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난 5년 동안 국내 증시에 상장된 공기업들의 주가가 20% 넘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 공기업 8곳 가운데 주가가 오른 곳은 1곳에 불과했다. 이 기간 코스피가 18% 이상 상승한 것을 감안하면 낙제점에 가까운 성적표다. 이는 정부가 정치적 목적 달성에만 몰두해 공기업의 공익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로 풀이된다.
공기업 주가가 오랜 기간 바닥을 기면서 소액주주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증시 호황기에도 수익률은 높지 않았다. 시장경쟁을 전제로 한 상장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경영효율성을 높이고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상장 공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文정부 4년 9개월 간 외국인 공기업株 3.4조 순매도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증시에 상장한 공기업 8곳의 주가는 문정부 출범 전 마지막 거래일인 2017년 5월 8일부터 이달 3일까지 평균 20.95%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가 18.1% 오른 것과는 대조적이다. 주가하락으로 인해 시가총액 합계는 4년 9개월 새 55조원에서 36조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삼성SDI(40조원), 카카오(38조원)보다도 작은 규모로 이들 모두 합쳐도 시총 상위 10위 안에 들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기간 공기업 8곳 중 7곳의 주가가 대폭 하락했다. 특히 에너지 관련 기업들의 하락 폭이 컸다. 한때 ‘국민주’로 불리던 한국전력은 4만5800원에서 2만1100원으로 53.93% 떨어졌다. 시총 순위도 5위(29조원)에서 24위(14조원)로 밀려났다. 박근혜정부 시절 43.35% 상승했던 모습과는 달랐다. 지역난방공사도 7만800원에서 3만6200원으로 48.87% 급락했다. 발전·송전 설비 정비 전문회사인 한전KPS 역시 40.92%에 달하는 하락률을 보였다. 수소유통업으로 기대를 모았던 한국가스공사도 21.58% 떨어지며 2017년 5월 이전으로 역주행했다.
다른 기업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카지노·호텔 등을 운영하는 그랜드코리아레저(GKL)와 강원랜드의 주가는 각각 40.63%, 33.38% 내렸다. 코로나19 피해업종이긴 하나 2017년 고점을 찍은 이후 계속 하락곡선을 그렸다. IBK기업은행도 19.14% 하락했다. 수차례 유상증자를 실시하며 주가를 희석했다. 작년 연말 금리인상에 따른 긴축 우려로 다른 은행주들이 크게 올랐을 때도 기업은행만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상장 공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발전소 설계업체인 한전기술만 올랐다. 상승률은 213.98%에 달했다.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기조에 따라 친환경에너지로써 원자력이 부각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투자자 유형별로 살펴보면 외국인들이 공기업 주식을 팔아치웠다. 이들의 순매도 규모는 3조4415억원에 달했다. 기업은행과 한국가스공사를 제외한 나머지 6곳의 주식을 대거 팔았다. 기관들도 기업은행을 중심으로 6074억원을 순매도하며 주가하방을 키웠다. 반면 개인들은 3조8121억원을 순매수하며 공기업 주가 하락에 직격탄을 맞았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공기업 주가 하락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부와 KDB산업은행 등이 51.1%의 지분을 갖고 있는 한전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선심성 정책을 펴면서 한전에 비용 부담을 떠넘겼다. 전기요금은 2013년 11월 5.4% 오른 것을 끝으로 사실상 동결된 상태다. 현 정부 들어서는 2017년과 2019년에 각각 1.7%, 0.5% 떨어졌다. 전기 생산에 들어가는 연료비용(원자력·유연탄·무연탄·유류·액화천연가스)과는 상반된 흐름이었다.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연료비 단가는 2017년 5월부터 지난달까지 평균 64.69% 치솟았다.
비용부담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 박근혜정부 마지막해인 2016년 한전은 순이익 7조1483억원을 거뒀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집권 후에는 2017년에만 1조441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을 뿐, 2018년 1조1745억원, 2019년 2조263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2020년에는 2조원의 순이익을 올리며 3년 만에 플러스 성장했지만 지난해는 다시 4조4577억원(컨센서스 기준)의 손실을 기록할 전망이다.
