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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맛있는 동네산책] 맛집거리 원조는 운종가 뒤안길 ‘피맛길’
종로구 청진동 지킨 메밀전문 ‘광화문미진’
골목식당서 전국구 된 ‘종로계림닭도리탕’
이전했지만 여전한 인기 ‘청진옥’ ‘열차집’
유성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3-28 06:30:00
▲ 유성호 맛 칼럼니스트
우리나라 각 지방자치단체가 조성한 음식거리와 그곳에서 가 볼 만한 맛집을 시리즈로 소개하고 있다. 초기 음식거리는 서울 광장시장·부산 자갈치시장 등 전통시장 주변에 맛집이 들어서면서 시장과 더불어 발달했다. 또 전국의 이름난 명산과 명찰 입구 등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는 어김없이 먹거리촌이 형성됐다.
 
시장을 보든 관광을 하든 결국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식욕을 채워야 뭘 해도 만족도가 높아지기 마련이다. 이는 식욕이 인간의 가장 하위 욕구, 즉 기본 욕구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런 생리와 생존에 필요한 하위 욕구가 채워져야 정치·종교·문화 생활과 같이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음식거리·맛집촌·먹거리촌은 결국 인간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인위적으로 자연스레만들어진 결과물인 셈이다.
 
도심에 음식거리가 만들어진 예로는 이번 칼럼의 소재인 서울 종로의 피맛골이 대표적이다. 도시의 역사는 어느 날 하늘에서 툭 떨어지듯 생기지 않는다. 피맛골은 조선시대 운종가 대로변 뒤안 골목길을 말한다. 당시 대로로 다니던 고관대작의 ()을 피해() 다니던 길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장삼이사들은 높으신 양반들이 행차하면 가던 길을 멈추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양반들 행차에 들러리까지 서려니 아니꼬울 수밖에. 그래서 숨어든 해방구 같은 곳이 운종가 뒤안길 피맛골이다. 이곳은 그래서 민초들의 고단한 삶의 현장이 됐고 자연스레 허기를 채울 밥집과 주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육의전 이면도로에 형성된 맛집 골목
 
 
▲ 도심재개발로 빌딩이 들어섰지만 ‘피맛골’이란 지명을 남긴 르메이에르 빌딩 1층. 필자제공
 
육의전은 조선 태종이 광화문 네거리부터 동대문까지 조성한 상점가다. 명주·종이·어물·모시·비단·무명 등 6개의 어용(御用) 품목을 팔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재정이 부족했던 왕조는 이들 육의전 상인에게 금난전권을 부여하고 공납을 받아 재정을 채웠다. 금난전권은 육의전을 비롯한 한성 내 37개 시전들이 도성 안팎 10(4km) 이내에서 난전을 금지시킬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그러나 특권이 강화될수록 의무도 가중되면서 육의전의 상품 독점은 정부 관리의 부정부패를 가져왔고 신흥 기업가를 봉쇄해 상공업 발전을 근본적으로 위축시키는 폐단을 가져왔다. 이런 특권은 일반 백성들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난을 받았고 정조 때인 1791년에 육의전 이외 시전 상인들의 금난전권은 폐지됐다. 개항 이후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값싼 상품이 들어오자 육의전이 쇠퇴하면서 갑오개혁 이후엔 완전히 철폐됐다.
 
피맛골 식당가는 종로 육의전 번성과 함께 시작돼 지금까지 면면이 이어져 오고 있다. 낡은 한옥으로 인한 도시 경관 문제와 사유재산권 확대 욕구로 오래전부터 재개발 이야기가 솔솔 나오기 시작했고 1980년대 도심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됐다. 2003년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땅만 팠다 하면 조선시대 유물이 쏟아져 나오자 서울시는 종로2가부터 6가까지를 수복 재개발구역으로 지정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피맛골은 윗 피맛골로 종로 북쪽 지금의 D타워와 르메이에르 빌딩이 들어서 있는 곳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개발 전 1950·60년대부터 이름을 알린 열차집·청진옥·목포집·삼경원 등 터줏대감이 즐비했던 곳이다.
 
윗 피맛골은 재개발로 옛 정취는 대부분 사라졌지만 일부 구간은 청진상점가·피맛골 식객촌 등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아래 피맛골은 세운상가 옆 종로먹거리골목이란 이름으로 지금도 많은 음식점이 뒤안길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언제나 문전성시 윗 피맛골 터줏대감
 
▲ 윗 피맛골 대표 터줏대감 ‘광화문 미진’의 냉메밀·보쌈·메밀해물파전·메일전병. 필자 제공
 
현재 피맛골에서 가장 핫한 곳은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1층에 들어선 광화문미진이다. 보통 인내심으로는 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손님을 점포 밖에 줄 세운다. 보통 30, 주말에는 100여 팀 대기가 다반사다. 성질 급한 식객은 헛웃음을 치곤 발길을 돌리기 일쑤다. 해법은 오픈런인데 이 또한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사람의 생각과 행동 양식이 모두 비슷하기 때문이다.
 
