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대선이 1주일 앞으로 임박한 가운데 선거 최후 보루로 알려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여권 편향성 논란에 휩싸였다. 선관위의 대통령선거 현수막과 캠페인 문구에 대한 이중잣대가 도마에 오른 것이다. 현 정권 들어 ‘공정과 중립을 상실했다’며 사실상 정권의 수하(手下)로 전락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중앙선관위의 문재인 정부 5년 행적을 따져봤다.
지난 2월 중순, 지난해 4·7 재보궐선거 때 투표 독려 현수막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및 ‘위선‧무능’ 등 문구가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유추할 수 있다면서 ‘사용 불가 결정’을 내린 선관위가 이번 대선 현수막·피켓에 ‘신천지 비호세력’이나 ‘술과 주술에 빠진 대통령’ 등의 문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공정성’ 시비가 불거졌다.
선관위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암시하는 주술문구인 ‘살아 있는 소의 가죽을 벗기는 세력’이나 ‘청와대 굿당’ 등의 표현도 쓸 수 있다고 허용했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같은 문구는 민주당이 사용 가능 여부를 문의한 것으로, 선관위의 '현수막 운용 기준은 정당의 명칭이나 후보자의 이름을 특정할 수 있는 문구는 금지한다'는 내용에 반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여당인 민주당이 대선 국면에서 끊임없이 제기해 온 ‘주술 논란’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문구를 뜻한다. 민주당이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와 배우자 김건희씨를 겨냥해 만든 이같은 문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중앙선관위가 허용한 것은 선관위의 중립성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단초가 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난 2월19일 광주 서구 금호동 한 아파트 단지에 부착된 선거 벽보에서 기호 2번 윤 후보가 빠져있다는 신고를 국민의힘 광주시당 등이 접수받아 부랴부랴 재부착에 나서는 해프닝까지 일어나며 지역갈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야당 후보 ‘특정’은 ‘표현의자유’… 여권 후보는 ‘칼날 기준’
야권 일각에서는 “이 같은 현수막 사용 행위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제한하는 공직선거법 제90조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후보자에 대한 허위사실 공표 및 비방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제110조에도 위반되는 행위”라는 주장을 펼쳤다.
공직선거법 제 90조 3항은 ‘후보자를 상징하는 인형·마스코트 등 상징물을 제작·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고, 110조는 사실이 아닐 경우 ‘후보자와 후보자의 배우자 등에 대한 허위의 사실을 공표할 수 없으며,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생활을 비방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선관위는 해당 법 제90조를 근거로 국민의힘의 당시 이른바 ‘대장동 개발사업 비리 의혹’과 관련한 당 현수막 시안 “진짜 몸통은 설계한 이다”와 관련해 ‘선거법에 저촉된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이’를 빨간색으로 쓴 것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특정’ 할 수 있어 불허로 판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다만 선관위는 ‘특검 거부하는 이가 범인입니다’라고 적힌 피켓 시안은 법 위반이 아니라는 엇갈린 판단을 내렸다. 이 피켓 시안은 ‘특검’은 빨간색, ‘거부’·‘이’·‘범인’은 파란색, 나머지는 검은색이다.
당시 임승호 국민의힘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선관위는 최근 선거 때 마다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반복하며 중립성 시비를 스스로 일으켜왔다”며 “색깔의 종류에 따라 특정 후보를 지목하는지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선관위의 ‘기적의 논리’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고 비꼬았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용 현수막’은 해당 지역구 내 동 수의 2배까지 게시할 수 있다. 현행법상 현수막은 후보자만 걸 수 있도록 명시돼 있다. 일례로 서울의 경우 424개 동에 최대 848개의 선거운동 현수막만 걸 수 있다. 엄격하게 관리되는 현수막 운용에 대한 ‘잣대’가 이번 대선에는 기준도 없이 달라질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현수막 논란에 대해 국민의힘은 노골적인 불쾌함을 드러냈다. 권영세 국민의힘 선대본부장은 2월21일 선대본 회의에서 “우리 후보를 음해하기 위해 신천지 같은 유언비어를 쓴 걸 (선관위는)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고 한다”며 “한마디로 선택적인, 편파적인 자유 보장이며 노골적인 편들기”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권 본부장은 “실력이 부족해 반칙만 일삼는 선수를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나는데 심판까지 편파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해당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하자 선관위는 “이번 선거부터는 표현의 자유를 더 폭넓게 보장하려는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강호성 중앙선관위 언론팀장은 “후보자가 특정되는 표현을 제외하고 유권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문구를) 폭넓게 허용하는 것”이라는 다소 모호한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부정선거 금지 위해 설립 된 선관위, 현 정권서 부정의 온상 돼’
중앙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다. 헌법재판소, 정부, 국회, 법원과 같은 지위를 갖는 합의제 헌법기관으로 각종 선거 관련 업무를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 1962년 5차개헌 때 생긴 선관위는 고(故)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하야를 이끈 ‘3·15 부정선거와 4·19 시민운동’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정치인의 선거개입을 막고 최대한 공정한 선거를 통한 대의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위해 만든 기관이 바로 ‘선관위’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권 들어 공정성 논란에 끊임없이 휘말려 왔다.
