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목의 CEO 전략] 힘 있으면 쉽게 분노해도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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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목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5-30 00:02:55

삼국지의 장비는 무술 실력은 출중하지만 화를 참지 못하고 쉽게 분노하는 ‘분노’의 아이콘이다. 고전 속의 ‘욱 캐릭터’ 정도로만 박제되어 있을 줄 알았던 그 장비가 현대 도시를 휘젓고 다닌다.

딸의 사생대회 출품작이 제대로 배송되지 않았다고 승용차를 몰고 가 편의점을 부순다거나 시의원이 자신의 지역구 행사에서 축사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담당 공무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 셀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격노하고 조바심을 일으키는 사람은 상대방이 쳐 놓은 올가미에 쉽게 빠지니 상대하기도 쉽고 희롱당하기 딱 좋다. 결국 삼국지 속의 장비는 화 때문에 부하들에 의해 허무하게 죽었다.

서민의 분노는 대개 당사자끼리의 피해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지도자급으로 가면 그가 가진 권력의 위상에 따라 피해 규모가 확대된다. 최근 우리가 겪은 ‘12.3 비상계엄’도 대통령이 화를 억누르지 못한 데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도자의 분노가 온 국민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런 지도자들의 ‘격분’은 지난 10여 년 동안 꾸준히 축적되어 왔다. 사흘이 멀다 하고 뉴스를 통해 최고 권력자들의 ‘격분’을 접해 왔다. 수시로 표출되는 격분은 대통령, 당대표, 국회의원 등 힘 좀 쓰는 권력자들의 대표적인 표징으로 자리 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국내뿐만 아닌 세계적인 추세인 것 같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격분 등 사례도 많다. 그런데 권력자들은 이렇게 쉽게 ‘격분’을 남발해도 되는 걸까. 힘이 있으니까 그래도 되는 걸까.

손자병법은 유독 ‘분노’에 대해 많이 다룬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고 그 감정 중 가장 자제하기 힘든 것이 아마도 분노이기 때문일 것이다. ‘노이요지(怒而橈之)’는 그런 인간심리를 역이용하는 승리 전술이다. ‘상대를 성나게 하여 소란을 일으키도록 만드는’ 일종의 격장술(激將術)이다. 상대의 조급한 성격, 강한 자존심 등 특성에 맞추어 고의로 도발·자극·유인함으로써 평정심을 잃게 하는 것이다.

웹툰이나 드라마 같은 데나 있을 법한 스토리 같지만 실제다. 최근 트럼프 미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윽박지르고 망신을 준 것이나,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을 ‘백인 농부 학살 의혹’과 관련된 영상으로 당황하게 한 사례가 그것이다.

회사에서 분노는 어떤 의미일까. 직장에서 발생되는 대부분의 분노는 신분에 기반한 갑의 분노다. 지위의 우월성에 기반한 감정 노출이다. 감정을 제어하지 않고 수시로 선을 넘는 우월적 분노나 폭언 등 권위적인 계급문화 기반의 분노다. 한마디로 갑의 신분에 도취한 분노일 가능성이 크다.

최고 책임자가 화를 내면 조직은 급격히 긴장한다. 약간 싫은 표정을 보이는 것조차 ‘갑질 분노’로 오인된다. 이에 반해 을인 직원은 비교적 잘 순응하고 인내한다. 자기 수양이 잘 되어서라기보다는 참지 않으면 더 큰 위험이나 손실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방어적 감정 조절이다.

이렇게 억압된 을의 감정은 쉽게 나사가 풀린다. 을의 지위에 있는 동안은 잘 견디다가 갑으로 전환하는 순간 인내의 브레이크가 풀리면서 화가 터지는 경우다. 직원일 때는 순한 양처럼 잘 지내다가 팀장으로 승진 후에는 잘 분노하고 갑질하는 상사의 경우다. 사장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는 잘 참아 내다가 가정에서는 입을 꾹 닫고 괜스레 식구들에게 짜증을 내는 경우가 그렇다.

인간이 화를 내지 않고 살아가기는 힘들다. 관건은 화를 내는 ‘속도’다. 손자병법에서 ‘쉽게 화를 내면 치욕을 당할 수 있다’는 뜻의 분속가모(忿速可侮)를 언급한 것도 분노의 속도를 경계하는 말이다. 성경에도 ‘화내기를 더디 하라’는 구절이 수차례 나온다. 최근 역사만 봐도 분노를 삭이지 못해 죽거나 감옥가거나 수치를 당한 최고 권력자가 한둘이 아닌데 역사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고 있다. 이번에 등장하는 분은 그러지 않기를 기대한다.

최송목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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