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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택배근로자들의 과로사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었다. 택배업체 1위인 CJ대한통운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다보니 사고 발생 빈도가 유독 잦았고 그만큼 많은 눈총을 받아야 했다. 들끓던 여론은 박근희 CJ대한통운 대표가 직접 대국민 사과와 피해방지 대책을 발표하고 나서야 수그러들었다.
약 1달여가 흐른 현재 기자는 피해방지 대책의 효과가 있을지 새삼 궁금해졌다. 대책이 일선 현장에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근로자들이 피해방지 대책을 체감적으로 느끼고 있는지 등을 직접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내린 결정은 직접 택배 근로자가 돼 현장의 분위기와 근로자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었다.
일 평균 근로시간 10시간 안팎…하루 일당은 20~30만원
12월의 칼바람 추위를 꿇고 서울에 위치한 CJ대한통운 물류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각 지점으로 배송하기 위한 차량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도착 후 사무실을 방문해 표준일용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코로나 발열 체크를 진행했다. 얼마 안지나 센터 소장이 와서 각자 맡을 분류파트 및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안전모와 장갑을 지급했다.
택배기사들의 하루 일과는 크게 △상품 분류작업 △간선상하차 △배송 등 총 3가지 분야로 나뉜다. 먼저 택배기사들은 출근하자마자 첫 업무를 속칭 ‘까대기 작업’부터 시작한다. ‘까대기 작업’이란 분류 작업을 가리키는 업계 은어다. 분류 작업은 간선차를 통해 터미널(영업소)로 배송된 택배를 택배기사가 구역별로 나누고 자신의 택배 차량에 싣기까지의 과정이다.
분류 작업에는 하루 평균 약 7시간 가까이 소모된다. 전체 근무시간 중 약 40% 이상을 차지한다. 배송 업무까지 포함하면 택배기사 일평균 근로 시간은 자칫 10시간 안팎이다. 이렇게 하루 꼬박을 일하면 일당은 기사들마다 다른 부분이 있지만 대략 20~30만원 가량이다.
기자는 하차작업 현장에 투입됐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30분 정도 지나자 온 몸에는 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상·하차 작업은 통상 1대 화물차량에 2인 1조식으로 작업을 한다. 기자의 파트너였던 김인지(남·33) 씨는 한 달 가량의 경력 탓인지 한층 수월해 보였다. 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중에 단기알바 차원에서 택배현장에 나온다고 했다.
고달픈 일터 오명 쓴 택배현장, 실상은 여느 일터 다름없는 신성한 땀의현장
작업을 시작한 지 3시간이 경과한 오전 10시 기자는 쉬는 시간을 이용해 한 택배기사와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흡연장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심종석(가명·41) 씨는 이전까지 다른 직종을 하다가 약 두 달여 전부터 택배회사에 출근했고 아내와 두 명의 자녀들을 부양하고 있다고 전했다.
심 씨는 “예전 서울에서 웹개발과 관련된 업무를 했지만 개인사정으로 일을 그만두고 몇 달 정도 쉬다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 택배현장에 뛰어들었다”며 “보통 새벽 6시도 안돼서 일어나 분류 작업만 7시간 가까이 한다. 오후 1~2시가 조금 넘어서야 첫 배송작업에 나선다”고 말했다.
이어 “얼마 전 CJ대한통운 측이 택배기사 과로사 사망과 관련된 사과문을 통해 분류인력을 11월부터 현존보다 많은 인원을 투입하긴 했다”며 “택배 배송 업무는 현재 주6일제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분류인력이 완전히 충원되면 주5일제로 개선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고 덧붙였다.
심 씨는 “과로사 논란으로 인한 분류인원 충원 역시 중요하지만 사실 가장 먼저 개선돼야 하는 점은 기사들에 대한 인권 및 고객들의 태도이다”며 “가끔씩 배송 지연으로 일부 고객들에게 항의 전화나 문자가 오기도 해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택배기사 윤형선(가명) 씨는 약 2년여 넘게 택배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그 역시 아내와 중학교 1학년 자녀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한 집안의 가장이다. 윤 씨는 단순히 근로자의 업무부담 경감이 아니라 택배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위해 자동화 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윤 씨는 “11월부터 단계적으로 분류인력을 투입해 기사들의 업무 부담을 경감시킨다고 했지만 정작 효과적인 배송시간 단축을 위해 필요한 것은 자동화 설비 구축이다”며 “현재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택배기사의 작업시간 부담을 줄인다곤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선 시스템 자체가 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심 씨와 윤 씨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덧 예정된 근로시간인 오후 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장갑을 벗고 사무실로 가 하루 일당을 정산했다. 총 5시간 근무시간 중 휴식시장 30분을 제외한 4시간30분을 일하고 받은 돈은 3만9000원이었다. 일용직 단기알바 치곤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에서 나와 택배현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과로사’라는 대형 이슈로 택배현장에 대한 인식이 저하됐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에겐 소중한 일터 그 자체였다. 수년째 택배 일에 종사하는 이들을 봤을 때 단순히 주변에서 들은 최악의 일터라는 말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긴 하지만 택배현장은 세상 어느 일터보다 신성한 땀의 현장 그 자체라고 봐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이창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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