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자본시장 혁신’을 주창한 가운데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시장 편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전문기관들은 우리나라가 여기에 들어가면 최대 360억달러(약 45조9000조원) 자금을 빨아들이고 주식시장 자금 유출입 변동성을 줄여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다만 외환시장 개방 등 해결해야 할 민감한 과제도 적지 않아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내달 워치리스트 등재 계획…빠르면 2024년 선진국지수 편입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MSCI는 매년 6월 연간 리뷰에서 1년 이상 관찰대상국(워치리스트)에 올라온 국가를 대상으로 선진·신흥 등 시장 재분류 여부를 결정한다. 이를 위해 금융당국은 다음달 우리나라를 MSCI 선진시장 워치리스트에 등재할 계획이다. 워크리스트에 오르면 내년 6월 선진시장 승격 여부를 결정짓고 2024년부터 투자를 시작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윤석열정부 5년 임기 내 판가름이 날 것으로 관측된다.
MSCI 지수는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자회사인 MSCI가 발표하는 글로벌 주가지수로 세계적인 펀드들의 투자 기준이 되는 국제 벤치마크다. 주식시장 발전 단계에 따라 선진시장(DM, 23개국), 신흥시장(EM, 25개국), 프론티어시장(FM, 21개국) 등으로 분류한다. 한국은 현재 중국, 인도, 브라질 등과 함께 신흥시장에 속한 상태다. 또 다른 글로벌 주가지수인 S&P글로벌지수와 FTSE가 국내 증시를 선진시장에 포함한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은 그간 수차례 선진시장 문을 두드렸지만 아직까지 진전을 보지 못했다. 2008년 6월 워치리스트에 처음 올랐지만 선결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선진시장 편입에 실패했다. 2014년에는 워치리스트에서 마저 빠졌다. 2015년 금융위원회가 선진시장 편입을 재추진했지만 이듬해 워치리스트에 오르지 못한 채 좌절됐다. 그러다가 작년 11월 기획재정부는 5년 만에 선진시장 편입 재추진을 공식화했다. 이후 논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22일 뉴욕에서 MSCI 측과 만나 한국의 워치리스트 등재를 요구했다.
윤석열정부에서도 관련 논의를 이어갈 전망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달 1일 인사청문회 서면질의에서 “2008년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은 우리경제 규모와 국제적 위상, 자본시장 성숙도 등을 감안할 때 당위성이 충분하다”고 밝히는 등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정부가 MSCI 선진시장 편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외국인 자금 유입을 확대해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MSCI 지수를 추종하는 글로벌 자금 규모는 작년 6월 기준 총 16조3310억달러에 달한다. 전체 글로벌 펀드자산 규모 대비 약 30% 수준이다. 이 중 한국에 적용될 수 있는 선진국지수 자금 규모는 총 9조7500억달러로 추정된다.
자본시장연구원의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의 효과, 선결과제 및 시사점’에 따르면 한국이 선진시장에 편입될 경우 국내로 유입되는 자금은 3410억달러로 유출 예상액(3050억달러)보다 360억달러 컸다. 이는 MSCI 형태별 추종자금 규모와 3월 글로벌 주식시장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한국 비중(2.4%)을 적용해 추산한 결과다. 한국경제연구원(159억~547억달러), KB증권(20조~65조원), 골드만삭스(440억달러) 등도 자금순유입을 전망했다.
그럼에도 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주가는 글로벌 금융상황이나 국가별 요인 등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0년 선진시장에 편입된 이스라엘의 경우 대표 주가지수인 TA-100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세계적인 주가 상승기와 맞물리면서 2009년 6~12월 32.9% 상승했지만 이 기간 선진국지수와 신흥국지수도 각각 17.4%, 30% 상승했다. 이를 감안하면 선진시장 편입만으로 주가 상승효과를 누릴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외국인 주식투자자금 유출입 변동성은 감소할 전망이다. 이스라엘은 선진시장 편입 후 5년 동안 변동성의 대용지표라 할 수 있는 자금유출입의 표준편차가 이전기간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그리스도 2013년 신흥시장으로 재편입 될 때 변동성이 이전보다 크게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선진시장 편입 시 투자자금의 장기화와 국가 디스카운트의 완화 등으로 외부충격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금유출입의 변동성이 줄어든 영향때문으로 풀이된다.
박지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만성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선진국지수 편입으로 기대할 수 있는 시장 변동성 축소 효과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긍정적이다”며 “MSCI 선진국지수 편입 시 대형주 위주의 매수가 유효할 것이고 MSCI코리아 상위 20개 기업 비중이 전체의 70.8%를 차지하기 때문에 대형주 위주의 수급 쏠림이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부과제 차분히 개선해 선진국지수 편입하는 게 바람직”
MSCI는 MSCI 선진시장 편입을 위한 요건으로 △경제 발전 정도 △주식시장 규모 및 유동성 △시장 접근성 등을 제시한다. 한국이 아직 충족하지 못한 기준은 시장 접근성이다. 세부 항목 18개 중 6개 미충족 상태다. 외환시장 자유화 미흡, 투자자 등록, 정보흐름, 청산 및 결제, 이전 용이성, 경쟁적 구도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해외 외환시장에서 24시간 원화를 거래할 수 없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국내 원/달러 은행간시장은 서울외국시장에서만 이뤄진다. 참여하기 위해서는 외환당국으로부터 외국환은행 허가를 받아야 한다. 외국인 비거주자의 은행간시장에 대한 직접 참여는 허용되지 않는다. 외국인투자자 입장에서 시차에 구애받지 않은 채 원화를 거래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최근 MSCI 선진시장 편입 노력의 일환으로 ‘외환시장 선진화 계획’을 발표하며 외환시장 하부구조 개선을 계획했다. 은행간 외환시장의 거래 마감시간을 3시30분에서 익일 새벽 1시로 확대 운영하고 비거주자의 국내 은행간시장에 대한 직접 참여를 허용하는 게 핵심이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그간 원화의 역외 외환시장의 개설이 진전을 이루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 정책 우선순위를 환율변동성 완화와 외환시장 안정에 두고 운영했기 때문”이라며 “정부의 외환시장 선진화 노력은 외국인투자자의 편의성 증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궁극적으로는 역외에 원화외환시장을 개설해 선진국 수준의 외환시장 체계를 갖추고 원화가 국제통화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MSCI 선진시장 편입과 관련해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등 신중한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한 유튜브채널에 출연해 “전체적으로 주가가 좀 올라가면서 투자자들이 이익을 보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데 반면 통화관리가 제대로 안되면 경제 걸림돌이 될 여지도 있다”고 우려를 나타낸바 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는 아직 기축통화라든가 국제통화 단계에 이르지 못해 풀어놨을 때 통화관리가 안되면 나중에 외국인 투자금이 다시 빠져나갈 수 있어서 문제다”며 “향후 여러 금융부처로부터 더 자세한 정보를 받고 선진국 지수로 가는 게 맞는지 조금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고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다.
업계에서도 MSCI가 요구하는 조건을 단기간에 맞추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MSCI 선진시장 편입 그 자체보다는 이를 주식 및 금융시장의 체질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연구위원은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은 우리 금융시장이 한 단계 도약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지만 편입 시 긍정적 효과가 단기간에 획기적으로 일어나기 어렵고 편입과 무관하게 해결해야 할 선결과제도 적지 않다”면서 “우리 주식시장의 유동성 확충과 시장하부구조 개선 등 세부과제를 차분히 개선해 가면서 선진국지수 편입이 자연스러운 결과로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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