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성탄절 특사로 사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전국민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당초 2월 초 병원에서 퇴원할 예정이었지만 대선 전후로 늦춰지면서 박 전 대통령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나아가 문재인정부 실정이 이어지면서 과거를 그리워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기존 전통적 지지층은 물론 중도층 사이에서도 “꽃이 지고서야 봄인 줄 알았다”는 여론이 형성된다.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건 전말은 어떠했는지,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등에도 새삼 시선이 쏠린다. 스카이데일리는 대다수 국민들은 몰랐던 박 전 대통령 탄핵 배경, 정치적‧법적 문제점을 정리하고 탄핵심판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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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은 올해 2월2일 70세 생일을 두 달여 앞둔 지난해 12월31일 0시 성탄절 특별사면으로 영어(囹圄)의 몸에서 풀려났다. 2017년 3월 31일 구속 이후 1736일 만의 일이었다. 옥중에서 펴낸 책에서 그가 가장 앞세운 두 개의 단어는 ‘거짓과 선동’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소위 국정농단 사태 때부터 자신을 둘러싼 수사와 재판을 ‘정치탄압’이라 규정한 뒤 단 한 차례도 태도를 바꾼 적이 없다. 탄핵국면 당시 1000만으로 일컬어진 군중이 집결했던 촛불집회는 마녀사냥의 형태로 변질되어 갔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결집된 국민여론에 국회는 결국 떠밀리듯 탄핵소추안을 상정한 후 가결했고, 헌법재판소의 파면결정으로까지 이어졌다. 박 전 대통령이 석방된 지금 ‘탄핵 과정에서 진실은 과연 존재했을까’라는 의문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국민의 손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끌어내리는 과정에서 횡행했던 ‘정치적 마타도어’의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진다.
‘선거의 여왕’에서 ‘몰락한 신화’가 된 박근혜
‘민주화 이후 대선 최다 득표율(51.55%)’과 ‘최저 지지율(5%·2016년 12월 기준)’의 타이틀을 동시에 가진 박 전 대통령은 한 때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 역풍으로 지지율이 10%대까지 곤두박질 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을 ‘천막당사’를 통해 17대 총선 121석 확보를 이끌어내면서 기사회생시켰다.
2006년 지방선거 기간에 불거진 ‘면도칼 테러 사건’에서도 박 전 대통령은 “대전은요” 발언으로 한나라당 압승을 이끌었다. 이명박정부에서 공천 배제된 친박계 의원 18명의 정치생명을 연장한 것도 박 전 대통령이었다. 대구경북(TK)·부산울산경남(PK) 등 영남 지지층 표심을 끌어모으며 최다 득표율로 2013년 18대 대통령에 취임한 박 전 대통령은 ‘헌정 이래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란 역사를 새로 썼다. ‘선거의 여왕’은 국민 과반의 지지 속에서 그렇게 ‘신화’가 됐다.
국정 4년 간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동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 해산 △2015년 8월 4일 북한 비무장지대(DMZ) 지뢰도발 사건 △동년 12월 18일 한일 위안부 협상문제 타결 △2016년 2월 10일 개성공단 운영 중단 △동년 7월 8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 등의 대내외적 굵직한 현안들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야당의 반발이 이어졌지만 국민은 박 전 대통령 결정을 지지했다. 한국갤럽 조사 국정수행 평가에서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9월 2주차 67%, 2014년 8월 1주차 61%, 2015년 9월 1주차 54%, 2016년 4월 1주차 43%를 기록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컸기에 2016년 9월20일 언론의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최순실 개입 의혹’ 보도와 여기에서 파생된 ‘최순실 국정농단’ 논란은 유권자들에게 큰 충격을 던졌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을 중심으로 한 관계자들의 구속과 기소,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등 앞에 의혹은 점차 진실로 기정사실화됐으며 박 전 대통령 지지율은 순식간에 한자릿수로 곤두박칠졌다. ‘선거의 여왕’은 ‘몰락한 신화’로 전락했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관 8명은 90여일간의 탄핵심판 끝에 만장일치로 박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이들은 졸속재판이라는 비판 속에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과 국정을 공유하고 직권남용 등 각종 범죄를 저질렀다며 대통령직을 더 이상 맡겨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헌재 결정에는 각종 혐의가 무차별 적용됐다. △국민주권과 법치주의 위반 △공무원 임면권 등 대통령 권한 남용 △언론자유 침해 △세월호 참사 당시 대처 미흡으로 인한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뇌물수수 혐의 등 다섯 가지가 그것이었다.
