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평양 송죽회의 만세 소리와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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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3-07 00:02:50

1919년 3월1일 정오가 되자 평양 시내의 모든 교회는 일제히 종소리를 냈다. 장대현교회 앞마당인 숭덕학교 뜰과 남산현교회에 약 2000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설암리에 있는 천도교구당에도 신자들이 모였다. 남산현교회에서 박석훈 목사의 개회 선언으로 독립선언식이 거행되었고 숭덕학교에서는 강규찬 목사가 개회를 선언하고 이일영 목사의 기도에 이어서 김선두 목사가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 모여든 사람들에게 태극기가 배포되었다.

숭덕학교 교사인 곽권웅의 대한독립만세 선창 후 숭덕학교 교정을 출발한 사람들은 설암리 천도교구정에 모인 이들과 합류하여 남문 거리의 평양경찰서 앞에 다다랐다. 여기에는 남산현교회 집회를 마치고 몰려든 일행이 있었다. 한 갈래는 평남도청과 평양재판소 앞 거리를 통해 평양역 광장까지 나아갔고 다른 한 갈래는 평양부청 옆과 일본인 중학교 거리를 거쳐서 평양감옥 뒷거리와 서성리·서문 밖 대로로 행진했다.

일제 경찰은 소방대를 동원하여 물을 뿌렸고 총을 쏘았다. 이날의 만세운동으로 많은 사람이 체포되었다. 특히 만세운동 다음 날인 3월2일에 숭의여학교의 박현숙 선생님이 체포되었다. 박 선생님은 1915년 숭의여학교 졸업생으로 1917년에 교사로 부임했다. 그는 수학 교사로서 김경희·이효덕·황애덕 선생님과 결성한 비밀결사 송죽회의 멤버였다. 송죽회는 국외에서 활동하는 독립군의 군자금을 지원하며 독립운동가들의 가족을 돕는 숭의여학교 비밀결사였다.

1913년에 결성된 송죽회에는 숭의여학교 졸업생과 재학생도 참여했다. 비밀결사인 만큼 입회조건도 까다로웠다. 회원 한 사람이 추천하고 회원 전원의 찬성이 있어야 가입할 수 있었다. 월 회비는 30전이고 매월 15일 밤 자정에 학교 기숙사 지하실에서 열리는 비밀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회의에서는 항상 감춰 두었던 태극기를 꺼내 펼쳐 놓고 독립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숭의여학교의 3·1만세운동은 송죽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준비되었다. 박현숙 선생님은 남산현교회 신홍식 목사 집에서 여러 차례 만세 운동을 의논했고 태극기 제작과 애국가 등사 일을 맡게 되었다. 그는 송죽회 학생들에게 독립을 위해 큰일을 할 때가 되었으며 모든 일은 극비리에 추진해야 한다고 명심시켰으며 시간과 장소는 그때그때 알려 주겠다고 했다. 특히 학생들은 태극기 제작에 앞장섰는데 당시 일본인 호시코가 기숙사 2층에 살았기 때문에 미술교사 구순선의 방에 몰래 모여 3일 동안 200여 개의 태극기를 만들었다.

학생들은 2월28일 밤부터 3월1일 새벽까지 태극기를 치마폭에 감추어 만세 시위 예정지인 숭덕학교 지하실로 옮겨 두었다. 박현숙 선생님도 자신이 만든 태극기를 교회 신자 이성실의 집 장롱 속에 숨겨 두었다가 빨래 광주리와 물지게에 숨겨 남산현교회까지 옮겼다. 일제는 태극기를 만든 사람은 물론 태극기를 가진 사람도 독립운동가로 간주하여 탄압했다.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 운동에 앞장 선 사람들 중에는 일제 경찰에게 손을 절단당해 순국한 사람도 있다. 숭의여학교 학생들은 3월1일 만세 운동에 이어 며칠 후인 3월4일에도 만세 운동을 지속했다. 숭실학교 대학부·숭실중학교·광성고등학교·평양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함께였다.

이후 박현숙 선생님의 검거 소식을 들은 숭의여학교 학생들은 단독으로도 만세 운동을 했다. 숭의여학교 학생들은 3월5일에 학교 뒷담 구멍으로 몰래 빠져나갔다. 그들은 아무 두려움 없이 평양신학교 기숙사 앞을 행진하면서 독립 만세를 부르고 학교로 돌아갔다. 이날의 만세 시위자 색출에 혈안이 된 일제에게 붙잡힌 학생 중에는 권기옥이란 학생도 있었다. 송죽회 3대 회장인 박현숙 수학선생님 추천으로 1918년에 송죽회에 가입한 당찬 학생 권기옥은 붙잡혔다가 석방된 이후 혼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0월1일에도 만세 운동을 주도한다.

10월1일 평양 만세 운동으로 체포된 권기옥은 평양경찰서 유치장에서 다나카 형사에게 3주간 고문을 당했다. 천정에 거꾸로 매달아 물을 먹여도 임시정부 공채 판매의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다. 모진 고문으로 수십 번 기절해도 끝까지 함구한 권기옥을 검찰로 송치한 다나카는 신문조서에 이렇게 썼다. “이 여자는 지독하다. 죽어도 말을 안 한다. 검찰에서 단단히 다루기를 바란다.”

18세의 권기옥은 감옥에서 6개월의 형기를 마친 이후 상해로 망명한다. 그는 조국 독립을 위한 공군 조종사가 되어 독립투사로 맹렬히 활동한다. 송죽회가 함께한 평양 만세 운동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박현숙 선생님과 권기옥 학생의 이웃인 평양 시민들과 함께 3·1절을 기념할 날은 언제나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