일단 ‘선관위원’에 대한 공정성 시비도 도마 위에 올랐다. 선관위 상임위원은 9명의 중앙선관위원 가운데 유일한 상근직으로 선관위원장의 지휘 아래 선관위의 선거관리와 인사를 감독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선관위는 헌법 규정에 따라 9명의 선관위원으로 구성된다. 대통령이 3명을 임명하고, 국회가 3명을 선출하고, 대법원장이 3명을 지명한다. 중립성 훼손을 막기 위해 입법·사법·행정부가 나눠서 추천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라는 엄격한 과정을 거친다.
중앙선관위원 가운데 상임위원은 위원장 다음으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핵심 요직이다. 선관위 상임위원은 장관급 대우를 받으며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다.정치적 중립과 공정성이 가장 중요한 직책인 만큼 국회 행정 안전위원회의 청문회를 거치게 돼 있다. 정치적 중립성이 핵심 검증 대상이다. 비상임 위원의 임기는 6년이지만, 유일한 상근직인 상임위원의 임기는 3년이다. 권한이 큰 만큼 임기가 짧다. 선관위 중립 유지를 위해 상임위원의 임기를 비상임 위원의 절반인 3년으로 정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12월 조해주 국민대 정치대학원 겸임교수를 선관위원 후보로 내정했다. 야당은 2017년 대선 당시 조 겸임교수가 문재인 후보 선거 캠프의 특보로 임명된 과정을 문제삼은 바 있다.
조 전 상임위원의 사임 과정에서도 잡음이 상당했다.
친정부 인사 체제가 명확한 상황에서 대선을 치르게 되자, 직원들이 직접 나섰다.
중앙선관위 1~9급 직원 전원과 17개 시도 선관위 대표단이 한 목소리로 그의 사퇴를 외쳤다. 선관위 설립 후 60년 이래 초유의 집단행동이었다. 조 위원은 결국 ‘선관위가 짊어질 편향성 시비와 후배들의 아픔을 더는 외면할 수 없어 완벽히 선관위를 떠난다’는 고백과 함께 직을 내려놨다.
3년 임기를 마친 조 전 상임위원은 관례상 선관위를 떠나야 하므로 사표를 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상임위원 사표를 반려하면서도 추가로 비상임위원 자리를 다시 제안하게 된다.
조 전 상임위원을 문 대통령이 갈이타기식으로 ‘연임’ 시키려 했던 것도 문제지만, 지금도 공정성 시비가 붙은 친여 인사가 여전히 선관위에 포진해 있는 것이 더욱 문제다.
지난 1월24일 임기가 만료된 조 전 상임위원 체제가 마감되니 이번에는 ‘우리법 연구회’가 등판하게 된다. 법조계에 의하면 인권법 판사들이 주축으로 돼 있는 우리법 연구회는 ‘진보적 세계관’을 재판에 적극적으로 반영, 편파성과 정치성 논란에 휩싸이곤 했다.
우리법연구회 출신 노정희 대법관이 선관위 위원장을 역임하며, 선관위 대표 역할을 하고 있다. 노정희 중앙선관위원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법원에서 선거법 무죄 판결을 받았던 재판의 주심이었다.
3월1일 기준 선관위 위원 9명 가운데 7명이 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 민주당이 임명한 친여인사로 꾸려졌다. 지난해 1월 민주당 추천으로 선출된 조성대 위원도 과거 대선과 서울시장 보궐 선거 당시 민주당 후보를 공개 지지한 이력이 드러나 노골적 친여성향이냐는 야권 반발을 샀다. 선관위원중 비여권 인사는 지난해 1월 여야 합의로 선출된 중립 성향 조병현 위원 1명뿐이다.
결국 이번 대선은 친여 성향 선관위원 8명(위원장 포함)과 중립 1명 체제로 치러지게 됐다. △문 대통령 임명 2명△김명수 대법원장 지명 3명△여당 더불어민주당 추천 1명 등 6명이 친여성향인 셈이다. 일각에선 위원회 친여 인사가 대선 뿐만 아니라 오는 6월 지방선거에 이어 2024년 4월 총선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 관측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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