결국 2017년 3월 31일 박 전 대통령은 파면 후 구속수감됐다. 당국은 국정농단 사태에 500여명이 넘는 검찰과 특검을 투입해 104명을 재판에 넘기는 초유의 수사를 벌였다. 박 전 대통령의 의지는 굳건했다.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이라는 게 그의 굳은 소신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재판 거부를 선언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20년 4·15총선을 42일 앞둔 3월4일 옥중에서 “기존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쳐야 한다”며 진상규명을 호소했다. 여권은 이마저도 ‘옥중정치’ 프레임을 씌우며 수감 중인 박 전 대통령 입에 재갈을 물리려 했다는 비판을 샀다.
허위사실 유포와 군중심리의 합작품 ‘탄핵집회’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헌재의 탄핵 인용 중심에는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1000만 군중이 집결했다는 ‘박근혜 탄핵 찬성 촛불집회’가 있었다. 2016년 10월 24일 JTBC 뉴스룸의 이른바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를 시작으로 최순실게이트 서막이 열렸고, 이는 동월 29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1차 촛불집회로 이어졌다. 회를 거듭할수록 참가자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동년 12월3일에는 주최 측 집계 기준으로 전국에서 232만명이 촛불을 들며 역대 최대규모의 시위로 발전했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비상국민행동)에 의하면 2017년 4월 29일 23번째 집회까지 참가한 연인원은 1685만명이었다. 2017년 5월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조사에 의하면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거주자 5명 중 1명(19.6%) 꼴로 촛불시위에 참여할 정도였다.
2016년 12월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국회의 탄핵소추안 표결 당일 전 국민의 81%가 탄핵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박 전 대통령 지지율은 5%까지 내려갔다. 여론에 떠밀린 박 전 대통령은 3차 담화를 발표하는 등 필사적인 진화에 나섰지만 국회는 2016년 12월 9일 찬성 234표로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이지호 서강대 교수가 2016년 12월 실시된 ‘전국민 의식자료조사’를 분석한 후 이듬해 발표한 논문 ‘박근혜 촛불, 누가 왜 참여했나 : 참여행동 모형과 참여태도 모형의 비교’에 의하면 집회 참여자들은 ‘보수정권에 대한 불신과 정치참여를 통한 개혁에 긍정적’이란 공통분모를 가졌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반감, 사회적 양극화에 분노하던 이들의 ‘반감과 분노’의 군중심리를 이용한 건 당시 야당이었던 현 집권여당이었다. 이 과정에서 미확인 의혹들까지 무차별 제기되는 등 ‘정치적 권모술수’가 난무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근거 없는 괴소문은 청와대의 공식 반박에도 불구하고 연기처럼 퍼져나갔다. 대표적 사례가 △세월호 사고 당일 7시간 동안 서울시내 모 호텔 VVIP룸에서 받았다는 성형시술 △세월호 사건 당일 청와대에서 무당을 불러 했다는 인신공양 △박 전 대통령과 최태민 목사 간에 출생한 숨겨둔 친딸이었다는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 △최 씨 단골 병원을 찾아 주기적으로 맞았다는 비타민(태반·백옥·마늘)과 미용주사(필러·보톡스) △은밀한 행위를 위해 대량 구매했다는 초호화 침대 등이다. 해당 의혹들은 소위 ‘목격담’을 근거로 기정사실인양 퍼져나갔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는 탄핵으로부터 약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단 한 건도 공개된 바 없다.
진상 규명에 있어서 마타도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군중은 당시 분위기에 무기력하게 휩쓸렸다는 평가다. 경기 일산에 거주하는 A씨(32·여)는 촛불집회 참여 이유에 대해 “모두가 함께 하는 분위기여서 친구들과 다 함께 했었는데 문재인 정권 탄생으로 이어질지 몰랐다”며 “5년이 지난 지금 앞서 참여했던 탄핵집회의 여파를 여실히 깨닫고 있는 중”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 강동구에 거주 중인 B씨(47·남)는 “박근혜 정권에 분노했고 탄핵에 찬성했다”면서도 “모두가 나가는 분위기에 동조해 나간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많은 전문가도 ‘선동’에 의한 탄핵이었음을 인정한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일부세력들의 선전선동으로 박근혜 정권이 정치적으로 완패한 것”이라 규정했다. 구체적으로 “민노총·운동권 사회단체 등이 합세하면서 막강한 파괴력을 갖게 된다. 이게 탄핵사태 때 극대화 된 것”이라며 “정권교체가 이뤄질 경우 이 같은 ‘총공세’가 다시 일어날 우려가 있다. 선진화되고 성숙한 국민의식만이 이를 방지하고 견뎌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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