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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옥의 열사일침(烈士一鍼)
천안함 영웅 지킨 금양호 의인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정창옥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3-20 08:50:33
 
▲ 정창옥 길위의학교 긍정의힘 단장
13년 전 인천 송도의 한 병원 영안실, 국적이 다른 시신 2구가 안치되어 있었다. 김종평 씨와 인도네시아 국적 람방 누르카요의 시신이었다. 46명의 생명을 앗아간 북한의 천안함 폭침으로 실종된 장병을 수색하기 위해 동원된 금양호 선원들이다.
 
201042. 군산 앞바다에서 조업 중이던 쌍끌이 저인망 어선 금양호는 해양경찰로부터 긴급 요청을 받고 뱃머리를 돌렸다. 서해 최북단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천안함 선체를 수색하라는 수난구호 명령 때문이었다. 전속력으로 달려 도착한 백령도 남쪽 해상의 물살은 거셌다. 그물이 조류에 엉키고 해저에 걸려 찢어졌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수색은 위험천만했다.
 
수색을 중단하고 복귀하던 금양호는 대청도 남서쪽에서 캄보디아 국적 화물선과 충돌해 침몰하고 만다. 선원 9명은 전원 실종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명의 시신을 수습한 것 외에 7명은 검푸른 파도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천안함 사건에 가려져 이들의 안타까운 소식은 묻히고 만다.
 
람방 누르카요의 가족은 한국의 무성의한 태도에 실망해 1주일 만에 시신을 인도네시아로 이송해 갔고, 김종평 씨는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되어 20일 만에 일가친척 한 명 찾지 않은 채 한 줌의 재로 사라졌다. 나머지 실종자 7명은 수십일 후 시신 없는 영결식을 치러야 했다. 필자가 한 송이 국화꽃을 들고 찾아간 부둣가 영안실엔 세찬 바람만이 속절없이 지나갈 뿐이었다.
 
2014416. 476명을 태우고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던 세월호가 진도 맹골수도에서 좌초되어 수학여행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을 포함해 304명이 사망했다. 이후 416국민연대·416가족협의회·박근혜정권퇴진국민행동 등 수많은 단체가 결집해 반정부 투쟁을 벌였다. 대통령 박근혜는 임기 내내 끌려 다니다 결국 이와는 상관없는 국정농단 사건으로 탄핵됐다.
 
세월호 참사는 불법 개조로 인한 구조적 결함 공적업무 담당 민간 외주업체의 도덕적 해이 관리감독 주체인 정부 기관의 무책임 유착과 담합, 비리와 부정부패 등 공적·사적 영역의 편법 공생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 관피아의 광범위한 전관예우 사고 후 대통령과 정부기관의 미숙한 대응 등 책임과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총체적 국가 개조 필요성을 환기시켰다.
 
2017123. 인천 영흥도 해상에서 낚싯배 선창1호가 급유선과 충돌해 22명 중 15명이 사망했다. 사고해역 수온은 7, 풍속은 10m, 조수간만의 차 8.5m, 골든타임은 30. 정부는 세월호 학습 효과로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해경은 새벽 69분에 신고를 접수해 42분에 구조보트가 현장에 도착했다고 보고했다. 당시 대통령이던 문재인은 새벽 71분 첫 보고를 받고 925분 위기관리센터를 방문, 해경에 직접 지시해 발 빠르게 대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거짓이었다. 영흥도 인근 해경은 전용 계류장이 없어 민간 선박을 이동시키느라 17분 늦게 출동했다. 인천의 해양특수구조단이 보유한 신형 구조선은 고장이었다. 구형 구조선이 있었지만 야간 항해를 위한 레이더가 없어 육안으로 가다서다를 반복해 30분 골든타임을 놓쳤다. 안산에 있는 평택구조대는 굴·바지락 양식장을 우회 운항해 골든타임을 놓친 72분 만에 도착했다.
 
국민의 계산기는 바쁘게 움직였다. 250명의 수학여행 학생과 15명의 낚시꾼을 정치적으로 철저히 구분했고 46명의 영웅과 9명의 의인을 편 가르기 하며, 내 편 사건엔 침묵하고 네 편 사건엔 집요하게 파괴적이었다.
 
이른 봄에도 갑판 위에 서면 살 속을 파고드는 피바람이 분다는 바다에 묻힌 9명의 금양호 선원들과 유가족들은 2년이 넘는 끈질긴 싸움 끝에 의사자로 지정받았지만 국가지원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김재후(48) 선장과 정봉조(49)·박연주(49)·이용상(46)·안상철(41)·하레파 유스프(35)·허석희(33) 그리고 김종평(55)과 람방 누르카요(36). 어쩌면 이들은 인생의 실패자였는지 모른다.
 
대부분 가족의 품을 떠나 1년에 10개월 이상을 바다에 나가 사는 절박한 인생. 육지에 오르면 오갈 곳 없어 여관방을 전전하다 승선할 날만 기다리며 파도처럼 거친 인생을 살았다. 찾는 이 없는 무연고 사망자로 죽어서도 천대받는 비루한 인생. 하루를 공치면 1000만 원을 밑진다는 그들이 천안함과 자랑스러운 장병들을 생각하며 비바람 속을 헤매다 시커먼 바닷속으로 사라진 그날, 천안함을 수색하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라를 지킨 천안함과 수학여행 떠난 세월호와 낚시 떠난 선창1호는 차치하더라도 천안함 사고 수습을 돕다가 전원 사망한 금양호 선원들을 우리는 무엇으로 어떻게 기억하는가. 살아 있어 부끄러운 필자, 13년 만에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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