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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중국과의 국경까지 봉쇄하는 등 방역에 주력하며 '전염병 청정지대'임을 강조해오던 북한에서 최근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확진자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약 1000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마저 나온 상태다. 코로나 사태 발발 이후 지난 3년간 단 한 명의 확진자도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다고 자부해온 북한에서 전 인구(2578만)의 40%에 가까운 인구가 확진 의혹에 시달리는 셈이다.
확실한 것은 그 누구도 통제된 사회인 북한의 코로나 전망과 발표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나마 확진 이후 사망률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은 백신뿐이다.
북한에 희소식은 첨예한 대북제재의 망을 뚫고 국제사회와 더불어 윤석열정부가 북한 주민에게 코로나19 백신을 비롯한 의약품을 지원키로 방침을 정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지원 방안이 녹록지는 않아보인다. 전술화한 소형 핵미사일을 중심으로 7차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는 북한이 올해 들어 군사 도발을 더욱 심화하면서 대북제재의 강도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비상방역사령부를 인용해 28일 오후 6시부터 24시간 동안 전국적으로 10만710명의 발열 환자가 새로 발생했다고 밝혔다. 신규 사망자는 1명 발생해 누적 사망자는 70명, 치명률은 0.002%로 집계됐다고 북한은 밝혔다. 치명률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을 제기하는 시각이 많다. 백신이 전혀 보급되지 않은 상황에서 도저히 그토록 낮은 치명률이 나오기는 어렵다는 것이 이유다.
북한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진 것은 지난달 12일부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국가비상방역사령부를 방문하는 자리에서 처음으로 마스크를 착용한 채 관영매체에 모습을 드러내 대내외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김 위원장은 발열자의 확산이 ‘방역체제에 허점’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보건 관계자들을 강하게 질책하기도 했다.
북한당국은 ‘최대비상방역체제’를 선포하고 ‘사업, 생산, 거주 단위별 격폐 조처를 하는’ 전국적인 봉쇄명령을 내렸다. 지난달 8일 평양의 한 단체에서 발열 증상자가 나타나 검사해본 결과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BA2가 검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도 검사 장비가 부족하고 일일이 보고하지 않는 북한 사정을 고려하면 실제 감염자와 사망자 수가 훨씬 많을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전문가 ‘오미크론 변이 대유행’ 北당국 발표 신빙성 없어
전문가들은 북한의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정확한 정보에 회의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방적인 친정권 성향의 관영매체 발표에만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전문가들은 북한의 코로나19 확진자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약 1000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내놓았다.
26일 고려대의료원이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개최한 ‘북한의 코로나19 상황과 향후 국내외 관계전망’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는 다수의 북한 의료 전문가들이 참여해 북한 코로나19와 관련한 전망, 분석, 흐름을 총체적으로 짚어낸바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북한의 코로19 사태가 알려진 바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며, 사망률·치명률·확진자 수 모두가 신빙성이 없다’라는 공감대의 목소리를 냈다. 김신곤 통일보건의료학회 이사장 겸 고려대 의대 교수는 북한의 공식발표에 따른 현재의 유행 상황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김 이사장은 “북한은 4월 말 공식적으로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인정했으며 이달 8일 발열자 40만명으로 정점에 이르렀다”며 “5월23일 기준 13만명 수준으로 유행이 꺾인 상황으로 유행 시작점이었던 평양은 유행이 누그러지고 평남, 황남 등 인접 지역으로 퍼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김 이사장은 “국내에서 오미크론 변이 유증상자 중 발열 환자가 30%인 것에 비춰보면 북한의 실제 감염자는 발표된 발열자보다 4~5배 많을 것”이라며 “발열자 대부분이 코로나19 감염이라면 예상 유행 규모는 2주일 안에 300여만 명, 한 달 내에는 전 인구가 감염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앞서 북한은 2020년 1월 말쯤 중국과의 국경을 봉쇄했으며, 같은 해 10월 북·중 교역 차단을 본격화했는데 햇수로 약 3년 만에 첫 코로나19 사태 소식을 전했다. 코로나19 사태가 결국 예방이 어려운 ‘한계상황’에 임박한 것이라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2020년 말쯤부터 복수의 북한 전문 매체는 북한에 코로나 19 의심환자가 급격하게 늘고 있고, 연일 비상이라는 소식통 인용 보도를 해왔다.
일례로 지난해 9월에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에 익명의 강원도 군 소식통은 북한군 2군단 지휘부 산하 전염병 임시병동에서 7~8월 총 45명의 군인이 무리로 죽어나갔다는 실상을 전했다. 종합 집계에서 전군 사망자 수가 예상보다 많아 군 당국이 충격에 빠졌다는 후문까지 전해지고 있다.
같은해 11월에 북한 내 고위 소식통은 평안남도, 황해도 등 지역별로 설치된 국가 격리시설에 수용된 코로나19 의심 증상자는 10만4000여명이라고 했다. 북한은 이 와중에도 ‘코로나청정국’임을 강조해왔다.
