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땅] 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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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땅] 묘비명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5-09 07:53:50

‘내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이자 평론가·사회운동가 조지 버나드 쇼(1856~1950)가 남긴 묘비명이다. 94세까지 장수하며 숱한 업적을 남긴 그였지만 마지막 순간엔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았다고 후회했다.

프랑스 작가 폴 부르제(1852~1935)는 ‘한낮의 악마’에서 ‘생각한대로 살지 않으면 산대로 생각하게 되리라’ 하고 읊었다. 한국의 적지 않은 남성들이 술자리에서 “내가 군대 있을 때, 군대에서 족구할 때…”를 읊조리는 것도 생각한대로 살지 못하고 산대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자의 일생’으로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기 드 모파상(1850~1893)은 ‘나는 모든 것을 갖고자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는 묘비명을 남겼고, 인도 철학가 오쇼 라즈니쉬(1931~1990)는 ‘태어나지 않았고 죽지도 않았다. 다만 지구라는 행성을 다녀갔을 뿐이다’는 묘비명을 새겨놓고 갔다. 저물어가는 생에 아쉬움이 많았던 모양이다.

영국 왕정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엘리자베스 1세(1533년~1603) 여왕은 묘비명에 ‘오직 한 순간 동안만 나의 것이었던 그 모든 것들!’이라고 썼다. 유럽을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은 “내가 죽거든 나를 땅에 묻을 때 손을 땅 밖으로 내놓아라”하는 유언을 남겼다. 생전엔 비록 천하를 손에 쥐었더라도 떠날 때는 빈손이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대한민국의 대작가 박경리(1926~2008)나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는 말을 남긴 그리스의 시인이자 소설가·극작가 니코스 카찬차키스(1883~1957). 한국의 화가 박수근(1914~1965)도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멀어’하며 세상과 이별했다.

동산선사(洞山禪師)로 알려진 중국 불교 조동종(曹洞宗)의 개조 양개화상(良价和尙·807~869)은 “살아있을 때는 철저하게 삶에 충실하고 죽을 때는 철저하게 죽음에 충실하라”고 가르쳤다. 열반 직전엔 ‘이생은 멋진 여행이었다. 다음 생은 어떤 여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라는 화두를 남겼다. 한국의 시인 천상병(1930~1993)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하며 눈을 감았다. 나는 어떤 묘비명을 남길까. 조정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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