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53] 부의 균등, 모두가 공평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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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2-27 06:30:10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본가가 취득한 이윤은 타인의 노동이 축적된 결과물이란 것, 프롤레타리아 해방을 통해 자본가의 이익을 모든 노동자가 나눠 가질 때 노동자 중심의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적정 수준의 이익과 이윤을 국가가 나서서 통제하고 배분하면 의사든 변호사든 노동자든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희숙은 공부 잘하는 변태섭이 한 말이라 의심하지도, 의구심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변태섭의 집안은 희숙의 집처럼 가난하지 않았다. 변태섭의 아버지는 세관 공무원이었고 교회 사람들 얘기로 어머니는 부동산을 사고파는 복부인이라 했다. 유복한 집안의 변태섭이 부를 나눠 가져야 공평한 세상이라고 하니 자본주의는 타파해야 할 체제가 분명했다.

노동자가 자본가의 착취를 탓하는 것과 자본가가 자본가의 모순을 지적하는 건 달랐다. 변태섭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공평을 외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가난한 사람이 부를 나누자고 주장하면 억지처럼 들렸을 텐데 변태섭처럼 유복한 집안의 자식이 부의 균등을 주장하니 설득력 있었다. 모인 사람들 대부분은 그의 주장을 수긍했고 더러는 침묵으로 그것을 대신했다.

희숙은 학력고사를 앞둔 여름방학이었음에도 교회 청년부 수련회는 참여하겠다고 결정했다. 목사님이 수련회가 영적 성장의 기회라고 말씀하셨지만, 사실 성적 하락을 고민하던 고3 수험생에겐 갈등이 아닐 수 없었다. 부자가 천국 가는 게 서울대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변태섭이 말하지 않았으면 희숙의 갈등은 더 깊었을 것이다. 변태섭은 늘 적절한 때에 명쾌한 힌트를 던져 주곤 했다. 그의 힌트는 지쳐 가는 자신과 타협하고 싶은 시점에서 번뜩였다. 그의 한마디는 인생의 미로에서 비상구를 발견하는 느낌이었다.

서울대 합격권에서 멀어진대도 영적 성장의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그런데다가 교회의 누구도 고3이니 이번 수련회는 빠져도 된다며 권하는 이가 없었다.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성도들의 믿음은 모든 문제의 해답이었다. 그렇다 쳐도 수련회 결심은 변태섭이 부자가 천국 가는 게 어렵다, 했던 일침보다 “희숙이도 갈 거지?”란 한마디로 굳혀졌다. 변태섭이 오겠단 말도, 오라는 얘기도 아니었는데 나도 갈 거니까 너도 오란 소리로 해석했다.

변태섭은 일요일 장년 예배가 끝나고 점심 봉사 준비하는 식당으로 희숙을 찾아왔다. 식당은 스무 명 남짓 앉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변태섭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솥에서 밥을 퍼 큰 스테인리스 대야에 옮겨 담고 있는 희숙을 발견하곤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희숙아, 이번 수련회에 올 거지?” 희숙이 신청 카드를 작성하지 않았다며 확답을 들으러 왔다고 했다. 희숙은 이미 수련회에 가기로 결심하고 있었지만 변태섭이 직접 수련회 명부를 들고 나타나 가부를 물으니 그 자리에서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희숙은 선뜻 대답하는 게 속 보이는 것 같아 망설이는 척했다. 변태섭은 희숙이 결심할 수 있도록 추임새를 넣었다.

“나도 갈 건데”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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