광화문미진은 1954년에 창업해 3대째 대를 잇는 메밀음식 전문점이다. 창업주 안평순 씨가 지금의 교보빌딩 자리인 청진동에서 개업해 근처에서 자리를 옮겨 가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처음엔 광화문우체국이 마주 보이는 종로 대로변에 있다가 도로가 확장되면서 교보빌딩 후문 쪽으로 옮겼다. 이때 2대 사장에게 물려줬고 청진동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2010년 지금 자리에서 재개업을 했다. 지금은 2대 대표의 딸이 식당을 이어받았다.
 
광화문미진은 한국식 냉메밀국수가 특징이다. 일본식 소바 쯔유보다 짜진 않지만 진하고 깊은 맛을 내는 간장 육수와 쫄깃한 식감의 메밀 면발을 선보인다. 육수는 다랑어와 멸치·다시마·무 등을 넣고 대대로 이어져 오는 미진만의 조리법으로 우려낸다. 메밀면 양이 많아 가성비가 좋다는 평이다. 강원도 평창에서 공수해 온 통메밀과 속메밀을 반반 섞어서 만든 메밀묵밥과 속을 꽉 채운 메밀전병도 인기다.
 
미쉐린가이드는 빕그루망(합리적 가격에 훌륭한 음식)에 선정되면서 주전자 가득 담긴 차가운 육수와 테이블마다 인심 좋게 제공되는 메밀국수 고명은 기호에 따라 가감이 가능하다. 숙주와 두부·신 김치와 돼지고기 소로 채운 메밀전병 역시 이 집의 인기 메뉴라고 평했다.
 
가맹사업 성공한 아래 피맛골 대표주자
 
▲ 종로계림닭도리탕의 대표 메뉴인 마늘이 듬뿍 올라간 닭도리탕. 필자 제공
 
종묘 쪽에서 바라본 세운상가 우측으로는 종로맛골목이 시작된다. 이 골목 안에서 가장 긴 대기줄을 세우는 곳이 닭도리탕 전문점 종로계림닭도리탕이다. 닭도리탕이냐 닭볶음탕이냐에 대한 논쟁이 더 필요 없다. 닭을 도리쳐서 해 먹는다는 닭도리탕에 필자도 한 표를 보탠다. 그동안 긴 웨이팅으로 한 냄비 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제는 전국구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돼 접근성이 좋아졌다.
 
종로계림닭도리탕은 1965년 종로3가 아래 피맛골 좁은 골목 안에서 계림식당이란 이름으로 시작했다. 60년 동안 마늘이 들어간 닭도리탕이란 콘셉트를 유지하면서 오직 한 가지 메뉴만 선보였다. 닭도리탕 양을 2·3·4인분으로 아주 디테일하게 구분해서 먹기 편하게 했다. 구미 당기는 매콤한 빨간 육수 색깔 또한 이 식당의 시그니처다. 육수에 담긴 도리친 닭 위로 다진 마늘을 듬뿍 얹어 내 오면 입안에 침이 금세 고인다.
 
이전했지만 전통 노포로 인기 여전
 
▲ 청진옥 해장국·모둠수육(위)과 열차집 원조빈대떡·어리굴젓. 필자 제공
 
종로 피맛골 맏형은 누가 뭐래도 1937년에 개업한 해장국 전문점 청진옥이다. 청진옥 역시 종로 피맛골 개발 과정에서 르메이에르 빌딩 1층에 자리 잡았다가 지금은 80m 떨어진 길가로 이전했다. 청진옥은 선지해장국이 유명하다. 원래는 양해장국이었는데 양을 보다 푸짐하게 하기 위해 선지를 넣은 것이 시그니처 메뉴가 됐다. 백범 김구 선생과 윤보선 전 대통령의 단골집으로 이름나기도 했다.
 
업력으로 치면 청진옥이 맏형이지만 명성으로는 열차집도 한 자리 차지한다. 이 식당은 1954년 지금의 교보빌딩 인근 세종로 뒷길 한옥가 골목길에서 문을 열었다. 원래 상인이었던 창업주는 1950년 광화문 일대 노전에서 맷돌과 번철을 놓고 빈대떡을 팔다가 1954년 장소를 종로소방서 부근 옛 중학천변으로 옮겨 자리 잡았다.
 
담벼락 밑 양쪽을 판자로 막아 자리를 편 모양이 기차간 같다고 해서 기차집이라고 불렀다. 1960년께 지금의 르메이에르 빌딩이 들어선 피맛골 골목에 자리를 잡으면서 사업자등록을 열차집으로 했다. 2010년부터 종각사거리 제일은행 뒤 골목으로 자리를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진옥·열차집 모두 도심 재개발로 자리를 옮겼지만 태어난 곳에서 멀리 떠나지 않았다. 그건 오랜 단골을 위한 배려이자 노포의 기본이다.
 
피맛골 명성은 그동안 쌓인 역사의 두께만큼 단단하다. 그렇기에 아무리 도시가 개발되고 세련된 빌딩들이 들어서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설령 점포도 상호도 모두 흔적없이 사라진다 해도 식객들의 미뢰에는 영원히 남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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