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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첩부서장 ‘티에제’', '1989년 8월23일 동독의 관영 통신사 ADN은 서독의 정보기관 책임...'))
1989년 8월23일 동독의 관영 통신사 ADN은 서독의 정보기관 책임자가 동독에 도착해 망명을 신청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전 세계에 타전되었고 서독 정부는 충격에 빠졌다. 그는 바로 서독 헌법보호청(BfV)의 방첩 부서장이었던 한스 요아힘 티에제(Hans Joachim Tiedge·당시 48세)였다.
티에제는 1937년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후 1966년 헌법보호청에 채용되어 19년 동안 서독 정부에 침투하려는 동독 스파이를 차단·검거하는 방첩부서에 근무했고 마지막 4년은 동 부서의 수장을 맡았다.
1985년 8월21일 티에제의 딸들은 병가 신청을 한 아버지가 며칠째 연락이 안 된다며 경찰에 신고를 했으나 동독 매체의 보도로 8월19일 동독으로 망명했음이 밝혀졌다. 1998년에 출간된 자서전에서 티에제는 만성 알코올 중독과 재정적 부채와 관련된 개인적인 문제로 망명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또한 다른 부서의 한직으로 배치될 것을 걱정했다고도 밝혔다. 그는 아내·세 딸과 함께 살았는데 1982년 욕실 사고로 주장된 아내의 죽음 이후 알코올 중독이 악화되었고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대다수 언론이 이를 망명 동기로 기정사실화하고 있으나 사실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티에제는 1980년 초반에 이미 동독 국가안전부(슈타지)와 KGB(소련 국가보안위원회)에 포섭되어 활동해 온 간첩이었다. 그의 상부선은 동독 국가보안부(MfS·약칭 슈타지) 해외공작국장인 마르쿠스 볼프다. 1985년 7월28일 로마에서 KGB 해외정보총국 방첩부서의 책임자인 유르첸코(본지 스파이세계 제52회, 2025.2.26.)가 미국으로 망명했다. 유르첸코는 미국 및 서방 정보기관에 암약하는 KGB 간첩과 협조망을 제보했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당시 서독 헌법보호청의 방첩부장이었던 티에제였다. 티에제는 KGB 유르첸코의 망명을 뒤늦게 눈치 채고 신변의 위협을 느껴 1985년 8월19일 급히 동독으로 도주한 것이다.
동독은 티에제로부터 얻은 정보에 따라 동독에서 활동해 온 서독 요원 168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서독 및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회원국들은 대혼란에 직면했다. 당시 서독 총리 헬무트 콜은 ‘대참사’라고 말했다. 당시 나토는 주요 회원국 중 하나인 서독이 스파이 천국이 되어 우방국 정보가 누설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했고 여러 차례 경고도 했다. 이 와중에 동독 등 공산권 간첩을 잡아야 할 서독의 방첩부서 수장이 동독과 소련 간첩이었다는 사실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티에제가 망명하기 몇 주 전에 서독 정부에서 비서 등으로 일하던 여성 직원 3명이 실종되었는데 후에 이들이 동독으로 도주하였음이 밝혀졌다. 1984년 서독 정부가 동독 주민의 서독 이주를 허용하는 정책을 시행한 후 4만여 명이 서독에 정착했다. 당국은 이중 3000여 명이 동독 스파이라고 추산했다. 당시 동독 슈타지의 해외공작국장인 볼프는 대서독 침투 공작의 일환으로 이른바 ‘비서 스파이’를 대거 양산했다. 슈타지는 서독 정부에서 근무하는 미혼 여성이나 남성을 표적으로 삼아 미남계나 미인계로 포섭했다.
한 사례로 서독 외부무 직원인 레오노레 쉬테를린은 수개월간 한 사진작가로부터 구애를 받아 결혼했다. 그 여성은 바로 슈타지와 KGB의 급여 명단, 즉 공작금 수령자에 합류했고 간첩 행위가 발각되자 자살했다. 서독 총리실에 근무했던 헤르타 아스트리드 빌너는 남편과 동독으로 도주했다. 1984년에만 서독 대통령실과 총리실 일부 여성 비서 6명이 최소한 15년 동안 동독의 스파이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서독 수사당국은 쾰른에 있는 티에제의 가택을 수색한 결과 수많은 기밀문서를 발견했다. 티에제의 상사였던 헌법보호청(BfV)의 렌브로이히(Heribert Hellenbroich) 국장은 결국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나토 동맹국들에 보안 침해 사실을 즉각 통보했다.
내무부의 공식 조사에 따르면 티에제는 동독과 소련에 대한 816건의 작전에 관여했고 관련 비밀문건을 동독과 KGB에 제공한 것으로 파악됐다. 굶주린 고양이에게 고급 생선을 맡긴 격이었다. 서독 검찰은 1986년에 티에제에 대해 간첩 혐의로 국제 체포영장을 발부했지만 동독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동·서독 통일이 다가오자 티에제의 부관이였던 클라우스 쿠론은 자신도 이중 스파이였으며 동독 슈타지 해외공작국장인 볼프로부터 50만 달러를 받았다고 자백했다.
동독 당국은 티에제에게 동베를린 교외인 쾨페닉에 아파트를 제공해 주었고 이후 그는 헬무트 피셔(Helmut Fischer)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1988년 5월 그는 동독 훔볼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논문 제목이 ‘서독 정보학’이었다. 그는 동료 학생이자 슈타지 정보 요원인 브리타를 만나 결혼했다. 서독의 본처 딸들은 그를 방문할 수 있었고 그는 특권을 누리며 동독 시민으로 살았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동·서독이 통일되기 직전 동독 슈타지가 해체되었다. 그러자 소련 KGB는 독일 통일 이후 반법치적 불법행위자 청산으로 사형이 선고될 것을 예견하고, 1990년 8월23일 티에제를 그의 아내와 함께 비밀리에 모스크바로 탈출시켰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국가연금을 받으며 살다가 2011년 7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93년 티에제는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당연히 저는 반역자입니다. 부인할 수 없습니다”고 자신의 간첩 행위를 인정했다. 1998년 9월 독일에서 티에제의 자서전 ‘망명자의 인생 고백(Der Überläufer : Eine Lebensbeichte)’이 발간되었다.
티에제 사건은 1974년 서독 총리였던 빌리 브란트의 수석 보좌관인 ‘귄터 기욤’(본지 스파이세계 제4회, 2024.1.30.)이 동독 간첩이었음이 발각되어 총리직을 사임한 이후 서독 역사상 가장 심각한 간첩 사건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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