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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회가 민심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존재라는 사실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의원들은 주민의 크고 작은 민원을 듣고 행정의 사각지대를 살피며 지역 예산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를 감시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 지방의회를 보면 이런 본연의 역할은 뒷전이고 중앙 정치 흉내내기에 몰두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정쟁의 장’이라는 오명까지 뒤따르는 이유다.
최근 서울 중구의회는 의장 불신임 사태를 겪었다. 더불어민주당과 무소속 의원들이 국민의힘 소속 의장을 상대로 불신임안을 상정하고 통과시켰다. 공식적인 사유는 ‘행정사무조사특위 안건을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정당 간의 힘겨루기가 자리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중앙 정치의 탄핵 정국 여파가 지방의회에까지 내려온 모양새다.
이러한 정쟁 현상은 중구만의 일이 아니다. 전국 기초의회에서 의장단 선출을 둘러싼 파행, 상임위원회 자리 배분 갈등, 특정 정당의 독점적 의사진행 시도 등 중앙 정치와 닮은꼴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지방의회가 본연의 기능을 망각한 채 정치적 세 대결에만 몰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의원들이 누구를 위해 싸우고 있는가?” 중앙 정치가 국민 전체를 향한 것이라면 지방의회는 ‘나의 옆집, 우리 동네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쓰레기 문제부터 골목길 보행 안전, 아이들 돌봄 공백까지 지방의회가 다루는 이슈는 작지만 주민 삶에 직결되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회의는 정파 간 신경전으로 연기되고 행정사무 감사는 실속 없이 소모적 질의로 끝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지방의회가 정당 정치의 일부라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렵다. 각 의원들은 정당 소속으로 출마하고 중앙당의 정책 방향에 일정 부분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지방의회의 정체성은 ‘생활 정치’다. 이념과 당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생활이다. 정치적 존재이기 이전에 행정 감시자여야 하며 주민 민원의 해결사여야 한다.
지방자치 제도가 부활한 지 30년이 넘었다. 그동안 지방의회는 무용론과 필요론 사이를 오가며 비판과 기대를 동시에 받아 왔다. 그러나 최근처럼 ‘정쟁에 빠진 지방의회’라는 인식이 굳어지는 것은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주민의 대표가 아닌 정당의 대리인으로 보인다면 의회 존재의 정당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방의회가 다시 신뢰를 얻기 위해선 ‘중앙 정치 따라하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의장의 거취를 둘러싼 정치 게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민의 삶이고, 예산의 건전한 집행이며 정책의 실효성이다. 갈등보다 합의에 무게를 두고 정파보다 주민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이라도 지방의회는 자문해 봐야 한다. “나는 주민을 위해 일하고 있는가 아니면 정당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가.”
갈등을 만드는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타협과 조율을 통해 공동체의 삶을 개선하는 정치는 어렵다. 바로 그 점에서 지방의회는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시험장이 되어야 한다.
지금 지방의회가 싸워야 할 대상은 정치적 반대 세력이 아니라 주민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구조와 불합리함이다. 그래야만 지방의회가 진짜 ‘주민의 정치’로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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