀 또한 일생을 이성적이고 중성적으로 살았다. ‘보이’라는 애칭의 영국인 아서 카펠과 평생 연인으로 지냈고 많은 도움도 받았지만 늘 자신의 일을 우선하는 능동성을 잃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와 외모는 중성적이어서 당시의 미모 기준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마르고 볼륨 없는 몸매를 가진 샤넬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단순한 스타일로 당당하게 세상에 나섰고, 여성들은 풍만한 느낌의 드레스를 벗어 던지고 열광적으로 샤넬을 좇았다. 노출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보이시한 패션은 여성의 성(性)을 지키기 위한 장치였다.

코코 샤넬은 문화혁명가이자 문화 영웅이다. 그녀는 자신의 ‘철학’을 여성에게 입혔다. 스타일이 아닌 철학을. 그것은 무엇일까. 바로 반항과 혁신이었다. 그녀는 기존 세상의 관습과 스타일에 동화되지 않았다. 물론 선망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꿈꾼 것은 자신의 생각·자신의 철학이었다. 여성도 활동해야 한다. 여성도 자유로워야 한다. 여성도 편안해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코코 샤넬은 여성의 ‘몸’을 해방시켰다. 샤넬 덕분에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옷에서 해방된 여성들은 이제 ‘마음’의 자유도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