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데일리,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기자수첩

[데일리 Talk] “유시민 작가님, 왜 과거로 사람을 평가하나요”

장혜원 정치사회부 차장대우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6-02 00:02:30

“어느 대학 나왔어?” “고향이 어디야?” “부모님은 어디 출신이고 뭐 해?” 여의도 정가를 취재하다 보면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초면부터 신상 정보를 낱낱이 보고해야 하는 ‘여의도 문법’이 있다. 평생을 여의도 바닥을 지켰다 자부하는 백발의 어르신들은 말끝마다 학력과 출신 지역을 앞세운다. 태어난 곳과 졸업한 학교를 평생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출신과 배경, 학벌이 삶의 경로를 정하던 조선시대의 계급제(양반·중인·상민·천민) 신분 질서가 여의도에서는 현재진행형이다. ‘자유’와 ‘개인의 권리’를 말하는 이들이 정작 사람을 만날 때는 가장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서열의 조건이 되는 신상정보를 캐묻고 자신과의 ‘연결고리’를 규정하고 양반과 상민을 구분한다. 부모의 인맥과 고향, 학벌로 짜인 이 ‘엘리트 클럽’은 진심으로 전(前)근대적 문답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결정판은 정치판을 스스로 갉아먹으며 전근대적 체제로 회귀시키는 ‘공천 학살’이다. 지역구를 성실하게 지킨 정치인을 하루아침에 내쫓고, ‘스펙 좋은’ 전략 공천자들로 갈아치우는 행태는 정치가 민심과 단절되었음을 증명한다. ‘엘리트 중심주의’라는 이름 아래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하며 국민과 현장을 철저히 분리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애국 정치 꿈나무들은 독재가 자행되는 정치판에 침을 뱉고 떠나고, 개혁을 바라는 유권자의 표는 사표가 되어 증발하기를 반복한다. 지역과 민중의 의사가 철저히 무시되는 가운데 정치인은 ‘스펙’과 ‘인맥’을 기준으로 교체 가능한 ‘상품’이 되었다.

이 같은 전근대적 체제를 깨부수겠다는 게 586세대 진보파의 목소리였다. 이 진영의 가장 큰 스피커는 누가 뭐래도 유시민 작가다. 그는 서울대 운동권 출신에 유학파이며 참여정부의 복지부 장관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다수의 인문학 베스트셀러를 집필한 전형적 ‘여의도 정치 엘리트’다.

그는 그동안 민주당계 유튜브 방송에서 ‘진보의 언어’를 구사해 왔다. “불평등은 민주주의의 적” “진보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낡은 기득권 체제에 과감히 도전해야 한다” “정치는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 등을 주장하며 기존의 정치·사회 구조를 혁신하려는 586 세대 진보주의의 정체성을 대변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유 작가의 민낯이 최근 드러났다. 최근 유 작가가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설난영 여사를 두고 한 말은 명백한 ‘서울대 출신 엘리트의 위선적 �未� 고백’이나 다름없다.

그는 최근 “(설난영 여사는) 유력 정당 대통령 후보 배우자라는 자리에 갈 수 없는 사람” “살면서 국회의원 사모님이 되고, 도지사 사모님이 되면서 남편을 더욱 우러러보게 됐을 것”이라며 지금은 “제정신이 아닐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유 작가는 설 여사가 ‘고졸 학력의 전자회사 직원’이자 ‘찐 노동자’인 반면 남편 김문수 후보는 ‘학출 노동자’, 즉 서울대 출신이라서 둘은 “균형이 맞지 않는” 관계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했다.

여성은 남성의 성공에 기대어 지위를 얻는 존재라는 봉건적 사고, 고졸과 대졸은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학력주의적 계급 의식, 노동자는 ‘지도�未脾� 혹은 ‘영부인 자리’에 오를 자격이 없다는 등의 주장을 통해 그는 여의도식 ‘엘리트 문법’을 기준으로 정치판을 보수·진보로 갈라쳤던 자신의 실체를 스스로 까발린 셈이다.

설난영 여사는 명문대 운동권 출신도 아니고 유명 정치인의 딸도 아니다. 설 여사는 ‘엘리트 문법’에는 어긋나는 스펙을 지녔으나 현장에서 싸운 ‘찐 노동자’로 세진전자 노조위원장이었고, 삶과 노동의 최전선에서 버텼던 여성이다. 그런 설 여사에게 “당신은 영부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단언하는 것, 그것이 노무현의 정신이며 나아가 진보의 정신이라는 말인가.

“왜 과거로 사람을 평가하는가.” 여의도 문법을 기준으로 설난영 여사를 평가한 유 작가에게 가장 먼저 묻고 싶다. 더 이상 출신과 대학이라는 ‘정해진 과거’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그가 꿈꾸던 ‘새로운 민주주의와 공정한 대한민국’이 아니었던가. 존중은 과거를 근거로 비롯되지 않는다. 지금 어떤 삶을 사는지가 곧 그 사람의 무게다.

민주화를 외쳤던 그들은 권력의 정점에서 그들만의 ‘엘리트 상아탑’에 철벽을 치며 노동자와 청년에게 “더 노력하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약자 편인 척, 노동자를 위하는 척하며 진보에 대한 희망 고문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게 ‘사다리를 걷어차며’ ‘껍질만 진보인 정치’의 민낯이다. 서민은 ‘개·가재·붕어 삼형제’로 살라던 여의도 엘리트 운동권 진영의 위선으로는 진정한 진보 정치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 될 것이다.

장혜원 정치사회부 차장대우 hyjang@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후원하기

정기 후원
일반 후원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스카이데일리는 온라인 판 스카이데일리닷컴과 32면 대판으로
매일 발행되는 일간종합신문 스카이데일리(조간)를 통해 독자 여러분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후원자 분들께는 지면광고를 하고자 하실 경우
특별 할인가격이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