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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정부는 ‘성장 절벽’ 국면에서 출발하게 될 전망이다. 내수 침체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미국의 관세 장벽이 현실화되며 수출과 내수 양방향에서 동시에 충격이 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채무가 빠르게 불어나는 등 재정 여건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도, 단기적으로는 경기 부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정책당국과 학계를 중심으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당선 즉시 내수 진작을 위한 추경 편성에 착수하겠다고 공언했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도 30조 원 규모의 추경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누가 당선되든 추경은 새로운 정부의 핵심 재정 과제로 떠오른 셈이다. 예산 당국 역시 6·3 대선 이후 즉시 2차 추경 편성 작업에 돌입할 태세다.
불과 한 달 전 통과된 13조 8천억 원 규모의 1차 추경은 산불 피해 복구와 인공지능·통상 대응, 민생 지원에 초점을 맞춘 ‘응급 대응’ 성격이었다. 반면 차기 정부가 추진할 2차 추경은 내수 부양 효과에 초점을 맞춘 본격적인 경기 대응 예산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통계청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4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산업생산, 소비, 투자 전 부문에서 부진이 심화됐다. 특히 산업생산은 미국의 품목별 관세가 먼저 적용된 자동차 부문을 중심으로 마이너스로 전환됐고, 내수 지표들도 회복 조짐 없이 하락세를 이어갔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기존 25%였던 관세를 50%로 인상할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관세 충격은 향후 더 커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내수는 그 자체로도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민간소비의 위축은 각종 사회적 요인과 복합적으로 연결돼 있다. 외식업과 자영업은 배달 플랫폼의 수수료 문제와 극심한 정치 불안, 도심 시위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 등으로 고통받고 있고, 저출산과 고령화, 가계부채와 사교육비 증가 역시 내수 침체의 구조적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올해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0%대에 머무를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 모두 올해 성장률을 0.8%로 하향 조정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과 같은 수준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추가 재정 투입 외엔 방법이 없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통화정책은 상당히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가야 하는 상황이기에 재정밖에 기댈 곳이 없다”며 “재정건전성이 중요하지만, 지금은 좌고우면할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한 뒤 “당초 예상보다 성장세가 크게 약화했다”며 “향후 기준금리 인하 폭이 조금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서울 지역 부동산 가격 상승과 가계부채 급증 가능성 등을 우려하며, 통화정책의 부작용을 경계하는 태도도 함께 보였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작년이나 올해 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고려하지 못한 새로운 변수들이 발생했기 때문에 추경이 필요하다”며 “0%대 성장률이 예상되는 상황이라면 재정 건전성보다 경기 부양이 더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평가했다.
추경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총액보다는 세부 사업 구성이 핵심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예산이 투입되는 분야에 따라 경기 파급 효과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장 전문가들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사회간접자본(SOC) 및 건설업, 그리고 관세 전쟁에 타격을 입은 수출 산업을 중심으로 선별적이고 집중적인 재정 투입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안동현 교수는 “미국 관세로 수출 산업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내수 쪽에서는 허리까지 불이 붙어 있는 상황”이라며 “소상공인을 살리고 내수를 부양하는 것이 추경의 첫 번째 과제”라고 강조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현시점에서 침체가 가장 심한 부문은 지방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건설 부문”이라며 건설업 지원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와 함께 미국과의 통상 마찰 문제는 차기 정부가 직면할 가장 첨예한 외교·경제 과제 중 하나다. 1분기 마이너스 성장이 현실화된 원인을 두고 전문가들은 내수 부진보다는 미국발 관세정책에 따른 수출 위축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수출이 회복되지 않으면 저성장을 탈출하는 것도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4월 한미 재무·통상장관 간 ‘2+2 협의’에서 7월 8일까지 관세 유예 패키지를 만들기로 합의했지만, 실제로 협상이 일정대로 이뤄질지는 불확실하다. 미국 내에서도 관세 관련 행정부와 법원 간 해석 충돌이 이어지고 있어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결국 차기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 외교를 통해 관세 이슈에 대한 해결책을 이끌어낼 수 있느냐가 초기 국정의 성패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석병훈 교수는 “올해 성장률에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제일 큰 변수”라며 “그동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수혜를 봤던 업종들이 피해를 입으면서 자동차뿐 아니라 반도체, 철강, 의약품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도 “성장률에 가장 큰 영향은 트럼프 관세”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올릴지 내릴지 예측조차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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