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 오늘생각] 안톤 체호프의 ‘6호실’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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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4-10 00:02:55

루쉰이 ‘광인일기’를 썼던가. 1918년 5월에 발표한 작품이다. 광인, 미친 사람이 식인을 하는 주위 사람들을 광인이라 여기지만 사실은 그야말로 미친 사람이었던가?

필자는 중병에 걸렸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척추 디스크에 고혈압에, 기립성저혈압에, 관절염에, 통풍에 시달린 지 오래지만 얼마 전부터는 마음에도 병이 들어 버린 것 같다. 주위 사람들도 내가 이상하게 된 것 같다고 하는 것을 보면 병은 겉으로 드러날 만큼 진행된 것 같다.

희한하게도 병을 자각하자 오래전에 읽은 소설 한 편이 생각났다. 안톤 체호프(1860.1.29.~1904.7.15.)의 ‘6호실’. 이 소설의 주인공 역시 ‘광인’이었던 까닭이다. 이 소설은 1892년에 발표되었고, 필자는 세로로 읽는 옛날 책에서 이 작품을 찾았었다. 분명 미치지 않은 주인공을 미친 마을 사람들이 정신병동에 집어넣는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기억이 ‘원상’과 다른 경우가 얼마든지 많다.

이 안톤 체호프에 관심을 품은 한 작가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서른다섯의 나이로 요절해 버린 작가…. 어쩐지 이름을 말하고 싶지 않다. 오늘날 이 작가는 대중에게 짧은 단편소설 하나로 선명히 기억된다. 하지만 그는 더 귀한 작가였다. 필자는 문학을 작품보다도 그것을 낳은 작가들로 사랑한다. 뜨겁게 깊이 사랑한다. 인간 그 자체를 사랑한다.

그는 소위 ‘대동아전쟁’에 깊은 반감을 품었다. 감시와 검열이 상시적이던 때였다. 그는 자신의 ‘마음 풍경’을 보이지 않을 듯 보이게 작품들에 아로새겨 놓았다. 오, 요철을 읽어 내야 한다! 퍼즐을 짜맞추어야 한다!

마르크시즘에도 경사된 적 있고, 오스카 와일드와 D.H. 로렌스에 심취했던 그. 그는 일제 말기 말년에 이르러 토마스 만을 읽었다. 그리고 안톤 체호프를 읽었다. 필자는 책상 위에 오로지 자신의 책만을 밝힐 수 있는 스탠드를 켜 놓고 체호프를 읽는, 고독한 일기를 쓰는 그를 생각한다. 마치 김남천의 소설 ‘등불’에 나오는 지독하게 고독한 작가처럼 말이다.

숱한 이들이 대일 협력으로, 미친 전쟁으로 나아가고 있었으므로 그는 한없이 고독했을 것이다. 매일 흑빵처럼 단단한 고독을 뜯어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영문으로 번역된 안톤 체호프의 ‘6호실’을 읽었다. 필자의 상상 속에서 그는 이 소설을 읽었어야 한다.

한 소읍 같은 소도시다. 정신병원 본관 뒤 별관에 정신병자 다섯이 수용되어 있다. 문제적 환자는 이반 드미트리치 그로모프. 그는 루쉰의 ‘광인일기’ 주인공처럼 피해망상 환자다. 전직 교사요 집달리였고 책을 많이 읽었다. 어느 날 그는 무장한 호송관들이 족쇄를 채워 끌고가는 죄수들과 마주치고는 자신도 그렇게 감옥으로 끌려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재판관·경찰관·의사 같은 사람들은 죄인이나 환자들에 냉담하고 사무적이고 무죄 판결 따위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그로모프를 정신병원으로 보낸 안드레이 에피므이치 라긴이라는 인물은 더 문제적이다. 그는 지성적이고 성실하다. 그는 열악한 병원 환경에서도 열심히 일한다. 그러다 삶에 대해 회의를 품는다. ‘만일 죽음이 모두에게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최후의 종말이라면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인간의 죽음을 막으려고 하는가?’ 책을 좋아하는 그는 이 소도시에 지적인 사람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사실에 절망하는데, 정신병동의 그로모프가 몹시 지적인 흥미로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인 라긴이 그로모프를 자주 방문한다는 소문이 이 소도시에 널리 퍼진다. 라긴은 그로모프의 견해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지만 언젠가부터 자신의 주위로부터 어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다. 잡역부나 간호사나 환자들이 그를 만날 때면 미심쩍게 바라보고 수군거린다. 이제 사람들은 그의 말에 맞장구를 치지도 않고 에둘러서 충고하는 소리들을 한다. 그로모프 같은 정신병자와 어울리는 그를 돌려세우려는 것이지만, 한 가지 다른 동기를 가진 사람이 있다. 예브게니 표도르이치 호보토프는 본래 라긴의 업무 수행을 보조하는 역할을 받아 파견된 사람이다. 어느 날 라긴은 필시 이 호보토프로부터 시작되었을 행정적 조치에 의해 그로모프가 갇혀 있는 정신병동에 함께 수용되고 만다.

이 소설의 마지막 결말은 죽음이다. 철학적 사유를 즐기고, 그로모프라는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그에게서 매력을 발견하고 그를 즐겨 찾아갔던 라긴. 아마도 호보토프는 라긴의 지위를 탐냈는지도 모르는데, 어찌 되었든 그는 자신의 자유가 박탈되는 상황에 저항하다 덧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이 현대적 사회에서 광인은, 더구나 현학적인 광인은 몹시 위험하다. 세상은 그를 못 본 척 방치해 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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