다른 상장사도 비슷한 상황이다. 지역난방공사는 서민 물가 안정 등을 이유로 난방요금을 제대로 올리지 못한 탓에 문정부 집권 4년(2017~2020년) 간 평균 386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이는 2016년 순이익(1267억원)과 비교해 1653억원이 줄어들며 적자 전환했다. 한국가스공사도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 간 평균 1918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이 기간 비(非)에너지 기업인 강원랜드와 GKL의 순이익도 반토막 이하로 줄어들었다.
조세연 “효율성 제고하고 소액주주 권리 보호해야”
이러한 공기업의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선 그간 간과된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이 발간한 ‘해외 주요국의 상장 공기업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 핀란드, 노르웨이, 뉴질랜드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4개국은 상장 공기업의 운영목표로 수익성과 가치의 극대화를 제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공기업의 경우 상장 이후에는 주주에 대해 재무성과에 대한 책임성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또한 해당 국가들은 매년 공기업 연차보고서를 발행해 주가정보, 시장가치의 변동과 원인 등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상장 공기업은 유형분류와 관리방법에서 ‘상장’에 대해 차별화를 다루지 않고 다른 공공기관과 동일하게 관리되고 있다. 지배구조도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동일하게 운영되고 있다. 상업성을 기대하고 상장된 공기업의 운영 및 지배구조가 정부의 기능을 위탁수행하는 준정부기관과 동일한 수준이라는 얘기다.
조세연은 해당 보고서에서 상장 공기업의 지배구조와 관리에 대해 △경영자율성과 운영의 독립성 제고 △시장경쟁을 통한 효율성 제고 △소액주주 권리 보호 △정부 지배력 보호장치 다양화 △정부 관리 공기업 범위 확대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경선 조세연 선임연구위원은 “앞선 4개 국가의 공기업은 상장 이후 기본적으로 상법을 적용하고 있으며 정부의 역할은 주주로서의 권리행사에 제한된다”며 “이사 선임과 관련해 정부의 영향력이 대폭 감소되고 독립성이 향상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외국의 상장 공기업은 경쟁시장에서 민간기업과 동등하게 경쟁을 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며 “특히 독점 산업의 경우 공기업을 상장시키기 이전에 시장의 진입규제나 경쟁규제와 관련된 법이나 제도를 보완해 경쟁이 충분히 도입되도록 하는 것이 상장의 전제조건으로 돼 있다”고 설명했다.
OECD나 세계은행의 공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상장 공기업의 경우 소액주주에 대한 보호가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고, 대주주인 정부의 경영권과 더불어 소액주주의 권리도 균형 있게 보호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공익성보다는 수익성에 더 관심을 가진 수많은 소액주주의 등장은 상장 공기업의 운영목표와 성과지표, 정부의 상장 공기업 관리 방식이 이전과는 달라져야 한다는 의미다.
한편 상장 공기업의 올해 주가 전망도 그리 밝지 만은 않다. 증권업계는 올해 들어 공기업 7곳의 리포트를 발간했는데 이 중 3곳의 목표주가를 낮췄다. 해당 기업은 한전, 강원랜드, GKL 등이다. 특히 한전은 작년 말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 폭이 너무 낮아 수익성을 회복하는데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메리츠증권·하나금융투자·NH투자증권 등 3개 증권사가 제시한 한전의 올해 영업손실 전망치는 평균 10조4000억원에 이른다.
메리츠증권은 한전의 목표주가를 기존 2만6000원에서 2만3000원으로 11.5% 하향 조정하고 투자의견 중립(Hold)을 유지했다. 문경원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올해 역대 최고 폭의 요금 인상이 이뤄지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요금 인상이 시작되는 올해 2분기 전까지는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하고 요금 인상보다 원가 상승이 더 크다”며 “손익분기점(BEP) 달성을 위해서는 1킬로와트시(kWh) 당 26원 이상을 인상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유재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도 투자의견 ‘중립’을 제시하며 “원유, 석탄, 해외 LNG가격, 환율 상승으로 전력구매비용(SMP)이 높은 수준으로 형성돼 연료비와 구입전력비 증가가 불가피하다”면서 “원자력 이용률은 작년 12월부터 높은 수준이 유지되고 있어 긍정적이나 원가 부담을 해소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원자재 가격 하락과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이 없을 경우 내년 4분기까지 적자가 지속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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