북한은 핵 프로그램 재개와 신형 미사일 역량을 강화하는 행보도 이어가고 있다. 북한은 올해 들어 지난달 25일까지 총 17차례(실패 1차례 포함)에 걸쳐 각종 미사일 발사와 방사포 사격 등 무력시위를 벌였으며 이 가운데 최소 6차례는 ICBM 시험발사(추진체 개발 시험 및 실패 사례 포함)인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이렇다 할 대북관계에 대한 움직임이 없었던 미국은 올해 첫 대북제재를 감행했다. 지난달 26일(현지 시간)에는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로 표결에서 부결된 유엔안보리 대북제재와 별도로 재무부의 독자 대북제재까지 발표한 상황이다.
은폐설 끝에 코로나19 태세전환 이유 ‘한계상황 임박’
갑작스러운 코로나19 태세 전환을 두고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격리와 봉쇄로 코로나19를 통제해왔는데 한계가 왔다”라며 “지금껏 공식 인정된 바는 없지만, 확진 사례들이 있었고, 이들 사례가 주로 지방에서 나와 통제를 할 수 있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남 교수는 “통제가 어려운 평양에서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라며 “지난달부터 중국에서 물자가 들어오기 시작한 점, 마스크도 쓰지 않은 상태에서 열병식 등 군중 집회를 열었던 점 등이 평양 내 코로나19 확산을 초래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와 별개로 주민을 위한 인도적 지원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북한의 방역 대책은 국경 봉쇄와 지역별 봉쇄를 통한 이동 통제, 장마당 폐쇄 등 물리적 봉쇄에 의존한 방식이며 코로나19 치료제나 백신 도입 등 의료적 접근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대외적으로 국경을 봉쇄했고, 대내적으로는 주민 간의 이동, 장마당 이용 제한 등을 해왔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로 시장자본주의 일환인 장마당 경제까지 통제했고 대북제재가 깊어진 가운데 3년간 생계에 큰 타격을 입었던 북한 주민들의 생활고는 한층 악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탈북민 출신인 서재평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은 언론인터뷰에서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장마당이 대부분 폐쇄됐고 평양 지역을 제외한 지방은 생산활동이 상당 부분 멈춰 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며 계절적으로 식량 사정이 가장 나쁜 ‘보릿고개’와 겹치면서 아사자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지방은 무조건 봉쇄 그다음에 워낙 배급을 안 주던 상황에서 제일 힘든 게 지금 이 보릿고개, 4~6월 사이가 제일 힘들 때에는 코로나로 죽는 사람보다 굶어 죽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털어놨다.
북한은 지구촌에서 두 나라뿐인 코로나19 백신 미접종 국가다. 국제 백신공급 프로젝트 코백스(COVAX)는 북한 내 코로나19 발병 사태와 관련해 북한 정부가 요청하면 언제든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코백스가 올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28만여 회분을 배정했으나 북한은 인수하지 않았고, 중국산 시노백 300만 회분도 받지 않았다. 이에 대해 남 교수는 북한 당국이 유행 정보를 엄격히 통제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남 교수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전염병은 최고 지도자에게 흠이 되기 때문에 보도가 금지된 사항”이라며 “그럼에도 이번에 유행 상황을 공개한 건 경제적 위기로 지난 2020년 8월 완전히 잠긴 국경을 올해 초 열어야만 했고, 미국과 중국에서도 유행이 계속되면서 코로나19가 더는 김 위원장의 통치에 걸림돌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윤석열정부는 북한 방역 지원에 문호를 개방해 놓은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위협에 노출된 북한 주민에게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라며 “인도적 지원에 대해 남북관계의 정치, 군사적 고려 없이 언제든 열어놓겠다는 뜻은 여러 차례 밝혀왔다”고 강조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장관 후보자 당시부터 백신·해열제·진통제 등 구체적 지원을 최대화할 준비를 할 것이라는 점을 역설해왔다. 인도적 위기에 앞서 조건 없는 협력과 지원에는 남과 북, 적과 아, 진영과 논리가 필요 없는 조건 없는 지원이 우선순위임을 강조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에 대한 코로나19를 ‘백신 외교’로 재개할 기회가 있다고 본다. 하원 외교위원회 아태 소위원장인 베라 의원은 13일 VOA에 북한이 먼저 미국에 백신 지원을 요청해야 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북한 내 코로나 퇴치를 돕기 위한 백신 제공과 같은‘백신 외교’가 될 것”이라며 “북한이 먼저 이런 것을 요청해야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특히 “북한이 테이블로 와서 자신들을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구하는 ‘실용적이고 유연한’ 대북 접근법 기조에 북한이 먼저 반응해야 한다고 강조한 셈이다.
대북제재를 완화해 구호단체들의 지원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제재수정 요건인 ‘대북 인도지원 강화 법안’이 북한 코로나19 사태에서 ‘백신 지원’을 위해서라도 초당적 합의를 통해 이루어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베라 위원장은 “북한이 식량난과 영양실조와 같은 문제 때문에 인도적 지원을 요청할 경우, 대북 인도 지원 제공에 대한 의회 내 지지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이며 백신 지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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