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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공세를 받으며 중국에 눈길을 돌리던 중 ‘중국 스파이’라는 거대 암초를 만났다. 스파이 혐의의 중국 남성을 구속 기소한 독일은 물론 유럽연합(EU) 전체의 대(對)중국 협력에 여파가 주목되는 가운데 중국 측 반응 수위에 관심이 쏠린다. 29일(현지시간) 독일 연방검찰에 따르면 독일대안당(AfD) 소속 막시밀리안 크라 유럽의회 의원 보좌관으로 근무하던 독일 국적의 중국 출신 남성 지안 궈(44)를 구속 기소했다. 2019년 9월부터 4년 반 동안 유럽의회 협상·결정에 관한 ‘민감 서류’ 500여 문건을 빼돌려 중국 정보기관에 넘긴 혐의다. 형법상 간첩죄에 해당한다.
지안 궈는 독일 드레스덴대에서 독문학과 역사학을 공부하고 중국 태양광업체에서 일하다가 크라 의원 보좌진에 합류한 인물이다. 2002년부터 독일에서 중국 정보기관 요원으로 근무하며 AfD 정치인, 독일 내 중국 반체제 인사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등 광범위한 정보활동을 벌였다고 발표됐다. 중국이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전방위적 스파이활동을 벌어온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므로 지안 궈의 적발 자체가 새로울 것은 없다. 지안 궈 최초 체포 소식이 나온 지도 한참 된다. 다만 민감한 시점의 구속기소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독일에선 내주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CDU) 대표가 이끄는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시점이다. 메르츠는 전임 정부보다 중국에 비판적인 정책을 택하겠다면서도 양국 이익이 겹치는 지점에선 협력을 모색할 입장을 드러내 왔다.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 공세에 미국과 거리가 생긴 마당에 중국과의 협력 여지를 넓히며 외교정책 재편에 나설 참인데 새 정부 출범 목전에 중국 스파이 구속기소라는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EU 또한 비슷한 딜레마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중국과 연대하지 못하도록 미국 측이 모종의 작용을 했을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대서양 동맹의 오랜 역사가 무색할 만큼 방위비 인상과 고율 관세에 더해 EU 주류의 좌경화까지 공격하는 트럼프 행정부를 맞아 EU도 중국과의 협력 범위를 늘리는 전략으로 기울기 시작한 상태였다. 유럽과 중국이 상호 제재로 걸었던 빗장을 빼며 화해를 도모하고 있었다. 유럽의회는 지난달 24일 유럽의회와 중국이 2021년 상호 부과했던 제재를 해제하는 논의가 최종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EU가 중국 신장 지역의 소수민족 인권침해를 문제 삼아 중국 당국자들을 제재하자 중국이 맞불 제재로 응수한 상황이 수습 국면이었던 것이다.
미국과의 관세전쟁 격화 속에 중국 역시 유럽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날 11일 방중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를 만나 중국과 EU가 미국의 괴롭힘에 함께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련의 상황으로 보아 미국의 대중견제에 대한 유럽 지원이 약화될 조짐으로 보였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향후 중국을 약화시키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에 조 바이든 전임 행정부 때만큼 부응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단언하기 어려워졌다.
라이프치히 공항에서 물류업체 직원으로 일하며 지안 궈에게 군수업체 무기수송과 화물·승객 정보를 넘긴 혐의로 중국 국적자 야치 X도 함께 기소됐다. 검찰 수사가 유럽의회 선거를 한 달여 앞둔 작년 4월 개시됐으며 당시 크라 의원의 중국·러시아 수뇌 여부도 내사에 들어갔다. 크라는 작년 6월 유럽의회 선거에 AfD 1순위 후보로 출마했으나 스파이 의혹에 더해 언론 인터뷰에서 나치 준군사조직인 친위대(SS)를 두둔한 발언을 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AfD는 크라 의원의 나치옹호 발언으로 유럽의회 선거를 보름 앞두고 프랑스 국민연합(RN) 주도의 유럽 정치그룹(교섭단체) ‘정체성과 민주주의’(ID)에서 퇴출됐으나 크라는 2월 독일 총선에서 당선돼 연방의회 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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