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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최고지도자(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86) 암살에 대비해 후계자 후보 3명이 지명됐다는 소식이다. 2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가 익명의 이란 고위층 3명 말을 빌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하메네이는 죽음을 ‘순교’로 받아들으며 ‘국가지도자운영회의(전문가회의)’에 자신이 암살될 경우 이들 3명 중 1명을 신속히 후계자로 임명할 것을 지시했다. 평화시대라면 몇 달 걸릴 일이지만 전쟁 중인 특수 상황 아래 ‘질서 있는 빠른 승계’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NYT가 분석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이란 전문가인 발리 나스르 교수는 NYT에 “국가 보존이 (이란의) 최우선 과제”라며 “하메네이 36년 통치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직면했다”고 현 상황을 요약했다. 후계자 물망에 올랐던 하메네이의 아들 모즈타파가 이번 후보군에서 빠진 것은 세습 이미지와 표적 살해 우려 때문으로 추측된다. 한때 유력 후계자로 꼽히던 에브라힘 라이시(대통령)가 작년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사망한 것도 현 정권에겐 뼈아픈 대목이다.
하메네이는 지하 벙커에 은신 중이라고 전해졌다. 이란 군 최고 수뇌부와 핵과학자들 십 수명이 가공할 수준의 정확도로 콕콕 찍히듯 제거된 가운데 하메네이 암살 역시 시간 문제다. 며칠 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안다. 아직 손을 안 쓸 뿐”이라고 호언한 바 있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공습뿐 아니라 내부적 균열에도 맞서야 한다. 작년 하마스 지도부 표적 살해처럼 현지인, 심지어 조직 내부 첩보원의 협력 없인 불가능할 만한 일들을 이스라엘이 성공시켜 왔다.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에선 “적과 협력해 온 사람들”을 향해 “22일 자정까지 당국에 자수하고 무기 반납하라.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라”며 이후 이적 행위가 적발될 경우 사형에 처하겠다는 경고를 발했다. 또한 암살과 정보원 침투 가능성에 대한 공포가 심화된 군 지휘관·고위 공직자들에게 이란 정보부가 휴대전화와 기타 전자기기 사용을 중단한 채 지하 벙커에 머물도록 권고한 상태다.
이란 내에서 “민족주의 깃발 아래 결집 양상도 나타난다”고 NYT에서 지적했으나 대세로 보이진 않는다. 피난민들에게 무료 개방된 호텔·게스트하우스, 슈퍼마켓의 생활필수품 할인 판매, 빵집에서 ‘1인당 한 덩이’로 자발적 구입량 제한을 하는 장면 등 이란 국영 매체발(發) 영상을 인용할 뿐이다. 반면 현 체제와 정권을 향한 거침없는 분노의 표출이 전례 없던 일이고 의미심장하다. 현지에서 익명으로 BBC 인터뷰에 응한 이란 20대 청년 상당수가 하메네이 정권이 권력 유지를 위해 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몬다며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심지어 한 청년은 “이스라엘 100% 지지한다. 빨리 끝내줬으면 좋겠다. 우리를 혁명수비대, 하메네이 등 아야톨라들(종교지도자들)로부터 해방해주길 바란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들(하메네이 정권)이 우리를 거리에서 죽였다. 우리 삶을 짓밟아 온 자들이 벌벌 떠는 걸 보니 기쁘다”는 또 한 청년의 말엔 2022년 ‘히잡 시위’ 경험이 깔려 있다. 당시 수도인 테헤란을 방문한 20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 착용법을 문제 삼은 경찰에 체포돼 의문사한 후 전국적시위로 번졌고 진압 과정에서 사상자가 대량 발생했다. 그해 말 정부 공식발표상 약 200명 사망이었으나 이란휴먼라이츠 등 국제 인권 단체 집계로는 최소 551명이 죽었다.
13~15일 이스라엘 공습보다 오히려 더 놀라운 것은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구호 속에 술마시며 춤추는 사람들 영상이 유튜브·SNS에 유포된 일이다. “테헤란 일반 시민”임을 자처한 그들은 ‘민족의 적’ ‘매국노’로 몰린 처지를 호소하기도 한다. 17~18일엔 하메네이 풍자 동영상·밈이 펴졌으며 20일엔 하메네이의 과거 트윗(현 엑스) 발언을 소환해 놀리는 것들이 가세했다. 어린 시절 시아파 성직자 정복을 걸친 게 쑥스러워 일부러 “개구장이처럼 장난을 쳤다”고 회고한 대목을 꼬집어 “최고지도자는 장난꾸러기”라며 조롱하자 다수가 비슷한 패러디로 동조했다.
최고지도자 풍자 동영상의 확산 속에 이스라엘 공격을 환영하는 공개 표현까지 나오자 당국이 20일부터 인터넷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신정체제 이란에서 초헌법적 존재, 신의 대리인인 최고지도자가 공공연한 놀림감이 된 것은 1979년 혁명 이래 상상할 수 없었던 사태다. 무력 이외의 방식 중 가장 고강도의 체제 불신 및 저항의 표시로 볼 수 있다. 하메네이의 36년 통치가 종식되고 체제 전환으로 이어질지 세계의 눈길이 쏠린다.
1989년 국부 격인 루훌라 호메이니(1902~1989) 급사 후 하셰미 라프산자니 당시 국회의장은 생전의 호메이니가 사적으로 하메네이를 지지했다며 전문가회의에 적극 호소해 개헌까지 이끌어냈다. 헌법상 이슬람법 최고권위자인 마르자로 제한한 최고지도자 자격을 완화해 하메이니가 현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는 이슬람혁명을 이끈 호메이니에 비해 학문적 권위와 종교적 카리스마가 부족했으나 점차 혁명수비대·정보기관 장악, 사법부·언론 통제, 후원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권력 기반을 다져 1990년대 후반부터 절대권력자로 군림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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