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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나루히토 일왕 부부가 7박8일 몽골 국빈방문에 들어간 사실을 일본 매체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이날 오전 11시경 정부 전용기로 하네다를 출발해 5시간 비행 후 현지시각 오후 2시쯤 도착한 일왕의 행보는 재위 중 최초의 몽골인민공화국 공식 방문이다. 7박8일이라는 평균 이상의 긴 일정 역시 주목된다. 2019년 즉위 이래 2023년 인도네시아, 작년 영국에 이어 세 번째인 이번 해외 방문에 몇몇 중요한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패전 이후 일왕이란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만 기능하지만 외교 일정엔 감추어진 메시지와 국제정치가 있기 마련이다.
일왕 부부는 8일 환영식을 통해 오흐나 후렐수흐 대통령과 만나며 같은 날 오후엔 패전 후 구소련에 의해 몽골로 보내져 강제노동을 하다 숨진 일본인들 넋을 위로하기 위해 위령비를 찾을 예정이다. 또 방문 기간 중 현지 민속 축제인 ‘나담’ 개막식 참석, 희귀 말 보호 구역인 국립공원과 일본이 지원한 병원·학교 시찰도 중요하다. 1972년 수교 이래 일본은 1977년부터 2024년 기준 몽골에 3700억 엔(약 2조5600억 원) 규모의 공적개발원조(ODA)를 집행해 왔다. 대표적인 게 93% 일본 차관으로 건설돼 2021년 개항한 칭기스칸국제공항이며 인프라 사업 외 다양한 기업 및 민간 문화 교류가 활발하다.
중국·러시아 사이에 낀 내륙 국가 몽골은 수천년간 대륙의 ‘중원 질서’와 충돌을 반복해 왔다. 20세기 초와 냉전기 중국에 의한 내정 간섭과 문화 억압 경험이 보통 사람들 기억에 강렬히 남아 있으며 문화혁명기의 트라우마도 깊다. 1960년대 이후 소련 위성국가가 된 몽골은 중국과 동일 진영이면서도 적대적 관계였다. 1966년부터 국경 충돌이 있었고 중국 견제를 위한 소련의 전략 전진기지가 몽골이었던 것이다. 몽골 독립 자체를 부정하거나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는 인식에 강력 반발해 온 몽골로선 중국이 1순위 안보 위협이다.
공신력 높은 국제공화연구소(IRI) 2022년 조사에 따르면 몽골인 중 53%가 중국에 ‘부정적’ 내지 ‘매우 부정적’ 시각을 보였다. 1월 발표된 IRI 몽골 공공여론조사(민주주의 선호도, 중국관, 부패 인식 등) 최신 데이터에서 몽골 내 응답자의 68%가 민주주의를 ‘몽골에 가장 적합한 정치체제’로 답했으며, 2021년 집권(6년 단임)한 친중파 현 정부나 언론 불신 또한 높은 편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18~35세 1200명 대상의 작년 9~10월 조사에선 중국을 ‘주의해야 할 패권국’이라고 여기는 청년층 비율이 증가했고 ‘경제 파트너 중국’ 등 긍정적 시각은 절반가량이었다.
작년 ‘아시아 소사이어티’ 보고서에선 동북아시아(일본·한국·몽골·대만) 내 중국 호감도가 특히 낮았으며 몽골이 전 세계 통틀어 ‘중국에 가장 차가운 시각’을 가진 지역으로 나타났다. 이런 정서가 일본·유럽연합(EU)·미국과의 협력 강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몽골어 억제 등 중국의 억압적 내몽골자치구 언어정책(2020년) 이후 내·외몽골 간 민족적 유대감을 되새기는 움직임이 증가했으며 국제적 연대 시위도 있었다. 현재 중국 내 몽골 인구는 600만에 못 미치며(내몽골 인구 2400만의 17%), 독립국인 몽골(외몽골) 인구는 350만 여명에 불과하다.
이런 여론 동향이 몽골 정부가 다변 외교(제3이웃 정책) 전략에 나서게 함으로써 서방 세계와의 외교와 협력을 둘러싼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도 유리한 환경이 될 것으로 보인다. 몽골 내 뚜렷한 반중(反中)감정 속에서 일왕 부부 이미지가 일본의 소프트 파워로 기능할 수도 있다. 몽골의 현 정권이 중국 일대일로에 일부 참여 중이지만 일본은 일대일로를 대신할 파트너로 자신을 제시할 수 있다. 일본·몽골 간 샤머니즘과 불교의 세계관·자연관 유사성이나 ‘일본 선조 주류의 북방 기마민족설’ 등이 이미 상당한 공감대를 얻어 왔다.
한편 몽골 이외에 일왕의 국빈방문이 실현될 경우 가장 폭발적인 메지시를 가질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1992년 10월 일왕의 최초 중국 공식 방문이 양국 국교정상화 20주년을 기념한 역사적인 행사로 성사된 반면 한국 방문은 무산됐다. 2019년(만85세) 퇴위한 아키히토 일왕이 1990년 5월 노태우 대통령 국빈방문 시 환영 연회에서 한반도와의 깊은 문화적·혈연적 유대를 언급하며 “백제에서 건너온 왕인 박사 등을 통해 불교·한자 등 선진문물이 일본에 전해졌다. 우리 선조 중 한국과 깊은 인연을 가진 인물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이 발언은 호의적 반응이 대세였으나 이후 한국 사회에 반일 기조가 강해지면서 한·일 관계의 내적 균열이 가중됐다. 이른바 근대사 해석 논란의 본격 부상이었다.
아키히토 부부의 ‘부여 방문 희망’이 비공식적으로 흘러나오는 가운데 2001년 김대중정부 시절 일왕 방한 추진이 위안부 문제 등에 결국 가로막혔다. 이례적인 생전 퇴위를 감행한 아키히토 부부가 ‘민간인 신분으로 (충남) 부여를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측근에 밝혔다’ 등 양국 외교계 인사들 전언 등이 여전히 루머 취급 당하는 현실이다. 다만 2017년 9월20일 일본 수도권 사이타마현 히다카시 고마(高麗)신사를 개인 자격으로 방문한 사실은 한·일 매체 모두 보도했다. 과거사 문제가 시끄럽던 때라서 ‘개인적 행사’로 전해졌으나 아키히토의 지속적인 한반도 관심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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